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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담 May 15. 2021

의사결정의 질이 중요하다

<룬샷>을 읽고

사피 바칼의 <룬샷>을 읽었다. 단어부터 생소한데, 룬샷loonshot은 '그 주창자를 나사 빠진 사람 취급하는, 대다수가 무시하고 홀대하는 미친 프로젝트'를 뜻한다. 이 책은 가장 중요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룬샷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물리학에서 쓰는 ‘상전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읽고 생각한 것


리더라면, 예술가 유형의 직원과 병사 유형의 직원을 똑같이 사랑하라

지인이 다니는 회사의 최고 브랜드 책임자(CBO)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걸핏하면 공식회의에서 다른 팀의 팀장들에게 브랜드를 너무 모른다며 무시하는 발언을 한다는 것.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일수록 자신의 전문 영역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마법의 열쇠인 양 믿는 경우가 많다. 책에는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는 걸핏하면 자신과 다른 유형의 팀원들을 ‘멍청이’라며 무시하는 발언을 했었다고 한다. 본인이 예술가 유형이므로 예술가 유형의 직원들을 편애했다고. 그러나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나고 경험한 것들을 통해 잡스는 병사 유형의 직원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배웠고, 애플에 돌아와서 팀 쿡을 채용했다.

내가 지금까지 다녀본 회사들 중 가장 재미있는 결과물을 많이 만든 곳은 광고대행사였다. 광고대행사는 말하자면 병사에 가까운 기획팀(AE들)과 예술가에 가까운 제작팀(카피라이터와 아트디렉터들)이 함께 일한다. 그리고 그 두 팀이 동등하게 협업할 수 있는 환경에서 주로 좋은 결괴물들이 나왔다.

+ 취업이나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면(그리고 선택권이 있다면) 자신의 유형을 잘 파악해서, 자신이 속한 유형의 팀원들이 존중받는 분위기의 조직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찾는 것이 중요할 수 있겠다. (유형을 잘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결과주의 사고보다는 시스템적 사고를

얼마 전 오랜만에 주말 아침 달리기에 성공했다. ‘오늘은 의지가 충만했군, 뿌듯해, 잘 했어’ 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면 결과주의적 사고다. 반면, 시스템적 사고는 앞으로의 주말 아침에 더 달릴 확률을 높게 만드는 과정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내 경우엔 전날 일찍 잠드는 것이 중요했다. 일찍 잔 다음날 아침에 뛸 확률이 더 높았다. 일찍 자기 위해선, 전날 오후 2시 이후엔 가급적 카페인을 섭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밤에 드라마 시청이나 게임을 시작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또 찾아보면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개인의 습관이든 조직의 의사결정이든, 한 번의 좋은 결과가 가져다주는 것은 별로 없다. 열번, 백번의 갈림길에서, 좋은 선택을 할 확률이 높은 시스템을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책에는 체스 챔피언의 사례가 나온다.) 이 책에 따르면, 좋지 않은 시스템에서 나오는 가끔의 좋은 결과는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유’를 집요하게 물어야 한다. 의사결정의 질이 중요하다.


기업 내 뿐 아니라 산업 내에서도 룬샷 그룹과 프랜차이즈 그룹이 필요하다

할리우드의 대형 스튜디오들은 처음에 영화 산업과 관련한 모든 것을 직접 했다. 제작과 투자배급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거대 자본 몇몇이 독식하는 형태였다. 배우나 창작자들에게 불리한 계약들이 많이 이뤄졌다. 정부는 독과점을 이유로 산업에 손을 댔고, 스튜디오들은 특정 사업부문들을 정리했다. 이 과정에서 시장이 크게 둘로 나뉘었는데, 몇 개의 대형 프랜차이즈 스튜디오들과 수백 개의 작은 독립영화사 네트워크다. 그리고 이 두 시장 사이의 끊임 없는 교류로 산업이 번창한다. 프랜차이즈의 안정적인 수입으로 산업이 버티고, 독립 영화사들의 재미있는 시도들이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같은 영화들로.)

국내의 영화 투자배급사에서 일한 적이 있어 더 와닿는 대목이다. 비슷비슷한 시나리오들과 메이저 배급사들의 개봉작들 사이에서 좀 지쳐있을 때, 극장에서 <족구왕>을 봤는데 그 신선함은 무척 강렬했다. ('족구하지 마!' 라는 대사가 여러 번 나오는 영화다)

얼마 전 CGV 아트하우스 팀 해체와 KT&G 상상마당시네마 팀 해체 소식이 들렸다. 한국 영화산업 전반과 관련하여서도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의미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재미있었던 것들

어떤 조직이든 규모가 커질수록 룬샷을 추구하기 보다는 사내정치가 늘어나는 매직넘버가 있다. 조직의 구조와 비금전적 보상(소프트 에쿼티) 등을 잘 설계하면 이 매직넘버를 좀 더 높이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가 아는 많은 것들이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미국 기관에서 나왔다. 그중엔 인터넷, gps, 아이폰 시리 등의 씨앗이 된 기술들이 있다. 이 조직에서 아주 많은 기이하고 쓸모없는 아이디어들도 함께 나왔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재판을 들어가기 직전 판사들에게 주사위를 굴리게 했더니 큰 숫자가 나온 판사들이 내린 형기가 60퍼센트나 높았다. 우리는 우리의 이성에 대해 늘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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