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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리어 클래스 Nov 04. 2024

네르하 Nerja 눈빛을 가진 트레버

<내게 맞는 일을 하고 싶어> 저자의 배낭여행

사람은 다수의 영감을 준다. 영감이 고플 땐 만나졌다.

쨍한 햇살이 가득한 자그마한 바닷가 네르하.

바닷가에 도착하기 전까지 작은 소도시에 그런 멋진 바다가 존재하는지 모를 것 같은 잔잔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

가까이 가면 알 수 없는 자연처럼 사람도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나는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첫인상으로 평가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라나다 호스텔 로비에서  청년이 네르하 Nerja에서 빠에야를 먹고 있었다.

다가가서 그 식당의 빠에야가 맛있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묻지 않는다. 먹지 않으면 처치 곤란이 될 도시락을 싸왔기에 먹어야 했다. 아. 왜 현지 식당에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미리 차단하는 도시락을 가져온 걸까? 반성은 무의미했다. 그런 실수를 여행기간 동안 자주 했기 때문이다.

알차게 도시락을 먹고 빛이 가득한 곳으로, 바다가 가득히 들어오는 곳으로 걷는다. 수영복을 깜박 잊고 준비하지 않은 치명적인 실수를 만회해야 했다.

사진이라도 예쁘게 찍고 가야지.

어제 그라나다 알바이신의 밤을 봤으니까. 오늘은 푸른빛에 물들어보는 거지.

그런 생각으로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데 빠에야 청년이 눈에 들어온다.

청년은 마치 자신을 붙잡아달라는 듯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왠지 내가 붙잡아서 말을 걸어주고 사진을 찍어주기를 바라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아쉽게도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망설이다가 인사를 건넨다. 한국분이신가요? 예상대로 한국 사람이었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쁜 사람 같지 않았다. 사실 호스텔 로비에서 인상을 봤을 때는 이기적인 느낌이 강했는데(미안합니다……) 실제로 이야기를 해보니 그런 선입견은 사라진다. 한 달 가까이 유럽 여행 중이라고 취업준비생이라고 소개한다. 엇? 힘든 시간이겠구나. 그러나 곧 생각이 바뀐다. 아! 취업했다고? 성공한 취준생이구나! 다행이다.


여행지에서 D기업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어머나, 세상에, 뛸 듯이 기뻤겠구나 싶어서 진심으로 축하해 준다. 면접에서 떨어진 줄 알고 여행이 끝나고 돌아가서 절치부심해서 준비하려 했었다며 합격소식에 감격했단다.

유럽여행으로 한 달 가까이 일을 하지 않았더니 나의 직업을 잊고 살았다. 갑자기 일터로 돌아간 느낌이다. 그의 기쁜 순간에 공감이 되면서 나의 학생(청년, 중장년)들도 이런 순간들을 맞이하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란다. 돌아가면 이런 순간을 그들이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는 외국인이 찍어준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내게 사진을 부탁했다. 해외에 나가보면 한국인이 얼마나 대단한지 여행지에서도 보인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받으면 외국인은 그냥 찍어주는데, 한국인은 최선을 다해서 찍어 준다. 돈 받는 일도 아닌데, 한 장의 여행사진에도 잘 나오는 각도를 찾아서 최선을 다해서 그것도 여러 컷을 깔끔하게 찍어준다. 대단한 사람들이야. 그런데, 나도 그러더라. 상대방이 나를 대충 찍어줘도, 그에게 제일 좋은 포즈로 좋은 배경 각도를 잡아서 찍어주더라. 에펠탑에서 내가 찍어주는 사진이 좋다면서 줄 선 여행자 무리도 있었다. 나 원 참. 기분은 좋았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한국인이 자랑스러웠다. 나 또한 작은 일에도 노력하는 한국사람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네르하 해변에서 사진을 부탁받았을 때  똥손인데 어쩌나 마음이 쓰였지만 성심껏 찍는다.  찍어준 사진들을 유심히 보더니 그동안 외국인이 찍어준 사진들이 아까워서 보관했다며 다 삭제한다. 사실, 폰의 사진용량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사진 잘 찍는 한국의 MZ 세대인 그 높은 기준에는 턱없이 부족했을 텐데, 동영상 찍듯이 많이 찍어서 건질 사진이 있을 것이라는 게 다행이었다.


사진에 진심인 분이 찍어줬으니 얼마나 고퀄리티였을지는 두말하면 잔소리.

그날의 사진들이 나의 인생사진이 된다. 대다수가 하루에 네르하와 프리힐리아나를 묶어서 여행을 하는데 나도 그분도 네르하 한 곳만 돌아보기로 했다가 만났기에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었으니 잘 한 선택이었다!

게다가 매우 이른 아침에 와서 아침 수영까지 할 수 있었다는 말을 들으니 너무 부러웠다.


음, 아니야, 뭐, 난 숙소에서의 여유로운 출발을 선택한 거잖아.

그 덕분에 트레버를 만날 수 있었잖아.

푸른 눈의 진중한 트레버가 떠올랐다.

독일의 전기기술자인데 여행과 일하기를 반복하고 있다던 30대 중반의 트레버.

