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늑대>를 읽고
마크 롤랜즈의 <철학자와 늑대>를 읽었다. 저자는 브레닌이라는 늑대와 함께 살았던 시간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를 성찰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인간 사회라는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므로 인간이라는 종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다른 종을 가까이서 오랫동안 유심히 관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의 모습을 바라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중 이질적인 요소들이 보이기도 한다. 이 책은 그 요소들을 깊이 파고들어 가만히 생각해보게 한다.
인간은 시간을 과거에서 미래로 뻗어나가는 일직선으로 인식하는데, 거기엔 단점도 있다.
지인의 강아지를 맡게 되어 1년 넘게 함께 살고 있다. 이름은 루이다. 외출을 하고 돌아올 때면, 루이는 매번 현관으로 뛰어나와서 나를 반가워 하는데, 신기하게도 그 반가움의 정도는 거의 일정하다. 어제 봤으니까 오늘은 적당히 반겨줄게, 하는 일은 없다. 나와 재회하는 그 순간의 루이에겐, 그 순간만이 존재한다. 어제도 다시 만났고 내일도 다시 만날 것이라는, 과거와 미래가 끼어드는 일 같은 것은 없다. 그러므로 그 순간을 온전히 경험한다. 인간의 현재는, 온갖 불순물(주로 과거와 미래)로 혼탁하다. '현재에 충실하라'라는 메시지가 도처에서 들려오지만, 그 역시 '더 나은 미래'나 '이루고자 하는 바'를 위해서인 경우가 많다. 시간을 일직선으로 인식하는 데에서 욕망, 목표, 과제 등의 개념이 생겨난다. 행복하려고 삶의 의미를 강하게 좇지만 그 일직선의 끝에는 죽음이 있다. 사람들은 삶의 의미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잘 모르는 채로 그걸 좇느라 행복해지기가 어렵다. 명상이 현재에 집중하는 기술을 연습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가 있어 보인다.
죽음은 그 당사자에게서 정확히 무엇을 앗아 가는가?
사람의 죽음이 다른 동물들의 죽음보다 더 비극처럼 보이는 것은 그 사람이 죽지 않았다면 누렸을 미래를 죽음과 함께 잃는다는 인식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동안 추구하며 열심히 살아온 무언가를 앞두고 있다거나, 곧 이룰 수 있었을텐데 하는 가능성들. 그런데 미래는 실재하는 것인가? 그것을 어떻게 확실하게 알 수 있는가? 죽음이라는 순간을 지나면, 당사자에게는 미련도, 과제도, 가능성도 없다.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잃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죽음은, 그 당사자에게가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에게서 무언가를 앗아간다는 측면에서만 비극일 수도 있겠다. 미래에 대한 생각을 너무 많이 하며 살아온 나에게 이런 사고실험은 어려운 일이다. 일상에서 가끔 찾아오는 좋은 순간들 - 산책하다 좋은 바람을 맞거나, 입맛에 딱 맞는 커피를 맛보는, 그 밖에 수많은 것들을 경험할 기회를 잃는다는 것은 여전히 무서운 일로만 느껴진다. 미래가 나에게 보장된 것이라고 믿는 습관이 나에게는 너무 깊이 베어 있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기 위해 맺은 계약에는 계산이 들어있다.
홉스는 자연상태의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비참하고 불쾌하고 야만적이며 짧았다'고 했다. 그래서 인간은 서로 계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이 계약은 상호주의 원칙을 기반으로 한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기로 약속함으로 나도 피해입지 않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자유의 일부를 내놓는다. 그런데 이 계약은 모두를 포함하지 않는다. 즉, 애당초 나에게 피해를 입힐 수 없는 아주 약한 존재들과는 계약을 맺을 필요가 없다. 굳이 내 자유를 내어주고 얻는 것이 없으므로. 이 계약은 내가 기대하는 이득을 위한 의도적인 희생을 의미한다. 영장류는 기대 이득과 희생 사이의 셈을 한다. 이러한 계산은 사회라는 시스템에 필연적으로 포함되었고, 인간의 영혼에 스며들었다. 아마 문명화가 되기 전 인간 사이의 친밀함은 이와는 달랐을 것이다. 적어도 기대 이득을 셈하는 종류는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가 반려동물을 사랑하며 느끼는 위로는, 오랜 시간 잊고 지낸 조건 없는 친밀감에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상깊었던 것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비교하여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는데 엄청난 시간을 쓴다. 이 역시 미래에 대한 개념이 달라서이다.
개와 늑대는 서로 다른 진화의 시간을 거쳤다. 개들은 인간에게 의존하는 방향으로, 늑대는 야생에서 스스로 살아가는 방향으로. 고리가 걸려 있는 문이 있을 때 개들은 그 문 앞에서 인간을 쳐다보고, 늑대들은 어떻게든 문을 여는 방법을 터득한다.
철학의 유용한 사고법 중 하나는 누군가 어떤 주장을 할 때 그 전제를 되짚어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동물에 대한 담론에서 전제를 짚어보면 그 속엔, 인간의 거만함이 표현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여러 명이 한 판의 피자를 가장 공정하게 먹도록 자르는 방법은, 마지막에 피자를 고를 사람에게 나눠 자르도록 시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