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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추리 Feb 28. 2019

 28살 임신부는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그 사건 뒤에는 무엇이 있나 - 1>>


어느 28살 임신부의 얘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28살 임신부는 충격적 사건의 범인입니다.

범행을 설명하기 전,  먼저 시 한 구절을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리움의 강으로 흐르는 시월은

밤이면 밤마다 님을 부르고

먼발치 돌아가는 님의 아쉬움에

오늘도 지는 밤은 그리움이다 “


어떤 느낌이신가요? 잘 쓴 시인지 아니면 못 쓴 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감성이 풍부한 느낌이 드는 거 같기도 합니다.


이 시를 쓴 사람은 전현주라는 여성입니다. 오늘의 끔찍한 주인공이죠.  그녀가 26살 때 썼다고 합니다. 고위 공무원인 아버지 밑에서 비교적 유복하게 자란 전현주는, 어느 대학 무역학과에 입학해 1993년 졸업했습니다. 대학시절엔 글쓰기를 유난히 좋아한 학생으로 기억되고 있고 그래서인지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녔지만 전현주는 그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을까요, 1995년 그녀는 26살에 다시 대학에 입학합니다. 이번엔 어느 전문대학 문예창작과, 비로소 자신의 적성을 살린 것이죠.


원하는 대학에 다시 들어간 그녀는 학생회 일에도 참여를 하고 동기들로부터 언니로 불리며 원만한 교우관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작가를 꿈꾸는 활기찬 20대 대학생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뭐 특별히 아쉬울 게 없는, 아니 또래보다 훨씬 즐겁게 잘 지내는 모습 아닐까요?


그런 전현주에게 2년 뒤 28살 되던 해, 특별하다면 매우 특별한 일이 생기는데요, 학교 선배와 결혼을 한 것입니다. 결혼은 자연스러운 인생의 과정이기도 한데 특별하다고 한 건, 결혼으로 그녀의 일상에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열정적인 사랑에 빠져 결혼을 강행한 전현주는 학교 수업에 집중할 수 없어 결국 졸업을 못하게 됩니다. 게다가 갑작스러운 결혼 얘기에 전 씨 부모는 반대했고, 전 씨와 부모 사이 정서적 경제적인 유대는 많은 부분 끊어지게 됩니다.


서울 신길동의 반지하 단칸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전현주는 이전에 경험 못한 가난을 마주합니다. 인형극을 하던 남편의 벌이는 신통치 못했고, 전 씨는 결혼 전 이미 임신을 해 직접 돈벌이에 나서기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빚이 늘어갔고 넉넉하게 자란 전 씨의 씀씀이는 점차 한계에 다다랐죠.


이런 20대의 삶이었고 이런 결혼 생활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범죄의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고 보시나요? 아니면 말도 안 되는 변명일 뿐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하여튼 전현주는 결혼한 지 불과 6개월 뒤 만삭의 몸을 이끌고 무서운 결심을 하고 실행에 나섭니다.


경찰에 검거된 전현주 (MBC뉴스 화면)


1997년 8월 30일, 임신 8개월의 전현주는 서울 잠원동의 한 동네를 서성입니다. 오후 1시 반. 뉴코아문화센터로 영어 강습을 받으러 오는 초등학생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유난히 용모가 깔끔하고 어딘가 옷차림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소녀 한 명이 눈에 들어오죠. 전현주는 다가갑니다. 서두르지 않습니다. 아이가 놀라지 않게 부드럽게 인사만 나눈 뒤 전현주는 소녀의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립니다. 만삭의 여인은 뙤약볕 아래서 아이를 기다리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오후 3시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그 아이에게 전현주는 다시 다가가 유인하죠. 총명한 아이였지만, 얼굴을 아는 아줌마의 따뜻한 미소까지 경계하기에는 너무 어린아이였습니다.


아이를 데려간 곳은 그녀 남편이 인형극을 하며 임대했던 사당동의 한 건물 지하실입니다. 이미 몇 달치 임대료도 내지 못했고 사용하지도 않았지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비밀스러운 장소임은 누구보다 그녀가 잘 알고 있었죠.


아이에게 물어 이름과 집 전화번호를 알아냅니다.   


아이는 매우 길고 특이한 자신의 이름을 야무지게 말했습니다.  “박초롱초롱빛나리예요”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길 부모가 바라고 있는지 길고 특이한 이름에서 여러분도 고스란히 느끼실 겁니다. 초등학교 2학년 박초롱초롱빛나리는 임신부 유괴범의 잔인한 손아귀에 갇히게 됐습니다.


같은 시간 아이의 부모는 불안한 직감에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아이가 늦게 돌아올 이유와 사정은 없었죠. 게다가 어떤 아줌마와 함께 갔다는 목격담까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후 6시 그러니까 납치 3시간 뒤, 전현주는 아이의 집으로 전화를 겁니다.

통화는 짧았습니다.

전현주는 자신이 나리를 데리고 있다는 사실만 알린 채 첫 번째 통화를 끊습니다.


현재까지 성공적이라고 만족합니다. 그러나 지하실에 갇힌 아이는 점점 불안해하며 집에 보내달라고 보채기 시작합니다. 전현주는 아이에게 수면제를 먹여 잠들게 하려 하지만 배고픔과 두려움에 지친 아이는 잠을 이루지 못했고, 전현주는 아이의 목을 졸라 살해합니다.


