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하지 않기 위한 노력

<노마드랜드>를 읽고

by 여담

제시카 브루더의 <노마드랜드>를 읽었다. 이 책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노년층 노마드들을 다룬다. 그들 중 다수는 미국 부동산 가격이 너무 높았을 때 대출을 받아 집을 샀고, 그 집의 가격이 거의 절반으로 떨어지자 금융 비용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것 중 무엇을 버릴 수 있을 지 치열하게 고민했고, 결국 집house을 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밴이나 RV를 집home으로 삼아 돌아다니며 일하고 살아간다. 그 와중에 자신들만의 커뮤니티에서 행복한 장면들도 만들고, 친구도 사귄다. 자신이 열심히 준비해 온 미래에서 그들을 멀리 밀어내 버린 것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의 실패지만, 멀리 밀려난 곳에서도 희망을 찾는 것은 결국 개인들의 연대다.



읽고 생각한 것


자신이 취재하는 사람들을 무례하게 대하지 않는 태도

이 책에 등장하는 노마드(혹은 '타이어 떠돌이', 혹은 '워캠퍼Workamper')들은 이미 여러 차례 미국 언론에 소개가 되었던 것 같다. 때로는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이들로, 때로는 2008년 금융위기로 길에 내몰린 이들로.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구도 그들을 간단히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가 길에서 만난 이들은, 당연하게도 저마다의 사정과 사연과 성향과 가치관이 있다. 그리고 저자는 그들 하나하나에 시간을 들여 귀를 기울이고 담담히 우리에게 소개한다. 마치 소설가가 등장인물에게 귀를 기울이듯이. 그리고 그 태도가 묵직한 신뢰감을 준다.

이는 우리가 자주 접하는 언론의 태도와 정반대이다. 기자들은 '야마'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는데, '야마를 잡는다'는 것은 자신의 취재를 매끄럽게 엮어줄 하나의 주제를 정한다는 뜻으로 쓰인다고 한다. 그 주제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을 선별적으로 골라 인터뷰한다. 주제를 부각시킬 수 있는 소재들을 취하고 나머지는 버린다. 그 과정에서 한 사안을 여러 측면에서 바라보게 하는 가능성은 깎여 나간다. 뉴스가 디지털로 옮겨오면서 그 정점에는 제목이 있는 듯하다. 제목은 곧 클릭률이니까.

저자는 이들의 한 가지 측면만 부각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꽤 많은 분량을 그들의 고유한 사연과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드러내는데 할애한다.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 노마드가 되어 몇 개월 동안 살아보기까지 한다. (아마존에서 일한 경험에 대한 묘사는 SF 소설의 배경처럼도 보인다.)

나는 이 책이 자신이 취재하는 사람들을 최대한 무례하지 않은 방식으로 대하고자 했던 한 저널리스트의 3년 간의 분투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이 책은 잘 보여준다. 누군가 이렇게 고생해준 덕분에 우리 역시 그들에게 무례해지지 않을 수 있다. 언젠가 저널리즘에 관해 배운다면, 이런 사람한테 배우고 싶다.


유연하고 좋은 일자리라는 허구

아마존에서는 꽤 오래 전부터 캠퍼포스라는 이름으로 워캠퍼 고용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워캠퍼들은 계절성 인력을 찾는 고용주들에게는 너무나 편리한 옵션이다. 필요한 때 필요한 장소에 집을 스스로 가지고 나타나 성실히 일한다. 무언가를 많이 원하지도 않는다. 노조를 조직할 만큼 오래 머물지도 않는다. 캠퍼포스는 잡페어에서 노마드들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 기념품을 나눠주고 계절성 일자리 지원을 받는다. 워캠퍼들을 대상으로 발행하는 뉴스레터에는, 이 일자리에 대한 좋은 말들이 가득하다. '높은 활동량으로 날씬해 지세요', '친구를 만드세요', '당신의 근면함을 증명하세요' 등등. 하지만 그 말들 뒷편의 현장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사건 사고가 빈번하며, 고령의 워캠퍼들이 이겨내기에 너무 강도가 높다. 그래서 벽면엔 아마존에서 설치한 진통제 자판기들이 있다. 그러니까 아마존도 알고 있다. 그들에게 진통제가 필요할 거라는 것을.

그럼에도 워캠퍼들에게는 이 일자리들이 꼭 필요하다. 일하다 몸이 상했는데 잘리지 않아서 감사해하는 이들도 있다. 최근 아마존이 언론에 하는 이야기들을 보면, 그들은 실제로 이 프로그램이 윈윈이라고 강하게 믿고 있는 듯하다. 재무제표에 영업이익율을 조금 더 매력적으로 만들려는 쪽의 니즈와, 최소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일이 절실한 쪽의 니즈가 맞아떨어지는 것에 윈윈이라는 표현을 붙이는 일은, 너무 잔인하다.

작년에 읽었던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라는 책도 떠올랐다. 미국에서 우버형 스타트업이 쏟아지면서, 회사들은 자신의 플랫폼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직원'이 아니라 '독립 노동자'로 취급하기 위한 각종 방법을 연구하고 실행했다. 그래야 직원에게 제공해야 하는 의무 휴가나 복지 등을 제공하지 않아도 되니까. 많은 언론에서 이를 '혁신'이라고 불렀고, 벤처 투자사들은 이 '혁신'에 거금을 투자했다.


그리고 인상깊었던 것들

영화 <빅쇼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브래드 피트가 돈 벌어서 좋아하는 젊은 투자자 두명에게 화를 내는 장면이다. 미국이 망하는 것에 돈을 걸어 번 것이니 다시는 자기 앞에서 기뻐하지 말라고 하며. 이 책에 등장하는 노마드들 중엔 그 당시 집을 사고 감당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이 많다.

노마드 생활을 하는 것마저 흑인에게는 더 어려운 일이다. 경찰도, 동네 주민들도 차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백인이어야 그나마 덜 위협적으로 느낀다.

미국의 방어 기제 중 하나가 '긍정적 사고'라는 대목이 인상 깊었다. 미국이라는 자본주의의 최첨단 시스템은 너무 많은 실패를 하고 있는데, 그걸 개인들의 긍정적 사고로 겨우 덮고 가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의 경우는 그 동력이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돼'라는 생각일지도.

이 책을 원작으로 나온 영화는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다. 연출은 클로이 자오가 맡았는데, 클로이 자오는 올 하반기 개봉할 예정인 마블의 [이터널스]도 연출했다고 한다. 직접 본인이 자료를 만들어 찾아가 마블에 어필했다고. 영화 [노매드랜드]는 구매만 해두었는데 얼른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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