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17
(photoshop cs6)
사과는 항상 아래를 보고 자란다
뽀얗던 알살이 붉어진 건,
제 몫의 부끄러움을 알기 때문이다
사과는 참 상징하는 것도 많고, 이래저래 우여곡절도 많은 과일이다. 백설공주, 아담과 이브, 뉴턴, 애플사 등. 악연이라면 악연이고, 인연이라면 인연이겠지. 무엇보다 과일 이름 자체도 '사과'라, '사과는 항상 아래를 보고 자란다.'를 주제문으로 시를 쓰려고 수첩 귀퉁이에 메모해뒀는데, 흠. 까마득하다.
오늘은 그 많고 많은 사과의 '죗감' 중, 백설공주의 사과와 애플사의 사과에 관한 잡담.
'애플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신제품 출시 때마다 길게 늘어선 줄과 꼬박꼬박 신상으로 바꾸는 아이폰 유저들이다. 기분 탓인지, 아이폰 유저들 중 유독 얼리어답터가 많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얼리어답터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새것을 추구하는 만큼, 그 누구보다 빨리 옛것을 외면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편이라―삐뚤어지고 편향된 시선인 건 알지만―얼리어답터적 성향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 자체와는 별개의 문제로 그 성향'만'.
난 워낙 애착증이 심한 사람이라, 아마 상극인 거겠지.
내 애착증의 단면을 들추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단연 이불에 관한 것이다. 고등학교 때였던가, 아기 때부터 덮었던 내 이불을 엄마가 낡았다는 이유로 말도 없이 뜯어버렸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는 여느 집 아이들이 애완동물 묻어주듯 그렇게, 오열해가며, 내 손으로 솜을 가져다 버렸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며 덮고 있는 이불도 대학교 입학 전, 기숙사에서 쓰려고 샀던 이불이다. 올해 이사하면서 새 침구를 샀음에도 벌써 6년째 틀어 안고 있다. 시집갈 때야 버릴 듯 하다. 하도 어릴적부터 그랬다 보니, 심지어 비밀번호 찾기 문답도 죄다, "보물 제1호는?" "이불"이다.
더군다나, 얼리어답터를 마음에 대입하자면 그 마음은 너무 모나고 아프지 않나.
백설공주가 수많은 왕자를 그렇게, 계속해서 갈아 치웠다면 영, 사랑스럽지 않잖아. 아주 만약, 그런 여자 매력 있어!라고 한다면 도널드 바셀미의 <백설공주>를 읽어보시길. 제제 논란 당시, 혼자 화나서 페북에 올렸던 글로 약간의 스포를 해 본다.
저건 홧김에 쓴 거고, 실은 읽는 내내 '와, 이렇게 멋들어지게 비꼴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던 책이다. 한 언어의 말놀이를 다른 언어로 완벽히 옮기기엔 무리가 있어서 그런지, 문장이 이상한 대목이 조금 있었지만, 과제 때문에 두어 번 반복해서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새로운 비꼬기 기술이 발견되어 신기했던 책이다.
여튼 각설하고,
그래서 난 느리게, 아주 느리게 왕자님을 기다리고 있다. 애초에 난 게으른 사람인 걸. 조금 더 늦어지면, 뭐, 또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