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조금 다른 생각

<휴먼카인드>를 읽고

by 여담

책을 읽는 것만으로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일은 당연히 없다. 하지만, 읽고 나서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조금은 바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은 아주 가끔 툭 나타난다. 그 변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복리로 커진다. 이 책을 읽고 10년을 보낸 나와, 읽지 않고 10년을 보낸 나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생길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런 책은 물론, 자주 만나지는 못한다.



읽고 생각한 것들


인간(호모 사피엔스)의 마음 속 깊이 폭력성이 잠재해 있다는 생각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므로 법과 제도,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상식적인 것처럼 보인다. 홉스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라는 정의 이후로 많은 증거들이 이를 뒷받침해 왔다. 매일 나오는 뉴스들도 이 생각을 굳건하게 만든다. 이 책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인간의 악한 본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가 흔히 드는 예시들 중 많은 사례나 실험 결과가 의도를 통해 조작되거나 부풀려졌다. 역사적으로 가장 악랄한 모습으로 묘사되는 2차 대전의 독일군들의 동력은, 나치에 대한 신념이나 폭력성이 아니라 전우애였다. 대부분의 전쟁에서 살인은 원거리로 이루어졌다. 사람은 사람을 직접 찌르는 것에 대해 큰 거부감이 있다. 군대에서 하는 훈련의 핵심은 이 거부감을 약화시키기 위함이다. 그만큼 인간은 폭력을 피하고 싶어 한다.


권위있는 사람들의 인용을 무턱대고 믿지는 말 것

이 책은 홉스의 세계관을 더욱 굳건하게 받쳐온 여러 실험들과 뉴스, 심지어 소설까지도 도장 깨기 하듯 하나하나 뒤집는다. 거기엔 교과서에서 배우는 다양한 레퍼런스들도 포함된다. 실험자에 의해 결과가 조작되거나, 언론에 의해 실제와는 달리 자극적인 사실들만 부풀려져 전달되며 화제가 된 이야기들이 권위있는 저자들의 인용을 거치며 점차 신빙성을 획득한다. 권위있는 저자들 - 말콤 글래드웰, 재러드 다이아몬드, 스티븐 핑커 등의 책에서 인용된 이야기들이 실제와 다른 부분들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부드럽게 지적한다. <사피엔스>를 쓴 유발 하라리의 의견(네안데르탈인에 대한 호모 사피엔스의 인종 청소)에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추천사를 쓴 유발 하라리의 쿨함이 인상적이다. 다른 저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려나.


주위에서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실제로 그가 어떤 사람이 될지에 영향을 미친다

노르웨이 교도소의 수감자들은 인간적인 대우를 받는다. 그들을 인간으로 대할 때, 시설 내에서의 사건 사고도 줄어들고, 그들이 나와서 사회생활을 할 때 재범률도 미국의 교도소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다. 연구자들이 더 똑똑하다고 믿는 쥐가 실제로 더 똑똑해졌다는 실험 이야기는 매우 인상적이다. 넷플릭스의 성공을 분석한 책 <규칙 없음>에서 넷플릭스의 CEO는 '왜 열심히 공들여 능력 있는 이들을 채용해 놓고 애들처럼 대하는가? 구성원들을 어른처럼 대하면, 그들은 어른처럼 군다'고 말했다. 팀을 리딩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생각해 볼 만한 주제다.


그리고 인상깊었던 것들

얼굴이 붉어지는, 즉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인간만이 갖고 있는 특성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뻔뻔한 사람들일 수록 주목을 받기 쉽고, 권력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권력은 본질적으로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감소시킨다.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너무 쉽게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사람' 취급을 받아 왔다. 이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관점에 영향을 준다.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을 선하게 보지 않는 쪽으로 생각을 교정하게 된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기후위기와 관련하여 지금 이미 늦은 건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아직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은 것이, 실제로 극복하는데는 도움이 된다. 그 반대의 생각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얼마 전 일로 만난 분의 이야기와 이 책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