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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낀 세대입니다.

어느 중간자의 단상

by 모험소녀

프리랜서로 일하며 좋은 점은

내 전문분야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주문자와의 관계 외에 다른 사람의 간섭이나 영향은 받을 일이 거의 없 때문이다.


하지만 프리랜서라도 한 로젝트의 일원으로 누군가와 한 팀을 이루며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몇 년 새 그런 일들이 몇 있었는데,

경력은 꽤 있어도 리더의 자리까진 간 적이 없던 나는

중간 위치에서 알 수 없는 감정과 난처함을 느낀 적이 많았다. 리더는 아니고, 그렇다고 초급 사회인도 아니니 '맡은 일에서 내가 어느 선까지 임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사회인 시절


어느덧 나의 첫 회사 입사 동기들은

부장 타이틀을 단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만일 나도 조직 안에서 지금껏 승승장구했으면 아마 지금쯤 간부급이 되어 있을 거라 생각하니,

불현듯 아득해진다.


이토록 아직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데?


물론 퇴사 이후를 공백기로 본다면 그 기간 또한 회사 다닌 시간 만큼이나 길어진지라, 이런 아득한 마음이 드는 게 당연지 모른다.

그래도 공백기 중에도 간간이 꾸준하게 다른 형태의 사회을 생활하며 야생을 맛보기도 했으니, 경력이 완전 단절된 것도 아닐 터다.


그렇다. 나도 모르게 나이를 그리 먹은 것이다.

지시에 따라서만 움직이고 하나하나 윗사람에게 물어보고 확인하며 보고하던 초년생 시절은 한참 지난 것이다.

내 마음만 계속 거기 머물러 있을 뿐.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사람들을 이끌어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주어진 일을 이끌어가야 할 치의 연차다.

책임감은 늘고 부담감은 커져만 가는 그런 자리.

어떤 프로젝트를 맡고 상황을 보니

어느새 위치가 그렇게 된 걸 깨닫고 새삼 놀랐다.


그렇다고 나는 '이건 내 책임 아니지'와 같은

완전히 프리랜서의 마인드를 가진 것도 아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기 시작하면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잘 아는 '조직 기반'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보고 배운 게 그뿐이라, 몸에 밴 습관처럼 큰 일을 성취하려면 함께여야 익숙하고 안정적인 분위기를 느낀다. 내 전문분야를 벗어난 큰 일은 나 혼자의 힘으로는 절대 할 수 없니 말이다.


함께여야 좋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프로젝트로 이루어진 사이면,

엄격한 윗사람, 아랫 사람 개념은 없다.

하지만 일은 진행해야 해서 그나마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은 짐을 떠안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래서 결국 중간 위치의 내가 하게 되고,

일을 하다 보면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어느새 지시자의 자리에 있게 되고 만다.


항상 평행적인 조직을 꿈꿔왔지만,

주어진 프로젝트를 잘 수행하려면 누군가 총대를 메고 추진해줘야 하는 것도 필요하구나 싶다.


그리고 사람들과 섞여 일을 하다 보니,

내가 어느 새 낀 세대가 됐음을 깨닫는다.


전반적으로는 크게 이질감은 없이 잘 지내지만

위아래 모두 썩 편하지만은 않은,

그래도 잘 지내보려 노력해보는 그런 낀 세대.


어르신에 최대한 맞라는 군소리 없이 잘 르고,

젊은 사람들에겐 치는 봐도 내가 사회생활하며 힘들게 겪은 걸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맘에 최대한 배려하는데,

그러다 보면 가끔 중간에서 녹초가 되어있기도 한다.

그렇게 힘들어질 땐 신경 쓰고 싶지 않은 맘에 오히려 일에만 몰두할 때도 있다.


내 속에는 꼰대도 있고,

자유롭고 싶은 영혼도 있는지라,

가끔은 요즘 젊은 사람들 행동이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는가 하면, 그들의 성향이나 라이프스타일 중에서 내것과 비슷한 것들도 발견돼 반가우면서도 놀라기도 다.

그러니 내가 지금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조화로운 삶


비록 낀 세대지만,

히려 중간의 위치에 위아래를 화롭게 연결해주며 지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또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더 나아가 합리적인 리더로 거듭날 수 있길 바란다.

물론 프리랜서가 더 편한 나에게 리더의 자질이 있을지는 확증된 바는 없으나...


상황과 환경이 사람을 만들기도 하고,

극한의 상황에서 사람 본연의 모습과 실력이 발현되는 걸 보면, 아직은 모른다.


난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진짜 나의 모습은

모두 보여지지 않은 것일지도.

그래서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단지 은연중에 다른 이들로부터 잘못 학습된 못난 모습들만은 제발 보이지 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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