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햇살통통의 일상 그리기

#12. 연말의 바람, 안동 예끼마을과 청송 얼음골

by 햇살통통

— 물 위의 길과 그을린 산을 지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연말 여행


올 한 해의 끝자락,

안동 예끼마을과 청송 얼음골로 잠시 바람을

쐬러 다녀왔다.


추위가 기승을 부린다는 매스컴의 소리를 뒤로하고

새벽부터 집을 나섰다.

늘 그렇듯 마음 한편에는 집에 두고 온 일상이 남아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그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싶었다.

일상의 간병을 잠시 내려두고 도착한 안동 예끼마을.

그곳에 자리한 선성수상길은 물 위에 놓인 그림 같은 길이다.

선성현 문화단지와 안동 자연휴양림을 잇는 이 길은

데크로 조성된 부교 형태라

안동호에 잔잔한 물결이 일면

길 또한 조용히, 아주 천천히 흔들린다.

마치 “괜찮다”라고,

“잠시 쉬어가도 된다”라고

속삭여주는 것처럼.


수상길 중간에는

1974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된 예안 국민학교를 추억하는 공간이 있다.

풍금과 오래된 책걸상,

그리고 물속으로 사라져 버린 마을의 모습이

흑백사진으로 남아 있다.

그 자리가 바로 예안초등학교가 있던 곳이라 한다.

사라졌지만 지워지지 않은 시간들 앞에서

괜히 발걸음이 느려졌다.

예끼마을을 둘러보고

안동 구시장에서 보리밥 정식을 먹고,

별다방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특별할 것 없는 일정이었지만

그 평범함이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이어 찾은 만휴정.

그곳에서 마주한 풍경은

아름답기보다는 마음을 아프게 했다.

만휴정 주변의 산들이

곳곳이 까맣게 변해 있었다.


올 초 발생한 산불로 인해

주변의 집들과 산들이 불에 그을렸고,

그때의 잔상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새로 돋아나야 할 생명의 자리에는

검게 탄 나무들이 서 있었고,

그 침묵이 오히려 더 크게 다가왔다.

자연도, 사람도

한 번 입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는 것을

그곳에서 다시 느꼈다.

마지막으로 찾은 청송 얼음골.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마음은 조금씩 가라앉았다.

차가움은 오히려

지친 마음을 깨우는 힘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

올 한 해를 조용히 돌아본다.

힘에 부쳐 멈춰 서고 싶었던 날도 있었고,

아무 말 없이 견뎌야 했던 시간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큰 탈 없이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음에

감사의 마음을 올려본다.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여행을 허락해 주시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조용히 채워주심에 감사합니다.

내일도 또 누군가를 돌보는 하루가 시작되겠지만,

오늘 마음에 담은 이 고요함을 기억하며

다시 성실히 살아가게 하소서.

이 한 해를 무사히 건너온 우리 모두에게

평화를 허락해 주시기를

조용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