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험소녀 Jan 25. 2023

당신의 상사관계는 안녕하십니까?

상사(boss)병, 관계의 어려움을 회상하다

사회생활 가운데 매일 만나게 되는 높은 사람, 우리는 그를 상사라고 부른다. 

이 '상사'라는 단어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렇게 정의한다.


상사(司)

"자기보다 벼슬이나 지위가 위인 사람"


의미 자체에서 상하관계가 명시되어 있는 단어다.

그 뜻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지위가 높은 이들의 말을 잘 따르는 일이,

부하직원의 역할과 도리를 다하는 것일 터.




(1) 옛날에는,


나 또한 그리 길지도, 그렇다고 많이 짧지도 않은 시간 사회생활을 하며

다양한 상사와 지시자를 만나 부하직원 역할을 해왔다.

그때마다 부딪히는 문제가 있었다.


동료들과는 그럭저럭 잘 맞춰나갈 수 있었 가끔 뒷담화로 단합도 키워갔는데,

상사는 아무리 좋은 사람이어도 나에게는 쉬운 존재로 다가온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나에 대한 평가권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상하관계가 주는 암묵적인 어려움 때문일 것 같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며 하루에 수도없이 종교의 힘에 의지해야 할 때가 많다.


내가 사회에서 만난 상사 유형은 대체로 비슷했다.

아주 강하고 고집 센 사람들...!

간부 자리까지 올라가려면 어느 정도는 그런 강단이 있는게 맞는 것 같다.

어쩌면 그런 상사를 만나는 게 우유부단하고 결단력 부족한 나에게는 속편한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일을 상사가 다 결정해주고, 하라는 일만 하면 되니 말이다.


하지만 강압적이고 독단적인 이들을 모시기 위해 사회 초년생 때 길러진 다름 아닌 '눈치'다.

언제부턴가 매일 윗사람의 기분을 살피는 일이 습관처럼 몸에 배기 시작했다.

하루가 별일 없이 흘러가면 좋은데, 조심스러운 보고사항이라도 생긴 날에는 불호령이 떨어질 수 있어 입을 떼지 못해 끙끙대기도 했다.

그나마 그가 기분 좋을 때 얘기해야 최악은 면할 수 있어, 적확한 타이밍 찾는게 관건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날도 있었다.

다혈질 상사가 버럭 화라도 내는 날 당혹스런 순간을 마주하면,

속으로 '저 분은 내가 모르는 사람이다, 금방 지나간다' 수없이 반복하며 스스로 마음을 다잡곤 했다.

폭풍이 지나간 후에는 혼이 제대로 난 아이처럼 주눅이 들고 말았다. 그땐 내 마음이 여렸던 거다.


그렇다 보니 예전부터 상사 앞에서 내 주장을 펼친 기억은 거의 없다.

나의 의견을 물어보기는 하나, 결국 본인 생각대로 진행했으니 굳이 의견 개진의 필요성을 못 느꼈다.

불만이 있어도 표현할 길 없었고, 얘기하더라도 그때뿐이거나 나중에 오히려 내 말이 화살로 돌아오기도 , 그냥 입을 닫는 편이 나았다.

사람으로 인해 그저 무기력함만 느끼는 날들이었다.

 

그냥 그 시간들이 지나가기만을,

발령이 나거나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 일하는 환경이 바뀌기를,

기약없는 때를 기다리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그렇게 만만한 상대인가?

군소리 없이 잘 따른다고 사람들이 나를 너무 만만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화날 때도 있었다.


가끔은 마음이 불쾌해져 무표정으로 대응하기도 했지만,

관계라는 게 오늘만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닌지라,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억지로 풀려야 했다.

그래야 업무를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업무는 계속되어야 한다.


(2) 지금은,


최근 회사 다니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요즘은 좀 달라졌다.

지금의 젊은 회사원들은 자기에게 불합리하면 상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기도 하며 할 말도 하며 산단다.