납치한 바로 그날 밤에, 아이 부모에게 협박도 하기 전에, 아이를 살해한 것입니다. 나중에 아이를 부검한 결과, 아이의 소화기관은 비어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먹이지 않은 것이죠.


입과 코는 테이프로 봉하고 손발은 결박한 상태에서 등산용 가방에 발가벗겨 넣었습니다.


아이를 살해한 전현주는 아이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협박에 나섭니다.


납치한 다음날 오후 4시쯤 전현주는 두 번째 전화를 걸어 2천만 원을 준비하라고 요구합니다.


전날 짧은 통화와 달리 이번엔 발신지 추적이 가능했습니다. 전화를 건 곳은 명동의 한 공중전화 박스. 형사들을 급파했을 때 현장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습니다. 경찰은 이 공중전화기를 통째로 뜯어와 지문을 채취했으나 당연히 여러 사람의 지문이 섞여 있었습니다. 보완 증거로는 가능하지만 범인을 지목하는 증거는 되지 못했죠.


그러나 아직 경찰의 접근을 눈치 못 챈 전현주는 그날 밤 9시 세 번째 협박 전화를 겁니다. 이번 발신지는 명동의 한 카페. 당시 카페에는 각 좌석마다 전화기가 놓여 있어 손님들이 자유롭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경찰이 현장을 급습했을 때는 전현주가 전화를 끊은 직후였습니다.


당시 카페 손님은 13명. 이 가운데 틀림없이 범인이 있는 겁니다. 물론 전현주도 있었죠. 그러나 전현주는 임신부라면서 거세게 항의했고 경찰 역시 설마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합니다. 인적사항 확인과 지문을 채취한 뒤 경찰은 범인을 눈앞에서 그냥 보냈습니다. 전현주는 당연히 잠적해 버렸습니다. 턱밑까지 쫓아갔다 생각했지만 수사는 순간 길을 잃고 경찰은 사흘 뒤 공개수사로 전환합니다. 제보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던 거죠.


이 무렵 경기도 군포에 사는 한 중년 남성은 자신의 집 근처에 경찰로 보이는 사람들이 자주 보이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세상은 박초롱초롱빛나리양 유괴사건으로 떠들썩해 뒤숭숭한 분위기. 뭔가 심상치 않은 걸 직감한 이 남성은 경찰에 스스로 전화를 걸어 왜 자신의 집 근처에 경찰이 자꾸 오는지 묻습니다.


실은 명동 카페에 있던 손님 13명 모두의 집 주변에 형사들을 배치했던 거였습니다. 경찰은 그들 중 누군가가 범인이라 믿었지만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특정이 안 되는 상황이었죠. 경찰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협박범의 목소리를 들려줬습니다. 목소리를 들은 남성은 오래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 딸이 맞습니다”  마침내 9월 12일 서울 신림동의 한 여관에서 전현주를 검거합니다. 사건 발생 14일째, 아버지의 신고로 범인은 잡았지만, 아이는 사당동 지하실에서 알아보기도 힘들 만큼 부패한 상태로 발견됐습니다.


재판정에 나오는 전현주


지옥 같은 14일은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그런데 범인을 둘러싼 혼란은 이후 한동안 계속됐습니다. 과연 이런 끔찍한 범행이 그녀 혼자 벌인 일일까. 이런 일을 벌일,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가장 강하게 주장한 사람은 그녀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그녀를 제일 잘 아는 남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경찰도 감히 단독범행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전현주 본인이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성폭행을 당했고 자신을 성폭행한 일당이 유괴를 강요해 심부름만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인형극 사무실을 보러 온 남자들이었다고 설명하기도 하고 일당 중 한 명의 이름을 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확인해보면 모두 사실이 아니었고 앞의 말과 뒤의 말이 맞지 않았습니다. 그럴 법했지만 허구였던 것이죠.


검찰은 급기야 정신과 전문의를 증인으로 세우기에 이릅니다. 당시 전문의의 판단은 이렇습니다. 전현주에게는 연극성 인격장애가 있다는 겁니다.


연극성 인격장애란 주변의 우호적인 관심에 과도하게 집착해 과장된 언행 심지어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그런 정신적 장애를 말합니다. 가공의 인물, 가공의 상황을 창조해 낸 뒤 그게 실제인 양 행동한다는 설명입니다.


결국 전현주 단독범행으로 결론 났습니다. 그녀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2년째 복역 중이고 검거 직후 출산한 아이는 외국으로 입양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녀는 왜 그랬을까요? 비교적 순탄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대학시절도 원만했습니다. 신혼생활을 한 신길동 동네 주민들은 얌전하고 조용한 새댁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앞서 얘기한 대로 처음 겪는 생활고에 괴물이 된 걸까요?


 갑작스러운 가난과 정신적 장애까지 감안하더라도, 평범한 이웃의 얼굴을 했던 그녀가 왜 그리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게다가 곧 아이 엄마가 될 사람이 왜 그렇게 잔인했는지는 여전히 이해하기 힘듭니다.  


괴물의 실체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평범한 이웃이 무서운 괴물이 될 수 있다는 놀라운 반전만이 보일 뿐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바로 이런 반전이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는 게,  실은 이 세상의 가장 무서운 괴물 아닐까요? 전현주 사건은, 우리 곁의 괴물은 평소엔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교훈으로 남겨준 것은 혹시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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