2021년 11월의 어느날이었다. 여성단체들이 대선 국면의 '반 성평등' 흐름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날, 이를 방해하려고 A가 왔다. 악명 높은 '안티 페미니즘' 단체를 이끌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A는 이전부터 페미니즘 집회를 방해하고 페미니스트를 위협하는 인물로 유명했다 (실제로 이날도 기자회견을 방해했다). 기자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여성단체의 목소리를 취재하러 온 기자들에게 ‘우리도 취재해달라’는 그의 요구는 불쾌감을 자아냈다.
나는 사실상 취재를 방해하면서 기자회견장 주변을 휘젓고 다니는 A의 행동을 보다가 참지 못해서 "어그로 끌지 마세요"라고 했고, 그는 "어그로"라는 말을 트집잡으며 나에게 고함을 치면서 사과를 요구했다. 당황한 데다가 위협을 느낀 나는 그에게 "어그로라는 말은 죄송하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나도 모르는 사이 영상으로 찍히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그날 있던 일이 모두 유튜브에 올라와있었다. 내 얼굴은 썸네일로 박제돼 있었고, 그는 나와의 일을 '페미 기자'들이 자신을 탄압한다는 식으로 재구성했다. 영상은 수십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나를 욕하는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다. 이름이나 소속을 밝히지 않았음에도, 내 정체를 알아내 이메일을 보내는 이도 있었다. 무서운 일이었다.
심지어 A는 나를 향해 "고소해봐라, 난 네가 누군지 알아야겠다"라고 선언했다. 이 말은 법적 조치를 할 경우에는 아예 유튜브 채널을 통해 나를 파헤쳐서 공격하겠다는 의미에 가까웠다. 그같은 발언이 나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그 후로도 며칠은, 아니 몇 달은 그 영상에 시달렸던 것 같다. 방송에 출연해달라거나, 공적인 일을 요청받아도 얼굴이 드러나는 건 전부 마다했다. 혹시나 그 영상에 나온 것이 나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게 너무나 두려워서다. 더불어 그에게 사과하고 고개를 숙이는 내 모습이 정말 부끄러웠다. 적어도 사과만은 하지 말았어야 했나... 내가 동의없이 만든 영상에 박제되고 조롱당하는 피해자라는 사실보다,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라는 후회가 먼저 들었다.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먼저 드는 생각은 ‘대체 나는 왜 그랬을까’라는 자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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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4년 반이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야 책 <차별을 훔치는 남자들>에서 처음 이야기를 꺼냈다. '페미 기자'라면서 안티 페미니스트 세력에게 저격당하는 것도 무서웠을뿐더러, 동시에 나의 부끄럽고 무력한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 이 모든 것은 어쩌면 기우일수도 있지만, 그만큼 내겐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그제야 나는 여성들이, 소수자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공포의 정체가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깨닫게 됐다. '안전하지 못하다'고 여성들이 외치는 말이, 어떠한 '상태'를 뜻하는지도.
그날 이후로 나는 ‘안전함’이라는 말에 대해 계속 곱씹게 됐다. 흔히 ‘한국은 안전한 나라’라고 말하지만 그 말은 일정 부분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 공권력의 작동 범위나, 치안의 수준만이 ‘안전함’의 척도일까. ‘안전한 공간’이라는 외피를 둘러썼지만 실은 체제에 저항하는 이들에 대한 조롱과 탄압이 일상화되고, 능력주의 논리가 약자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한 곳이 지금의 한국이다. 어떤 이념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삶의 토대가 위협받고 흔들리는 사회가 과연 안전한가?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모습을 수없이 봐왔던 이에게 “이곳은 안전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나?
동시에 3.8 세계여성의날에 떠올리게 된 것은 그 공포를 이겨낸 용기였다. 죽음과도 같은 공포를 극복하고, 모욕을 견뎌내며 바른 목소리를 낸다는 얼굴들. 최말자님처럼, 서지현님처럼, 김지은님처럼, 김진주님처럼, 나아가 그들 곁의 연대자들까지... '뒤에 올 사람'들만큼은 조금 더 안전하길 바랐던 이들의 용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충분히 안전하다' 혹은 '충분히 평등하다'는 전제는 거짓이다. 여전히 우리는 수많은 여성들의 용기에 기대어서 겨우 '살아갈만한' 세상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여성의 날은 그 용기에 가장 정중하게 예우를 갖추는 날이다. 동시에 '연대'라는 또다른 용기로 응답하는 날이다. 나는 그것이 '시민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부디 남성들도 존중과 연대의 마음으로 여성의날을 축하하는 일을 잊거나 외면하지 않길 바란다.
(*이 글은 <차별을 훔치는 남자들>에 실린 내용을 일부 인용·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