법정 휴가는 꼭꼭 다 챙기고, 못쓰게 하고 눈치를 주면 합법적(?)으로 해결할 기세란다.

오히려 윗사람이 부하직원 눈치를 볼 정도가 되었다,

세대가 많이 변했구나 싶다.


그런 얘길 들으면,

여전히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도 남 이야기 같지는 않지만,

한편으론 지금은 자기가 누릴 권리를 챙기며 사는 젊은이를 보니 나와는 달리 실리적이라 부럽기도 하다.

그때의 내가 시대를 앞서가서 한 번쯤은 목조목 따지며 박치기라도 하고 나올걸 그랬나, 아쉬움도 남는다.

그럴 만한 배짱도 없는 위인이지만 말이다.

 

내가 회사생활을 시작했던 때는 대부분 사람이 상명하복 원칙을 당연히 여기며 지냈다.

회사 안팎으로 시끄럽게 만들지 않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달까.

사람 마음보다 조직 생명이 최우선이었나보다.

근본적으로는 나도 그게 힘들어 회사를 뛰쳐 나왔던 것 같다.


이제는 나의 전 회사 동기들 중에서도 부장 승진한 언니오빠들이 꽤 많아졌다. 

세상에, 직장인 18년차라니! 지금 생각하면 참 아득하다.


이들은 앞으로 부하직원들에게 과연 어떤 상사로 남게 될까?

나에게는 참 좋은 동료이자 친구였던 동기들이,

한 팀을 이끄는 상사가 되면 어떤 모습이 될까?


아마도 내가 몰랐던 그들의 또 다른 모습이 튀어나올 지도 모르겠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도 하니 말이다.


그 어떤 것에도 의연할 수 있길.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날이고 지금이고 상관없이

시간이 지나고 보니 명확해지는 것이 있다.


아무리 자기를 힘들게 만드는 상사여도 어쨌든 나에게는 상사이고,

안 좋은 면만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 또한 분명 좋은 점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 좋은 점이 당장 회사에 있을 때 발현될 기회가 없을 뿐.


그리고 내가 어느 조직이든 속해있는 동안 만큼은

상사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이상 나의 상사이므로

그분을 존중하고 따르는 것은 사회적으로 당연한 일.


혹여 외부에서 누군가가 상사를 험담하는 소리를 듣더라도 

같이 신나게 맞장구치며 떠들게 아니라,

그분을 방어하는 것이 부하직원으로서의 역할이고 자기가 속한 조직에 대한 예의이다.

하지만 윗사람 두둔하는 것을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다차라리 침묵하는게 정답.

상사는 물론 당연히 자기 부하직원을 방어하며 단점을 보듬어줘야 할 터.


아무튼 나를 힘들게 하는 상사라도

그의 좋은 면만 보려고 노력해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처럼 세상을, 사람을 좀 더 크고 넓은 관점에서 보면 아량이 생긴다.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고 다소 미화되기도 한다.

그땐 끝이 보이지 않았던 긴 터널을 지나고 보니 그렇다.




원래 사람 관계가 제일 어렵고 조심스러운 법이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내 가치관과 맞지 않으면 수용할 수 없는 부분도 많다.

그렇다고 내 마음 내키는대로 했다가는, 

언젠가  여파가 돌아돌아서 나의 등짝에 반드시 꽂히게 될 것임을 잊지 말자.


관계의 문제는 인생에서 어둠을 만나는 것처럼 당장은 아득하다.


한편으로는 내가 누군가의 상사가 된다고 생각해 보라.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보면, 옛 상사의 마음을 100%는 아니어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또 나 자신은 어떡하면 좋은 상사가 될 수 있을지 미리 고민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평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나라 풍속이 계속되는 한, 

스스로 세상의 모든 것에 의연해지지 못하는 한,

이런 문제는 계속 부딪히게 될 것 같다.


관계의 문제는 이처럼 돌고도는 삶의 과제다.



★ 게재한 모든 사진들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습니다:) Copyright by 모험소녀★

매거진의 이전글 이제는 책상을 정리할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