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행선지를 말하지 않고 헤어졌는데 어떻게 이곳에서 만났나 싶어서 놀란 눈으로 서로를 쳐다본다.
그녀와의 처음 만남은 10일 전 프랑스의 지베르니 에서 이다. 클로드 모네의 물 정원과 아뜰리에, 정원이 유명하다고 해서 지베르니를 방문한다. 모네의 공간은 수련이 있는 연못과 정원이 있는 아뜰리에로 나뉜다. 그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가꾼물 정원을 가랑비 속에 하염없이 본다. 도시락(빵, 과일, 요거트)을 먹으며 빗속의 정취 속에 바라보다가 아틀리에로 향한다. 초록 창틀을 가진 분홍 벽돌 건물 주위로 주홍, 분홍, 보라빛깔의 꽃들이 만발했다. 모네의 아틀리에 창은 창틀이 초록색이고 창밖으로 멋진 풍경이 한눈에 들어와 최고의 포토존이었는데 예쁘게 남기고 싶어서 주위를 둘러본다. 한국 사람이 찍어주면 이쁘게 담길 텐데……가녀리고 착하게 동그란 눈을 가진 20대 여성분이 눈에 들어온다. 다행히 한국분이었고 사진을 부탁한 것이 계기가 되어 간단히 말을 나눈다. 짧지만 교감을 느끼고 더 이어갈 새 없이 각자의 속도로 아틀리에를 나선다. 마을이 예뻤다. 이른 아침에 깔끔하고 아담한 마을을 산책하고 싶었다.
아, 숙박을 했더라면 좋았겠다. 비가 내리니 더 운치가 있어서 걷고 걷고 걷다가 일행을 못 만나면 어쩌나 걱정이 될 정도로 멀리 나온 느낌을 받았을 무렵 아까 만난 여인과 마주친다. 이야기를 좀 더 나누고 싶다고 생각을 했는데 다시 만나서 반가웠다. 한국의 거주지가 멀지 않고 대화가 통하는 것 같아서 한국에서 만나자며 인스타를 주고받고 헤어진다.
지베르니의 여운을 이어가려고 다음날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에 간다. 오랑주리 미술관에는 클로드 모네의 수련 그림을 중심으로 인상파, 후기 인상파 그림들이 있다. 미술관의 주역은 1층에 전시하고 있는 모네의 수련 여덟 점인데 수련이 있는 방에 고요한 지베르니가 담겨있다. 놓칠 수 없는 기회야. 1시간 가까이 자칭 ‘모네 멍’ 때리기를 한다. 모네의 넓은 연못에서 차 한잔하고 있다고 상상하니 원희 님 생각이 나서 연락을 한다. 그녀는 반갑게 답글을 건네며 저녁식사를 제안한다.
다시 만난 날은 가우디가 만든 건축물들 위주로 동선을 짠 가우디의 날이었다. 까사비센스, 까사밀라, 까사밀라 카페를 다닌다. 가우디가 맨 처음 설계한 주택인 까사 비센스는 신선함과 안식이 가득했고 공간내부를 갤러리로 만들어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지베르니를 찍은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에 고요하고 생생한모네의 연못이 담겨 있었다. 잠시였지만 지베르니를 함께 한 원희 님을 떠올리고 연락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사진 한 장을 찰칵, 남긴다. 그리고 까사밀라에 왔는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원희 님을 만나다니! 프랑스에서 만났고 방금 전에 생각한 그녀가 바르셀로나에 있다니 믿을 수 없어.
머릿속에서 변주곡이 울린다.
같은 시각, 원희 님은 여행을 홀로 다니다 보니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는 얼굴을 만나니 주저앉을 만큼 반갑고 놀랐단다.
“우리, 인연이네요.”
까사 밀라 옥상에서 즐거운 해후를 하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왔고 원희 님은 프랑스에서 런던, 런던에서 시간을 보내고 스페인으로 왔단다. 같이 식사를 하고 싶었지만 원희 님이 사그라다 파밀리에가 예약되어 있어서 한국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진다.
다음 날 호안미로 미술관을 방문한다. 호안미로 미술관은 몇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긴 벤치에 누워서 바르셀로나 풍경을 보며 쉴 수 있는 공간, 통유리로 이루어진 창밖을 보며 맛 좋은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을 갖춘 비교적 큰 규모의 미술관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녀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다시 마주친다. 자주(?) 보니 이제 친근하기까지 하다. 바르셀로나에서만 두 번이다.
한국의 겨울, 세 번째로 만난 우리는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안부를 묻는다. 원희 님은 예술 작가이다. 유럽에 가기 전에 작품을 설치, 전시했던 과정과 관람객들의 피드백을 설명해 주는데 작품에 담긴 의미, 해석 등이 흥미로웠다.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전시방법이라 그녀의 남다른 시각에 감탄한다. 최근에 가족여행을 갔던 이야기도 들려주니 친근감이 느껴진다.
