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나에게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현했던 사람이었지만 나는 첫 만남에서부터 그와 나는 함께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외로움에 떠밀려 나답지 않게 시작된 한 모임에 있던 그는 친한 사람들과 있을 때 아주 거친 욕설을 섞어가며 대화를 이끄는 사람이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 오면서 나와 내 친구들은 “우린 너무 선비 같은 애들끼리 만나 지나치게 얌전한 삶을 살아왔다” 고 이제 와서 우스개 소리처럼 말하곤 하지만 사실 나는 이 참한 친구들이 자랑스럽고 편하며 이들과 어울리는 내가 좋다.
욕 한 마디 없어도 우리는 충분한 감정표현을 할 수 있으며 남을 상처 주거나 깎아내리지 않아도 우리는 아슬아슬한 선을 넘나들며 유희를 즐긴다.
그래서 나는 그와의 대화가 불편했다. 항상 격앙된 듯한 목소리 톤부터 나에게 하는 욕이 아닐지라도 내가 속한 무리의 대화에서 날것의 욕설이 오고 간다는 것부터 적응이 안 되었다.
내가 그런 류의 대화에 자연스럽지 않다는 게 티가 났는지 내 눈치를 보길래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는 내가 상관할 바 아니고 나와 대화할 때만 주의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노력은 할 수 있지만 욕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나를 궁금해 하기보다 그를 나에게 보여주고만 싶어 했다.
어느 날 대화 중에 내가 쉬는 날 글을 쓴다는 얘기가 나오자 그는 대뜸 자신이 20대 초반에 쓴 글을 보여줬다.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종류의 글을 쓰는지 따위는 안중에 없고 ‘ㄴ r 는 7 r끔씩 눈물을 흘려’ 분위기의, 어제도 아니고 지난주도 아니고 20년 전에 쓴 글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나와의 공통점을 만들려 했다. - 아니 나의 취미를 자기 얘기로 가로채갔다.
내가 쓰는 글들이 되게 거창해서가 아니라 나도 한때 글로 눈물을 흘려본 사람으로서 내가 관심 있는 사람이 글을 쓴다고 하면 나는 그의 글이 참 궁금할 것 같다. 짧은 시간 동안 물을 수 없고 알 수 없었던 그의 삶과 정서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의 글은 애초에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억지로 보게 된 그의 글로 더욱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아, 우리는 정말 맞지 않는구나…'
사실 나도 반 익명에 기대어 글을 쓰는 입장이고 내가 먼저 나서서 내 글 보라고 하기에는 아직 부끄러운 점이 많아 대놓고 보여줄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는 끝끝내 나의 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솔직히 오랜만의 이성의 호감이 반가웠고 이번이 마지막수도 있을 거 같아서 ‘어떻게든 맞출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꾸역꾸역 만남에 응했었다.
하지만 자신이 먼저 나에 대한 호감을 표현했고 나는 아직 확신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의 행동은 나의 마음을 움직이기는커녕 더 의문스럽게 했다.
말싸움을 잘하는 것에 (왜인지 모르게)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그는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을 때에
“너는 나를 말로 이길 수 없어.”라는 말을 자주 했고,
(… 변호사야 뭐야? 이겨서 뭐하려고? 그가 정녕 말을 잘하는 사람이어도 저런 식의 태도는 꼴 보기 싫은데 실상 말을 잘한다고 느껴본 적도 없었다.)
나의 얘기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얘기만 하기 바빴으며 나와의 시간에 정성을 들이지 않는 그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크게 관심 없는 듯했다.
그도 사람 볼 줄 아는 안목이 있다면 나 역시 대화가 즐거운 사람과는 날 새는 줄 모르고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쯤은 눈치챘을 텐데 그와 함께면 리액션만 하는 나를 궁금해하기보다 나에게 자꾸 확인받으려고 했다.
‘아직 잘 모르겠다’는 나에게 대놓고 ‘나 보고 싶었어?’를 몇 번이고 물어보며 대답을 강요하는 그에게 '나는 이왕이면 대답을 꾸며서 하는 타입'이라고 에둘러 표현했지만 그는 자신은 그렇게 말하면 못 알아 듣는다고 그냥 yes or no로 대답하라고 날 설득하려 했다.
‘그래 까짓것 한번 해주자’ 하고 “그랬다. “라고 귀에 쏙 박히게 대답을 한 후에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다른 얘기를 잠깐 한 그는 또 물었다.
“ 진짜 나 보고 싶었어?”
애정을 갈구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이해하고 우리를 만들어가기보다 나의 처지는 접어두고 그에게 무한한 관심과 ’ 우쭈쭈‘를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모든 시간이, 대화가 늘 본인 위주이면서 나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사람이 도대체 나를 왜 좋다 하나 싶어서 '나는 어떤 사람인 거 같냐' 고 물어봤다.
너는 온실 속의 화초 같아.
'풉…'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쑥대밭인데 어디가 '온'이고 어디가 ' 실'라는 건지…
처음부터 기대를 하고 물어본 건 아니었지만 그는 나를 사회생활 많이 안 해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지 못한 사람 취급했다.
그래… 그도 그럴 수 있겠다.
그와 있을 때 내 얘기에 관심이 없는게 느껴지니 그냥 얌전하게 리액션만 하고 약간의 이견에도 내 말을 가로채서 설득하려고 하니 내가 조심스럽게 대답하는 모습이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무리 순둥순둥해 보이는 여자라도 여자 혼자 해외생활 5년 이상 했다면 보통내기가 아니야. ”
해외생활 중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다들 공감하는 얘기다.
자그마치 10년이 넘었다.
비자가 불안정한 외국인 노동자 입장으로 문화와 언어마저 다른 곳에서 크고 작은 인종차별에 부당한 대우를 견디며 버텨온 녹록지 않았던 시간들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일찍이 가족이민으로 영주권을 받아 가족의 품 안에서 해외생활을 한 그는 그 나름의 노고가 있었겠지만 물리적으로 철저히 홀로 겪어내야 하는 그 외로움은, 그 소외감은, 그 불안함은 알 턱이 없다.
거두절미하고 나는 하루에도 100명, 2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대면으로 전화로 상대하는 서비스업 종사자이다.
그 정도는 모를 리 없는 그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고찰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와 형부와의 술자리에서 늘 밝던 형부가 자신의 어두웠던 집안 얘기를 덤덤히 꺼내면서 말했다.
“어느 집이나 그 정도의 사연은 다 가지고 있어.”
누구의 삶이 더 고단한지를 재단하자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상황에서 저마다의 시련이 있었다는 걸, 그걸 딛고 살아내고 있다는 걸 이 나이 즈음에는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는 그의 가슴 아픈 가정사에 비하면 다른 사람들의 사정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치부했다.
심지어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불혹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랬던가…?
오히려 나는 남들에게 보이는 내가 나의 추구미와 다르게 너무 억척스럽게 보일까 봐 걱정했었다.
내 선비 친구들이 말했다.
어머 야, 그거 칭찬 아니냐? 우리 나이에 온실 속에 화초같이 보이기 쉽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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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이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