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없이는 못 살 것 같다더니, 복직일이 두려웠다

by 영스

일을 한 지 5년이 되던 해에 아기를 낳게 되었다.


흔한 루트 중 하나로 나 역시도 사무직 종사자로서 13개월의 육아휴직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도 입사 이래로 다양한 신사업 위주로 업무를 맡으며 경력을 쌓았고, 집중하는 순간의 쾌감을 만끽하며 나는 일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라고 마음속으로 결론 내렸다. 물론 여느 직장인처럼 회사와 조직에 대한 부정적 감정은 늘 품고 있었다. 업무를 하며 맞닥뜨리는 여러 상황에 대하여 소위 말하는 ‘현타’를 느끼면서 사람이 일정 정도 성장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어느 정도는 주입하면서, 그렇게 멋은 좀 없지만 말로써 감정을 배설하는 루틴과 함께 모순적이긴 해도 ‘난 일 없이는 못 살아’를 외쳤다. 저마다 다르지만, 성취 그 단어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단정적인 마음을 품은 채로, 일시적 공백이지만 그동안 쌓여있던 회사 노트북 파일을 정리하고 총무팀에 노트북을 반납할 준비를 했다. 그때 하필이면, 뭐랄까, 미세한 모래 가루 같은 느낌을 느껴 버렸다. 발바닥으로 밟으면 발가락 사이로 쏙 빠져나가는 그런 고운 모래알의 느낌. 그동안의 나의 것들을 정리했을 뿐인데 딱히 남은 것이 없다는 생각이 스쳤다.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이 짧은 찰나부터 복직이 두려웠을 수도 있겠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아무리 돌려도 회사에 돌아왔을 때 떠오르는 나의 명확한 모습이 없었다. 특히나 육아휴직에서 복직한 유일한 상사의 모습을 봤을 때 내가 과연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당시를 돌이켜 보면 일단 뱃속에 품은 아이의 실제감은 무디게만 있던 시절이었다. 아기를 낳는 행위와 낳은 후의 삶에 대한 이런저런 걱정은 되려 센 척으로 이어지던 그때의 나에게 사실은 휴직도 ‘Task'였던 것 같기도 하다. 말만 들으면 엄청난 일 중독자 같지만 그냥, 나는 어쨌든 일에서 오는 성취가 삶에서 필요했던 부류의 사람 정도라고 말하면 딱 적당할 것 같다.


그동안의 나는 정말 별 것 아닌 듯해도 직장인이 가질 수 있는 특권 중 하나가 출퇴근 시간을 활용한 아주 작은 자기 계발이라고 생각해 왔다. 무언가를 했다는 행위 그 자체에서 오는, 그로 인한 자기만족을 즐겨왔기에 그 장치가 사라지니 괜히 불안했다. 그렇다고 너무나 눈부신 그런, 성과가 엄청난 사람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엄청나게 사부작거리는 인간으로서 많은 것을 내려놓자니 허전했던 것 같다. 멀리 사는 친구들이 만삭인 나를 보러 왔을 때도 쌓인 나는 그들에게 신문을 읽고, 그동안 미뤄왔던 마들렌 만들기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을 하지 않으니 나름의 성취감을 얻는 요소가 필요했다.


그리고 마침내, 예정일이 지나도 나오실 기미가 없던 아기가 어느 순간 세상 밖으로 나왔다. 마침내 실제감이 생긴 것이었다. 그 순간 복직은 너무나 싫은 것이 되어버렸다.


퉁퉁 불은 만두 같기도, 눈이 유달리 작아서 만화 캐릭터 중 하나 같기도 했던 우리 아기를 데리고 조리원을 벗어나고 집에서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폭발물이 설치된 장면에서 보면 시간은 어느 시계에서도 같은 속도로 흘러갈 것임에도 그 초조함과 불안감 때문에 더 빨리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던가. 나에게도 시간 설정이 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휴직이 2달 남짓 지났을 때였고 아직도 사계절을 한 바퀴 돌리고도 남을 시간이었는데 만나는 사람들마다 복직하기 싫다고 칭얼거리던 나날들이었다. 오죽했으면 친구 한 명은 복직이 진짜 얼마 안 남은 줄 알았다고 했다.


집에서의 삶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하루면 낮잠을 4-5번을 자던 아기가 스스로 잠을 깊게 들고, 더 오래 자게 할 수 있도록 환경과 루틴을 만들어 줘야 했고 그만큼 분유도 먹여야 했다. 코팅 용지보다 얇지만 살짝 단단한 손톱과 발톱도 주기적으로 정리했다. 아기가 때로는 아팠고, 때로는 많이 울었다. 또 어느 날은 너무 생글생글 웃었고, 새롭게 맞이하는 다양한 순간에 아기가 함께 했다. 나의 주된 업무는 아기를 위해 동요를 불러주고, 아기가 적적하지 않게 혹은 아기가 듣는다는 가정하에 꽤 많은 혼잣말을 하고, 온 가족들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아기의 하루를 공유하며 내 적적함을 달래는 것이었다. 그렇게 소소한 업무가 모이니, 어느 순간 아기가 웃는 얼굴이 조금 더 뚜렷해졌고, 분유 외의 것들을 먹기 시작했고, 뒤집고, 기어 다니고, 일어서기까지 했다.


역시 난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난 요리하기보다 설거지하기가 더 좋다며 한발 뒤로 물러나는 사람이었는데 아기 식단을 짜고 만드는 건 너무 재밌었다. 남편 밥은 못 챙겨도 아기 밥은 열심히 챙겼다. 그렇게 이유식이 시작된 이후 나의 밤은 이유식 만들기가 추가되었고 그나마 육퇴 후 가던 헬스장은 또 잠시 보류 상태가 되며 그나마 하던 유일의 나만의 자기 계발이 조금 밀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겨울이 깊어갔고, 늦은 봄에 예정된 복직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복직일은 어쨌든 올 것이고 나는 집에서 쉰다 해도 막상 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린 상태였다. 복직일이 두려울지언정 슬슬 준비는 시작하면 좋겠다 생각했고, 이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침내 우리 부부가 매주 작성하는 다음 주 할 일 리스트에 직무 관련 미국 자격증 취득하기를 끼워 넣었다. 시험비만 53만 원..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