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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Jan 18. 2024

말과 글, 그 긴장과 오해들

넌 통화가 편해? 난 문자가 좋은데...

우리는 매순간 소통을 위해 말을 하고 글을 쓴다.

낯선 누군가와 말과 글을 나누게 되는 본격적인 시작점은 마도 사회생활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다양한 람들과 만나고 연락하면서, 모두가 '자기만의 방식대로' 소통을 한다. 그것이 완전하든 불완전하든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늘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렇듯, 불가피 '내가 도저히 못할 방법'로 의사 전달이 필요할 때 아주 당혹스럽다.

때로는 소통 방식에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 있고, 눈치부터 챙기고 센스를 발휘해야 살아남는 시간들도 있다.




(1) ...  떠나면 끝, 놓을 수 없는 긴장


연락드릴게요.


먼저 연락을 잘 못하는 내가 이렇게 이야기할 상황이라면, 그건 기본적으로 '문자 연락'을 의미한다.


'통화 울렁증'은 요즘 젊은이들에게만 있는 건 아니었다. 내향인에게 '목적이 없는'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전화벨 소리는 포일 수밖에 없다. 스스로 직접 전화를 걸어야 하는 순간은 더욱 그렇다. 화기 너머 통화음이 끝나고 들이닥칠 낯선 이의 목소리에 응대하는 게 두려울 때가 많다.


전화해서 무슨 얘기를 어떻게 받아친단 말인가?
대화거리가 없어 중간 비는 공백은 또 어떻게 견딜 것인가?
혹시 내가 말로 실례를 범하진 않을까?


통화 공포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말주변도 없는 내가 혹여 말실수로 상대방과관계 혹은 내가 속한 곳에 대한 이미지가 틀어지는 건 아닐지 하는 걱정일 것 같다.


글은 생각하며 쓸 수 있고 상대방에게 전달되기 전까지 수정이라도 할 수 있지만, 말은 현장에서 바로바로 전달되기 때문에 미리 대비가 안 된다. 말 쏟아놓고 주울 수도 없는 노릇이라, 잠깐의 실수라도 타격이 크다. 그리고 무엇보다 친하지 않은 사이에서 통화는 어색하고 대화를 이어갈 재간없다.(물론 외향인은 다르리라 생각한다.)


전화를 할까 말까


하지만 그렇다고 사회에서 어떻게 매번 문자와 메일로만 연락하겠는가?

어쩔 수 없이 수화기를 들어야  상황도 많다.


즉각적인 답변이 필요할 때
상대방 반응을 눈치껏 살펴야 할 때
중요한 부탁이나 이야기를 전달할 때
초면에 미리 소개가 필요할 때
어르신들께 연락할 때


특히, 우리와 세대가 다른 어른들께는 직접 전화해 목소리로 연락하는게 예의라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문자 읽기도 불편하고 가끔은 확인을 안 하게 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외 통화가 필요한 상황들도 썩 쉽지 않다. 어쨌든 낯선 사이 또는 일로 연락하는 사이라면, 소통 방식이나 대화 스타일을 통해 그 사람의 이미지가 형성되는 법이니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늘 조용한 곳을 찾아 백지와 펜을 앞에 두고 통화하곤 했다. 온전히 대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사람과 전화하는게 이리도 손에 땀을 쥘 일인가?



(2) 글... 기다림의 미학과 상상의 나래


넌 통화가 편해?
난 문자가 좋은데...


내 휴대폰이 생겼을 때 문자 발신 서비스가 있어 참 좋았다.

전화 못 받을 상황에도 문자로는 소통할 수 있으니, 시공간 제약을 많이 받지 않고 여겼기 때문이다.


당장의 감정이나 연인과 사랑을 나눌때는 물론 통화의 방식이 더 좋지만,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방해받지 않고 각자 편한 시간에 필요한 내용을 주고받기에는 문자가 더 유용하다. 문자는 무엇보다 시각적인 메시지다보니 정보를 전달하는데 명확한 방식이다. 이름이나 숫자, 주소는 물론, 감정까지도 글자로 가감없이 남아 전달된다.


기다림의 시간들


하지만 소통에 필요한 시간 감수해야 한다.

문제에 대한 답을 전화로는 '네' 또는 '아니오' 한마디로 즉각 받아낼 수 있지만, 문자로는 상대방 시간이 날 때, 그것도 그가 답장할 의향이 있을 때에나 알 수 있다.

나름의 배려 가득한 기약 없는 기다림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냥 기다림으로 끝나면 다행이다.


왜 답이 없지?
이렇게 답을 한 이유가 뭐지?
기분이 나쁜가?


답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문자 몇 자에서 상대방 의도를 추측하게 된다.

말은 부드럽지만 글은 거칠거나 메마른 사람이 있고,

말로는 에둘러 말하지만 글로는 돌직구 날리는 사람이 있다.

이처럼 글에서 느껴지는 태도가 내가 생각했던 상대방 모습과는 다를 때면 온갖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상상의 끝에서 급기야 아무 잘못 없는 스스로에게 '내 잘못이구나' 결론 짓기도 한다.


작은 글에서 비친 뉘앙스가 큰 신경전으로 번지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서로 직접 만나 이야기해보지 않고서는 정말 마음 상할 일인 건지 명확히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오해를 풀려면 한번의 대면은 필요하다.


말과 글의 그 오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만들어낸 망상들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자.

상대방의 반응이 나의 기대 같지 않다고 괜히 먼저 지레 겁먹어서 있지도 않마음의 상처를 스로 필요는 없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나에게 그렇게  관심 없기 때문이다.

착각도 하지 말자.


호연지기


사람 사이에서 내가 최선을 다해 상대방을 대했다면, 기대하는 반응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괜찮다. 일이 신경 쓰기에는 감정 소모가 너무 많아질 뿐이다.

네맘이 내맘 같지는 않은 세상인 것을!


자기가 선호하는 방식대로 소통하면서 오해가 없도록 잘 다듬어가면 된다. 또 내가 집중해야 할 이들에게만 충실하는 게 사실은 더 중요하다.


물론 살면서 ,  어떤 상황이나 사람에 대처할 수 있는 나만의 무기를 만들 필요는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좀 어리숙하더라도 말이다.


어쨌든, 분명한 건 타인과의 소통에서 시행착오를 피할  없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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