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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란 Dec 28. 2020

각자 집에서 '페이크 일기'

#술김에책읽는여자둘


2020년 연말은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팟캐스트 녹음을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이렇게 될거라고는 예상을 하지 못했던 터라 더욱 당황스러운 데요. 이대로 올해를 끝내기는 아쉬운 마음에 각자의 집에서 쓴 페이크 일기를 각자 녹음하기로 했습니다. 어디에 계시든 안전하고 건강하게 올해 마무리 하시고 2021년에는 새로운 책과 함께 인사드릴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럼 남숙이의 페이크 일기부터 시작합니다!


01:20 남숙 -치과, 브루클린 버거

06:10 나란 - 문어와 상어 이야기

13: 50 서서히 - 가벼운 테스트


문어와  상어 이야기


 올 한해 내게 남은 것들을 세어 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성격 탓에 나름나름 바삐 보낸 것 같은데. 막상 떠올려보니 초라하다. 일상적이고 반복적이지만 조금씩 다른, 이를테면 저녁 밥상 위에 놓인 부추 겉절이 맛(매번 같은 재료 같은 계량인데 할 때마다 조금씩 맛이 다르다) 혹은 며칠간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든 싸구려 디퓨저 냄새가 여전히 입과 코에 남아 있다. 


오감에서 벗어나자 이번에는 몇 달 전에 본 영화 속 장면, 문어와 상어가 등장하는 동화가 생각났다. 당시에도 ‘이 장면은 오래 기억될 것 같아’ 했지만 막상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왜 하필 그들이. 아마도 셋 중 하나이지 않을까. 올해 가장 몰입한 5분이었거나, 몰입을 넘어 거기에 나를 이입했거나. 그것도 아니면 여간해선 손대지 않는 잔혹한 이야기라서(친구들 때문에 보게 된 공포 영화 <주온>의 장면은 나를 몇 년 간 괴롭혔다)? 음…. 다 맞는 것 같으면서도 완전히 들어맞진 않는다는 핑계로 다시 넷플릭스를 켠다. 그리고 그 장면까지 빨리 감기.


문어와 상어 이야기는 작은 침대 방에서 시작된다. 머리를 푹 숙이고 앉은 소녀 제이든과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소녀를 바라보는 상담 선생님 그레이스. 그전까지 방어적 이기만 하던 소녀가 갑자기 노트를 꺼내 자신의 일기를 읽어주겠다고 한다. 노트 안에서 꼬깃꼬깃 접은 종이를 펼치며, “동화일 뿐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말한다. 그 안에는 작고 까만 글씨가 빽빽하게 적혀있다.


옛날에 바다 저 아래 어딘가에 니나라는 꼬마 문어가 살았다. (제이든의 동화는 이렇게 시작했다. 노트에 직접 그린 문어 니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동화에 장면을 덧입히며, 제대로 구연했다)
니나는 돌과 껍데기로 이상한 것들을 만들며 혼자 놀았다. 그녀는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월요일 상어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칠흑의 바다 안에 나란히 있는 상어와 니나를 가리킨다)
“이름이 뭐야?” 상어가 묻자 “니나”라고 대답했다’ 
“내 친구가 될래?” 그가 물었다. 
“좋아, 내가 뭘 하면 돼?” 니나가 물었다. 
상어는 “별거 없어” “그냥 네 팔을 먹게 해줘”라고 했다. 
니나는 친구를 사귀려면 그래야 하나 궁금했다. 
여덟 개의 팔을 보며 ‘하나쯤 줘도 괜찮겠지’ 생각했다. 
니나는 새 친구에게 팔 하나를 주었다. (팔 하나가 잘려나간 니나를 가리킨다) 
니나와 상어는 매일 함께 놀았다. 동굴을 탐험하고 오래성을 짓고, 빨리 헤엄치며 놀았다. 매일 밤 상어는 배가 고팠고, 니나는 또 다른 팔을 주었다 (또 다른 팔이 잘려나간 니나를 가리킨다) 
어느 일요일 온종일 놀고 난 후 상어는 배가 고프다고 했다. 니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 팔을 여섯 개나 줬는데 더 달라고?” 물었다. 상어는 다정하게 미소 지으며 “하나 말고 이번엔 다 줘야겠어” 했다. “왜” 니나가 물었다. 상어가 대답했다. “친구란 그런 거야” (노트에는 팔이 전부 잘린 니나가 그려져있다) 
식사를 마친 상어는 매우 슬프고 외로워졌다. 동굴을 탐험하고 함께 헤엄칠 누군가가 그리워졌다. 니나가 무척 그리웠다. 그래서 또 다른 친구를 찾으러 헤엄쳐 갔다.


다시 봐도 슬프다. 하지만 두 번째는 확실히 첫 번째와 다른 슬픔이다. 그날 오후에는 뉴스를 봤다. 이틀 뒤인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5인 이상 집합 금지’ 조치가 시행 될 거라고 했다. 곧장 다음 주 할머니 생신을 위해 예약한 식당에 연락을 취했다. 지난 주말에는 서울 사는 동생이 오랜만에 집에 내려왔는데 가족 모두가 식당에 가는 게 뭣해 집에서 밥을 해 먹었다. 


그뿐이 아니다. 지난주 평일에는 인쇄 감리 때문에 파주에 가게 되었는데 인쇄소 미팅 시간이 연기되는 바람에 시간이 떠 버렸다. 평소 같으면 여유를 반기며 근처의 서점이나 카페를 검색했겠지만. 그 주 내내 수도권은 거리 두기 2.5단계라 카페 이용은 테이크 아웃만 가능했고, 돌아다니는 것도 죄책감이 들 만큼 거리는 한산 했다. 아주 잠깐 호수 공원이나 파주 출판단지 산책을 생각했지만 삼켰다. 게다가 바깥은 영하의 날씨로 꼼짝없이 차에서 대기해야 하는 상황. 다행히 함께 있던 디자이너가 파주 옆 동네인 일산이 자기 집이라며 집에 가서 커피를 마시자는 감사한 제안을 해준 덕분에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코로나 예방 조치, 거리 두기로 인해 일어나는 전에 없던 돌발 상황들, 완벽하게 달라진 일상을 하루하루 경험할수록 내가 얼마나 타인을 필요로 하는지, 곁에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어 하는지, 외로움에 치를 떠는 존재인지를 실감한다. 내가 영화를 보며 느낀 슬픔도 아마 그런 슬픔이었던 것 같다. 인간은 평소에 스스로 나약하다는 것을 숨기고 산다. 숨기고 있다는 사실도 망각한 채로 살다가 어느 날 상대가 내게 낸 상처를 보며, 그 상처를 보면서도 상대를 원할 때 비로소 외롭고 나약한 스스로를 마주하게 된다. 독립, 주체, 능동 같은 단어들로 자신의 삶을 연명해온 사람이라면 더욱 빠져나오기 힘들다. 지금까지의 나를 의심하는 일, 나약함을 인정하는 일만큼 살고자 하는 의지를 약화시키는 일은 없으니까. 그러고 보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건 죽고 싶어서 라기보다, 살고자 하는 의지의 상실이 행동으로 발현된 결과에 가까운 일인 것 같다. 모든 이야기는 결국 살고 죽는 문제로 귀결된다. 


어쨌든 2020년, 내게 남은 건 나약함. 초라하지만 그마저도 이제 3일이면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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