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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tacura Aug 10. 2022

불안을 날리는 눈물

눈물의 종류 

   이상하게 자꾸 남들 임밍아웃하는 영상을 돌려보게 되는데, 몇 번 보다 보니 망할 놈의 알고리즘이 이 사람 저 사람의 행복한 임밍아웃 영상을 자꾸 물어다 준다. 남들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덩달아 행복해지는 것이 내가 먹고 싶은 맛있는 거 대신 먹어주는 먹방 보다는 유익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아직은 내가 남들 행복에도 덩달아 기분 좋아지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기도 하고 그러하다. 그런데 그 보다는 뭐랄까, 난 그런 임밍아웃을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는 아쉬움 때문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내게 임신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세상에 나만 혼자 아이를 못가지게 된 것처럼 서러운 순간도 많이 있었다. 결혼 후 7년 만에 아이들을 가졌을 때, 난 몰래 혼자 확인하고 남편에게 깜짝 소식을 전할 만큼 여유있지를 못했다. 몇 년간 냉정한 한 줄짜리 임신테스트기에 얻어 맞은 상처가 너무 커서 혼자서는 임테기를 확인도 하지 못할 만큼 마음이 약해져 있었다. (생애 처음은 아니었지만, 우리 아이들을 갖고 했던)첫 임테기의 두 줄을 확인할 것도 오빠였다. 처음부터 표시되어 있는 기준선 위에 임신이 된 경우 생기는 임신표시선은 시차를 좀 두고 생기는데 그 시간을 기다리기에도 마음이 너무 저리고 아팠다. 실체도 없는 난임이란 것에 몇 년이나 상처를 받고 얻어 맞았던 기분은 5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프고 힘들다. 

   임신을 확인한 오빠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좀 얼떨해 보이기도 했다. 이미 한 번 유지하지 못하고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지라 섣불리 기뻐하지도 못했다. 나중에야 오빠에게 왜 그렇게 반응이 뜨뜬미지근했냐고 따진 적이 있는데,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뭐라고 설명을 하지는 못하고 그저 걱정이 되어서 그랬다고 했다. 

   임밍아웃 영상의 하이라이트는 감격해서 박장대소를 하거나 눈물을 훔치는 부모님의 반응인데, 난 당연히 그것도 하지 못했다. 부모님께는 나도 무려 7년 만에, 한 번의 아픔을 겪고 다시 얻은, 그것도 둘이나 한꺼번에 얻은 귀한 아이들이 찾아왔다는 소식이니 남들의 4배, 5배는 감격스러운 이벤트를 할 수도 있었지만, 내겐 이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려줄 엄마가 없었다. 엄마는 10년도 훨씬 전에 벌써 아빠한테 가 버리고 내 옆에 없었다. 엄마가 계셨으면 아이가 생기지 않았던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마음을 졸이셨을지, 얼마나 전전긍긍하며 걱정을 했을지 이모를 보면 충분히 짐작을 하고도 남는다. 이모는 아이들 소식을 듣고 난 후 가게 된 나의 시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이제야 비로소 죄스런 마음 없이 시어머니를 대할 수 있었다고 했다. 상견례 이후 어머니랑 따로 만나신 적도 없으신 분이 아이 못 낳는 조카딸 걱정에 나의 시댁에 죄스런 마음까지 가지고 계셨다니. 이렇다 저렇다 말 한마디 없었던 동생이나 아버지도 마음은 같았겠지. 

   게다가 우리는 한국이 아닌 브라질에 있었다. 혹시나 전 같은 일이 반복되어 어른들께 두 번 상처드리게 되진 않을까 싶어 안정기도 지나고 아마도 3개월도 훌쩍 넘어갔을 때쯤 전화로 조심스럽게 임신소식을 알렸다. 마주하고 전한 것도 아니고, 영상통화를 한 것도 아니어서 식구들의 표정이 어땠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모두가 걱정한 만큼 기뻐해 주셨던 것 같다. 시어머니는 단골 점쟁이가 9월 안에 손주를 볼 수 있을 거라 했다시며 용한 점쟁이의 실력을 다시 한번 믿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아버지는 연신 잘했다라고만 하셨던 것 같다. 칠레 있을 땐 전화드릴 때마다 좋은 소식 없냐고 물으셨는데, 언젠가부터 그 질문은 하지 않으셨지.. 카톡으로 전달을 받은 나의 대학 동기들은 내 소식을 듣고 사무실에서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환영과 축복 속에 이 세상에 등장했다. 

   오늘 본 임밍아웃 영상에선 8년 만에 시험관으로 아이를 갖게 된 남편이 아내가 건내 준 임신테스트기를 보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 눈물 속에 지난 8년 간 겪었던 셀 수 없이 많은 불안한 생각, 마음을 쥐고 흔들었던 다양한 감정들이 다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난 정작 임신사실을 확인한 후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는데, 저 남편의 눈물을 보면서 내가 겪었던 간의 불안과 두려움, 서러움 같은 감정들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입은 웃고 있는데,  눈에선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그것은 그 긴 시간 동안의 상처와 아픔을 달래고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았다. 

   그건 기쁘기만 해서 흘리는 눈물과는 또 조금 다른 것 같다. 너무 기뻐서, 기쁘기만 해서 흘리는 눈물은 기쁨인지 무엇인지 모를 것이 가슴에서부터 차올라 눈물과 함께 터져버리는 것 같았다. 제왕절개로 아이들을 꺼내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오직 기쁨으로만 오열했다. 정말 생경하고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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