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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S Sep 06. 2024

다시 한번, 첫 사랑과의 이별 준비.

아들을 가진 엄마들에게

하루 전이다.

아들을 기숙사에 데려다주러, 함께 출국하기 전 날.

섭섭한 마음에 외출하고 없는 아들 방 침대에 가서 몸을 눕히고 아들의 베개를 베고 아들의 이불을 덮었다. 아들냄새가 난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냄새지만, 그저 아들 냄새라는 이유로 나는 몇 번이고 크게 숨을 들이쉬고 뱉으면서 그 녀석의 냄새를 기억하고자 했다.  그러다 난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며, 코 끝이 시큰해진다.

  

  녀석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지만, 2주 전부터 난 바쁘게 준비를 하고 있다. 부연설명을 하자면 나의 아들은 기숙사생활을 하는 2년 차 14살의 유학생이다. 나는 뭐가 필요할지, 생각하고 생각해 내면 또 다른 것이 꼬리를 물고 생각이 난다. 거의 2주째 내 미관의 근육들은 쉬지 못하고 인상을 쓰거나 관자놀이의 근처는 늘 미세한 통증을 느끼고 있다. 엄마인 내가 없는 그곳에, 그 외딴곳에 또 다시 어린 아들 녀석을 혼자 두고 와야 한다.




  작년 이 맘 때 처음 아들을 유학을 떠나보낼 때 난 매일을 울었다. 그때의 나의 느낌을 굳이 설명하자면 처음 사랑을 느껴 본 대상이라, 헤어져 본 적은 더더욱 없어 헤어지는 방법을 몰랐던 첫사랑과의 이별 같은  마음과 비슷했다고 할 수 있을까. 가슴이 너무 저려와서 가슴을 한 손으로 부여잡고 다리는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아 남은 한 손으로는 바닥을 짚고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물은 끝도 없이 흘러내려 마치 인생의 큰 좌절이라도 맛보고 있는 사람 마냥 꺼이꺼이 소리까지 내며 울어댔다. 그러면서 머릿속, 마음속으로는 내가 무언가 잘해 주지 못한 건  없는지, 이유도 알 수 없던 죄책감을 느끼면서 지금이라도 되돌릴 수 없는지를 연거푸 생각하던 그때의 감정이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떠오른다.

  학기 중 한 날은 약간 괴짜인 남편이 우리 집 문 앞에서 출발하여 녀석이 기숙사에 있는 도착시간을 재어본 적이 있었는데 정확히 19시간 58분 48초.

그 먼 곳에 저 아이를 홀로 두고 뒤돌아야 한다.




  물론 아들이 유학생이라고 하면 부럽다 던가, 날 조금은 유난스럽다던가, 교육열이 높거나, 부유해서 아이를 유학시키는 엄마쯤으로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다 틀린 말이라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조금은 달랐다. 

  중학교 1학년이 되고 어느 날, 녀석이 스스로 결정해 버린 것이다. 학교생활을 너무 즐겁게 잘하고 있던 아이라 나는 더 이해할 수 없었다. 녀석은 방송반에 디베이트반 등 학교 활동은 물론이고 친구들과 아침축구를 위해 한 시간 찍 일찍 등교하는, 내가 보기엔 중학생활에 푹 빠져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녀석이 나는 유학을 가야겠다고 했을 때 나는 물론 주변 많은 어른들은 그 어린 녀석이 뭘 알아서..라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아이의 문장에서 나는 아이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 나의 꿈이 아직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곳에서는 이루어낼 수 있을 거 같아요. “ 

  조금은 충격적이고 신선하고 솔직히 기특하기까지 한 말이었다. 그날부터 가족중심적이었던 남편은 아이의 의견을  반대했고, 난 그 둘 사이에 있었다. 정말 아이는 혼자서 준비하였고 당당히 합격해 보이고야 말았다. 그때의 나는 그런 아들 손을 들어주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돼서 아빠까지 가족 모두가 아들의 유학을 결정한 후 학기가 시작하기까지 난 거의 매일을 울었던 거 같다. 뱃속에 10달, 그렇게 태어나 13년을 한 번 떨어본 적 없는 아이를 잘 알지도 못하는 그 먼 땅 미국에 보내야 한다는 한다는 사실은 나에게 정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합격이라는 것에 심취하여 기쁜 나날을 보내던 아들은 그런 모습의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쳐다보고는 했었는데, 지금의 아들은 지난 1년 동안 치열한 외로움이라는 걸 어린 인생 처음 충분히 느껴본 후라 이런 내 마음을 이제는 제법 공감하고 있는 거 같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는 참 독특한 관계이다. 

  내 평생 처음 느껴보는 완벽히 이중적인 감정의 관계랄까. 힘듦을 겪어내야만 단단한 어른이 되는지 잘 알지만, 내 자식만은 그걸 겪지 않고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고, 너무 사랑하지만 가끔은 그래서 똑같은 일에도 더 화가 나는 이성적인 생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관계랄까. 나를 너무 괴롭게도 동시에  너무 행복하게도  느끼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하지만 이런 과정들을 겪으면서 한 가지 더 확고해졌던 나의 교육관을 감히 이야기하자면

‘ 어떤 결정을 하든 묵묵히 곁에서 지켜봐 주기 ‘ 이었다.

 나는 아들이 아주 어린 시절 유치원을 결정할 때조차 유치원 순회 후 결정은 5살인 아들에게 하게 끔했다. 작든 크든 모든 결정은 아이의 선택이고 곧 아이의 인생이니까.

  많은 아이들이 그렇듯 어떤 날은 유치원을 가지 않겠다고 우기기도 했지만, 그건 우리 집에선 통할 수 없었다. 아무리 어리더라도 선택은 본인은 한 것이므로.

  너무 사랑하는 만큼 그 아이만의 인격체로 그 아이만의 인생으로 인정해 주는 것. 그 어떤 것보다 내가 지키고자 했던 것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러기의 처음 시작은 충분히 성숙하지 못 한 나이에 엄마가 된 내가 혼자 결정하기가 겁이 나서 아이의 뒤에 숨은 걸지도 모르겠지만, 키울수록 그것은 나의 확고한 교육관이 되고 내가 아이의 사랑하는 방법이 되었다.

  

  그런 것들이 지금의 우리 아이의 모습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여정의 끝이 성공적 일지 아닐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저 나는 내 자리에서 녀석은 녀석의 자리에서 이미 한 선택에 대해 최선을 다할 뿐. 언젠가 후회하는 날이 온다 해도 그 또한 아이와 그런 아이를 지지한 나의 몫일테니.



  

  얼마 전 누군가가 나의 젊음이 너에게로 흘러가 너는 젊어지고 그 젊음으로 너는 너의 젊은 날은 더욱 아름다운 나날로 보내기를 바란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이 세상 모든 엄마의 마음을 너무 잘 표현 거의 완벽에 가까운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래, 딱 그만큼의 마음이다.

  

  너와의 헤어짐으로 엄마는 또 한 동안 눈물이 나고 너의 숨소리, 사춘기의 너의 냄새까지도 그립겠지. 아마 한동안 니 방 쪽을 쳐다보는 거 조차 힘이 들 거야.

그저 너란 존재가 너무나 그리워 한동안 문득문득 시야가 눈물로 몽글몽글해지겠지만

  나는,

  이 엄마는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든 분명 반짝반짝 빛날 너를,

  그리고 우리가 지금은 너무 이른 시기에 떨어져서 서로 그리워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 지금 ‘ 이 시간들이 후에 어른이 된 너의 삶에 빛과 거름이 되는 잊지 못할 학창 시절이 되기를,

가슴 깊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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