이른 아침 호스텔에서 나와서 두리번거리며 이 버스정류장이 맞는지 갸웃거리는데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고는 이곳이 맞다고 이야기해 준다. 호스텔에서 나를 봤다며 약간의 사회적 반가움을 보여준다.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같이 탔고 경계심을 풀고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트레버는 내가 혹시 오해할까 우려했는지 그라나다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여자친구가 있다고 말한다. 여자친구와 떨어져 지내다 얼마 전에 여자친구가 스페인에 와서 같이 지내다 갔다고 했다. 먼저 말을 걸면서 따뜻하게 다가왔기에 내가 오해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그래서 그가 안심할 수 있도록 나 또한 가족이야기, 일, 여행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트레버와의 만남은 짧았지만 강렬하게 남았다.


그와의 대화에서 기억나는 첫 번째 이야기.

가장 좋은 여행지가 어디였는지 물으면 나의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00000000라서 좋아.”라고 답변했는데 트레버는 달랐다.


 “모든 여행지는 저마다의 다른 이유가 있지”


트레버의 명답에 눈과 입이 동시에 동그랗게 커지면서 숨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크게 끄덕이면서,

"맞아. 저마다의 다른 이유가 있지. "라고 동의했다.

생각이 깊어지는 답변이었다. 그가 옳았다. 어디가 제일이야 땅땅땅 결론을 내리기에는 세상은 넓고 모든 여행지는 아름다웠고 나를 춤추게 했다.  


두 번째.

 두 달 이상 가족을 떠나 홀로 여행을 가는 것에 대해, 주위 사람들은 깜짝 놀라면서 한국에서 엄마 역할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농담이지만 “너는 엄마가 아니야”라고 말해줬다고 얘기하자 그는


“아이들은 부모의 모습을 통해 배워.

“그러니 네 아이들은 네가 선택한 것을 보고 배우는 거야”


감동이었다. 고마워서 눈에 물기가 올라왔지만 참는다. 내게 그렇게 말해준 사람은 없었다.

아이들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서는 함께 있어줘야 하는 건 나도 잘 알았다. 그렇지만 딱 두 달. 그 짧고도 긴 시간 동안 내가 행복해서 돌아오면 아이들에게도 행복이 전달될 거라 생각했다. 두 아이가 자취 생활한다고 생각하면서 지내면 아이들이 성장할 것이라 믿었다.(남편은 새벽 5시 출근이라서 모든 등교준비를 아이들이 해야 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아이들도 ‘자취생활을 미리 경험하는구나’ 그런 생각으로 지냈단다. )

트레버의 말 한마디가 따뜻했다.


세 번째.

그도 나도 네르하를 가는 길이었지만 나는 직행. 그는 중간에 경유하는 버스였기에 아쉽게도 서로 다른 버스를 타야 했다.

우리 네르하에서 만날 수 있을까? 물었더니 그는 잔잔한 목소리로

“Maybe or not.”라고 답했다. 그의 바다 같은 눈빛처럼

‘다시 봐도 그렇지 못해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라는 느낌을 받아서 같은 말로 마무리했다. 대화를 나눈 시간이 행복했다고 서로 인사를 건넸다.


 마음이 통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트레버가 준 여운은 강렬해서 다시 만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도 그만의 네르하를 즐기었겠지.

다시 네르하 해변으로 돌아와서

인생샷을 찍어준 분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아이스크림을 건네고, 나는 네르하 해변에 다시 돌아온다. 해변가로 내려가 모래 깊숙이 발을 넣고 적시기로 마음먹는다. 이 예쁜 바다와 인사를 하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

아주 조금만 들어가 보자.

발목을 걷고 들어갔는데 예상외로 파도에 젖었다! 맞다. 허벅지까지 젖어버렸다.

웃음이 나왔다. 수영복을 입고 벗으려면 시간이 걸리니 수영복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흠뻑 젖도록 그대로 바다로 입수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노래를 부르며 모래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 다닌다. 좋구나. 도시를 구경해 볼까? 파아란 하늘과 희고 베이지톤의 건물들이 손에 배어 나올 듯한 자줏빛 꽃들과 어우러져서 감탄을 자아낸다. 이 아름다운 곳을 어떻게 프리힐리아나라는 곳을 가기 위한 잠깐의 경유지로 묶어 다닌다는 거지? 프리힐리아나를 가지 않는 건 아깝지 않다. 이 도시를 온전히 즐기련다. 하루 숙박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좋은 네르하.

젖은 발과 바지를 말릴 겸 신발을 양손에 들고 맨발로 걸어 다닌다.

어머, 어머 세상에 이렇게 재밌을 수가. 따뜻하다 못해서 뜨거운 돌바닥과 타일바닥을 걸어 다니길 몇 십분 하니까 젖은 옷과 발이 다 말랐다.

기분 좋게 뽀송해진 발을 신발에 쏙 넣고 다시 그라나다로 출발!


*인스타에 올렸더니 제이슨이 DM을 보냈다.

J : 무릎까지 젖은 거지?

Me : 아니, 무릎 위.

J : Wow! 너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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