해외에서 만난 한국분들은 내가 예술가일 것 같다며 자유로운 느낌이 든다고 했다. 런던에서는 큐레이터 예랑 님과 가까워져서 한국에서 다시 만나고 프랑스에서는 원희 님과 가까워져서 한국에서 만난 걸 보니 내가 예술적 성향이 있나 보다. 원희 님이 출근을 해야 해서 아쉽게도 다음 달을 기약하며 헤어졌는데 어쩌다 보니 만나지 못하고 여름이 된다.
여름, 그녀가 생각나 연락을 한다. 다행히 일정이 맞아서 만나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하여그녀의 집가까이에서 만난다.컨디션이 좋지 않은데 만나는 날을 미루지 않는 것을 보니 무슨 이유가 있나 봐, 바쁘게 시작하는 일이 곧 있나 보다.라고 생각한다.
두 계절이나 지나서 만나는 만남. 두꺼운 코트가 아닌 가볍고 화사한 흰 블라우스를 입고 예쁘게 미소 짓고 있는 원희 님을 보니 너무나 반가웠다. 내게 주려고 만들었다는 노란빛이 도는 팔찌에 감동을 받기도 전에 그날의 만남은 이별로 이어진다. 예상이 맞았지만 아쉬운 방향이었다.(바빴어도 연락을 해서 만났어야 했는데라는 생각도 잠시였다. 서로 그럴 시간도 없었겠구나 싶었다.)
올해 봄, 프랑스 대학교에 입학원서를 냈고 '합격'해서 '출국 전'이라는 기쁘고도 내 입장에서는 아쉬운 소식을 접한다. 유학을 가기 전에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단다.(아, 고마워라. 기억해주다니) 그런데 출국 전까지 날짜가 촉박해서 만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내가 먼저 연락 줘서 반가운 데다가 다행히도 날짜까지 딱 맞았단다. 그녀의 유학준비 과정을 들으면서 작년에 프랑스로 여행을 온 연유, 어떤 준비를 진행해 왔는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유학을 가기 위해 오랜기간 꾸준히 일하며 모아 온 돈으로 가는 당당함도 대단한데 직접 혼자서 준비하는 과정이 감동이었다.
한국에서 처음 만난 겨울날, 그녀가 말했다.
“유럽은 곳곳에 예술작품과 영감을 주는 문화유산들이 넘치는데 그에 비하면 한국은 풍부하지 않아서 아쉬워요. “ 거의 속상하다는 느낌의 말투가 떠올랐다.
그 말에 동의하며 열띠게 전쟁과 침략으로 인한 문화재의 소실과 경제성장을 위해 없앤 아쉬움을 이야기하며 그녀의 아쉬움을 한국이 충족시켜주지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궁금했다.
그랬던 그녀가 인생에 큰 도전을 한다. 그녀의 바람대로 된다면 학업을 마치고 해외에서 살며 작가로 활동할 것 같다. 그녀가 유학준비를 위해 떠났던 여행지에서 우리가 만난 것은 진짜 우연=인연이었구나 싶다.
이 만남에 대해 원희 님 주변 사람들도 인연이라고 한단다. 나이차가 무색하게 만나면 편안하고 즐거운 사람.
새로운 곳에서는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며 내가 파리여행할 때 갔던 교회를 알려달라고 하여 정보를 건넨다. 파리는 경비가 비싸고 입맛에 맞는 식당을 찾기가 어렵다고 기억나는 식당을 궁금해하여가성비 좋은 식당을 추천해 준다. 언젠가 내가 프랑스에 간다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며, 그녀의 작품을 직접 보는 날(온라인으로는 봤다.)을 고대하며 두 손을 모아 기도해 주고 헤어진다.
****수개월이 지나 며칠 전, 우리의 만남에 대해 써도 좋겠냐고 연락을 했는데 반가워한다. 얼마 전에 내가 추천한 양파수프집에 갔다 와서 맛있다고 연락을 하려 했는데 먼저 카톡이 와서 깜짝 놀랐단다. 우리는 여전히 인연이다.
참고로
지베르니를 투어패키지로 참여한다면 도시락을 싸가는 것을 추천한다. 투어 이동시간이 제한적이라
투어 참가자들은 식당도 샌드위치가게도 붐빈 까닭에 줄을 서야 해서 관람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그 지역에서 마주친 사람을 다른 지역에서 마주치기도 했다.
그라나다에서 만난 사람을 세비야에서 스쳐 지나간다거나 하는 일, 한국의 외국인 명소 명동에서 만난 사람을 삼성동 명소에서 만나는 일 같이 말이다. 물론 이런 일도 드물지만, 여행기간이 비슷하고 동선이 비슷해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나라와 나라가 다르게 마주친 사람은 원희 님도 나도 없었다. 그리고 대화까지 잘 통하다니 감사하고 신기한 인연이다.
-" <내게 맞는 일을 하고 싶어> 저자의 배낭여행 이야기는 매일 연재합니다. "를 희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