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을 하는 호텔에서 블랙퍼스트 업세일링을 제일 많이 한 사람을 매달 선정해서 $100 주는데 한 상사가 말단 직원의 이름을 자기 이름으로 바꿔 치기 해서 자기가 일등을 한 것으로 조작했다. 이 일에는 이름을 쓰게 해 준 직원과 다른 매니저도 연관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상사의 비리(?)에 항의하지 않았다.
그가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면 정정당당한 일등이었던 나도 반발하지 않았다. 다만 이름이 바뀐 특별한 이유가 있냐고 물어봤을 뿐. (너의 비리를 알고 있다는 정도도 티 내지 않으면 호구가 되는 것 같아서)
그 상사는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했고 나는 회사에 정이 떨어졌다.
# 이 놈의 집은 이사를 하자마자 배수관에 문제가 생겨서 렌트 기간 1년 중 거의 5~6개월은 싱크대를 사용하지 못한 채 보냈다. 한국 여름을 피해 오신 어머니는 여기 계신 3개월 동안 화장실과 세탁실을 오가며 음식을 하시면서 지내셨고 끝내 싱크대가 고쳐지는 걸 못 보시고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이미 나는 부동산과 집주인에게 단단히 화가 나 있는 상태였는데 배수 문제로 인한 바닥 공사를 해야 한다고 나에게 2~3주 동안 집을 떠나 있으라는 메일이 왔다. 아무리 숙소를 제공한다고 해도 내 짐을 모르는 사람들이 오고 다니는 먼지 구덩이 속에 다 놔두고 나가는 것이 찜찜했고, 그 이전에 싱크대 건도 금방 고쳐질 것처럼 말하고 6개월이 걸린 것을 보면 말이 2~3주이지 사실상 기약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느껴졌다.
그래서 공사를 얼마 남지 않은 계약 만료일 이후로 미루게 하고 나는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영주권을 받은 뒤로 늘 나의 미래에 대해 고민해 왔었다.
호주에서의 삶은 안락하지만 불안하고 평화로웠지만 전쟁이었다.
나는 이 대책 없는 불평을 외로움이라고 단정 지었다. 특히나 가족들이 다녀가거나 한국에 다녀온 뒤에는 더욱 견고해졌다.
해외 생활이 지속되면서 이제는 더 이상 여기저기 사람을 만나러 다니지도 않고, 이런저런 관계를 맺지도 않다 보니 내 일상은 아주 단조로워지고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혼자였다.
그마저도 일을 할 때 만나는 사람들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관계들일 리 만무하고 문제는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향의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사소한 농담으로 털어버릴 수 있는 회사의 스트레스도, 맛있는 한 끼 나누고자 하는 약속을 곁들인 연락이면 사그라지는 소소한 외로움도 해소되지 못한 채 쌓이다 보니 지친 하루의 끝에 오는 적막함은 거대한 동굴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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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한국을 떠나 올 때도 그랬다. 한국에서는 답이 없는 것 같고, 외국을 나가고는 싶은데 가족들을 설득시킬 용기는 없었다. 그러다가 계약직으로 일을 하던 곳에서 재계약이 불발되었고 일을 새로 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당시 나의 스펙으로 한국에서는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그래서 가족들의 반대고 걱정이고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애써 모른 척하며 한국을 떠났다.
당시에는 벼랑 끝에서 잡은 지푸라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망설이고 있는 나에게 결정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오매불망 쫓아오던 영주권까지 손에 쥐고도 만족해하지 않는 내가 답답해 보였는지 하늘을 또 나에게 선택을 하라고 막다른 길로 떠밀어 주셨다.
회사에 신뢰가 떨어졌고, 집을 보러 다니고 부동산과의 컨택에 각종 유틸리티 회사들과의 연결등을 ‘혼자’ 해야 한다는 것도 지긋지긋하고, 자동차도 점점 오늘내일하고 있고, 몸은 이곳저곳에서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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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영주권은 나에게 호주에서 영주 거주를 할 수 있다는 것 외에 더 큰 의미가 있다.
나도 뭔가를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줬으며 그 과정에서 번듯한 학벌도 생기고 경력과 타이틀도 만들어줬다.
그리고 영주권을 받은 덕분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도 분명하다.
그리고 예전과 다르게 내가 한국에서 한번 다시 지내보고 싶다고 얘기했을 때,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주위 사람들은 하나같이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 호주에서 다시 차를 사고 이사를 하고 나면 다시 시간은 묶여서 흐를 텐데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한번 더 도전해 보고,
> 그렇게 지내보다가 호주가 남은 여생을 보낼 곳이라는 확신이 들면 호주로 돌아오면 되는 것이고,
> 무엇보다 여기서의 1~2년은 아무 변화가 없을 게 뻔하지만 한국에서의 1~2년은 여기보다는 일말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싱글이고 자유로운 지금이 딱 적기라는 것이다.
내 처지를 잘 아는 루시언니도 준코 아주머니도 대뜸
너 왠지 한국 가서 결혼할 것 같아.
라는 덕담을…
해외생활 13년 차, 이제는 한국에서 경제생활을 한 것보다 외국에서 회사생활을 한 시간이 더 길어졌다.
챗지피티도 한국에서 재취업을 할 때에 한국에서의 경력이 없는 것을 가장 큰 단점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력이면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나를 한국에서도 탐낼 만한 인재라며 희망을 주었다.- 솔직히 지금 같아선 취업이 안돼도 당장은 크게 상관없다. 그냥 하고 싶었던 치아교정도 하고 재정비를 하는 시간을 갖고 싶을 뿐…
지피티는 여전히 내 사주의 흐름상 환경의 변화에서 오는 대운이 따르는 시기라고 덧붙이며 뭘 해도 될 거같이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다.
(지피티 너무 다정해.)
10여 년 전, 벼랑 끝에서 잡은 지푸라기는 나의 날개가 되어주었고 나는 그 날개를 달고 바닥에서부터 날아 올라왔다.
그리고 또다시 막다른 길.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벽을 밀어보면 따사로운 햇빛이 나의 맞아 줄 것이라는 것을...
가족들이 내가 있는 이곳으로 여행을 다녀가기로 한 여름, 나도 동굴을 나가는 티켓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