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추억의 명소가 새로운 공간으로
한때 수많은 한국 여행객이 점령하다시피 했던 극동 러시아의 도시 블라디보스토크.
거리는 가깝지만 지금은 아득히 먼 곳일 수밖에 없다.
직항 비행기로 2~3시간 이내면 갈 곳인데, 코로나19 창궐과 전쟁 이후 아주 머나먼 이웃이 됐다.
24시간 배를 타거나, 1~2회 비행기 환승으로 하루는 족히 잡아야 갈 수 있는 곳이니 말이다.
물리적 상황 때문에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게 되니,
도시는 나를 비롯한 모두에게서 점점 잊혀갔다.
그런 여행지가 있었지
이 정도의 어렴풋한 기억뿐.
한동안 관광객이 없는 조용한 동네로 지냈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그 사이 무슨 변화가 있었을까?
최근 접한 소식 중 놀라웠던 두 가지만 정리해봤다.
(1) 유명 레스토랑 '주마'가 불타버리다.
블라디보스토크 미식 여행코스에서 빠지지 않았던 고급 레스토랑 주마(Zuma).
킹크랩은 물론이고, 아시아 퓨전식으로 현지인의 사랑도 많이 받은 곳이다.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는 건 예삿일, 실내 인테리어 곳곳에서 느껴지는 아시아스러운 분위기와 함께 음식 퀄리티도 최고였다.
주마는 현지에서 단순히 좋은 레스토랑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로 극동 수도의 대표적인 자랑거리로서 인식되는 곳이었다.
레스토랑 주마(출처: lptvdesign.com)그런데 바로 이 장소에 작년 12월 7일 늦은 밤, 심한 화재가 발생하여 건물이 전소해버리고 말았다.
영업 막바지 시간에 일어난 일이라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으나,
화재 뉴스는 블라디보스토크 현지인들에게 꽤나 큰 충격이고 깊은 슬픔이었다.
주마 대표 메뉴 킹크랩(출처: primamedia.ru)다행스럽게도 이 사실을 알게 된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롭스크 레스토랑 커뮤니티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한순간에 일터를 잃을 뻔한 직원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됐고,
배달로 음식 서비스를 대체하였다.
얼마 전 오픈 12주년을 맞이한 주마는
화재 이후로 다양한 방법을 통해 맛있는 음식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가면서 지금의 자리에서 노력 중이다.
다행히도 2023년 말 기준, 주마 레스토랑은 다른 장소에 오픈해 예전처럼 활발하게 운영 중이다.
주소는 파르티잔스크 대로 44в(Партизанский пр-т, 44)
(2) 문화예술 콤플렉스가 세워지다.
2018년(그때만해도 이런 빌런이 될거라 예상치 못한) 블라디미르 푸틴은
청년들의 자국 문화예술 경험에 대한 중요성과 함께
4개의 문화예술 콤플렉스 및 교육단지의 신규 건설을 언급했다.
콤플렉스가 건설될 4개 도시가 어디인지만 봐도 당시 러시아(푸틴)가
동서남북 영토에 명확하게 영역 표시를 하고 싶어했음을 조심스레 짐작해볼 수도 있겠다.
칼리닌그라드, 세바스토폴, 케메로보, 블라디보스토크
각각 러시아 극서부, 남부, 중심부, 극동부에 위치하는 도시들이다. 그렇다. 나름 전략적이었다.
4개 도시 위치(출처: 구글맵)아무튼 이중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몇년 전부터 문화예술 콤플렉스 단지 건설이 진행되고 있다.
크게는 문화교육단지와 박물관-극장 콤플렉스로 구분되는데,
문화교육단지는 루스키섬에 2023년 공사를 마치고 9월부터 학생을 받기 시작했다.
이곳은 모스크바 국립 안무 아카데미 및 중앙음악학교 지부, 기숙학교, 학생과 교사 아파트 등을 포함한다.
교육동은 구름다리로 연결되고 무대 시설도 최신식으로 마련되어 있어, 최상의 교육환경이 될 것 같다.
루스키섬의 문화교육단지(출처: primamedia.ru)다음으로 박물관-극장 콤플렉스는,
우리가 블라디보스토크 관광 명소로 반드시 찍고오는 독수리 전망대 언덕에 지어지고 있다.
금각교가 내려다보이는 이곳 극동국립기술대(ДВГТУ) 건물이 있던 언덕이 지금은 엄청난 대공사 중이다.
(다행히 언덕 위 키릴과 메토디오스 동상은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독수리 전망대 현재의 공사 모습(출처: primamedia.ru)도시의 가장 높은 언덕에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문화예술 콤플렉스가 지어진다니 기대가 된다.
무엇보다도 이곳에 에르미타주 지부와 트레챠코프 미술관 지부, 러시아 국립 무대예술연구소 지부, 크리에이티브 산업 학교와 마린스키 극장 무대가 들어설 예정이라니 놀랍다.
멀리 있어 접하기 어려웠던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수준 높은 예술 작품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감상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비록 지금은 완전 공사판이지만,
아래 건축물 조감도처럼 팔과 팔을 교차해 잡은 듯 층층이 감각적인 디자인의 건물이 곧 세워진다!
얼마나 멋진 공간으로 탄생할지 궁금하다.
독수리 전망대 문화예술 콤플렉스 조감도(출처: primamedia.ru)박물관-극장 콤플렉스는 2025~2026년 완공 예정이라고 한다.
극동에서 중앙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된다니! 문화 생활하러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이곳이 오픈할 즈음에는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상황이 될까?
전쟁은 끝나있을까?
사실 지금은 그게 더 궁금하다.
※ 독수리 전망대 예전과 지금 모습을 담은 영상(자막 좀 빠름)
[블라디보스토크 독수리 전망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 메인 사진 출처: sportishk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