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지로 변모한, 달라진 그곳의 분위기
6년 전과 다른 낯선 블라디보스토크의 모습,
이미 공항 입국심사를 하면서 느꼈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지난 이야기↓↓]
공항에서 나오니 저녁이 다 된 시간. 시내까지는 입국심사 대기 중 만난 일본 친구와 택시를 불러 동승해서 왔다. 블라디보스토크 공항과 시내를 오가는 버스의 정규 운행이 하루 3회뿐이라 택시 이용은 불가피했다. 예전에 비해 공항버스가 너무 안 다녀서 좀 의외였다. 실 이용객이 많지 않아서 줄인 건가 보다 했다.
옷깃을 스치는 무리들이 있었는데, 현지인이 아닌 중국인들이었다. 조금만 가까이 가도 성조 요란한 중국어가 들렸다. 늦은 시간에도 중국 관광객들의 거리 활보가 유난히 눈에 많이 보인다. 더군다나 도시가 크지 않아서 사람 있을 만한 곳이면 어디나 더 자주 마주치게 되는 것 같았다.
낮에 두눈을 씻고 자세히 보니 중국인들이 6~7년 전 한국 관광객 수준으로 블라디보스토크를 점령하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 더 많았다.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러시아인 가이드들도 눈에 들어왔다. 이제 현지인의 대세 언어가 중국어로 바뀐 건가.
사진을 찍는데 중국인들이 자꾸 몰려와 시야를 가리는 바람에 일부러 피해다니기도 했다.
이들은 대형 관광버스를 타고 도시 주요 관광지를 다녔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지금도 여전히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는데 이젠 대부분이 중국인이다. 중국 관광객의 유입은 코로나와 전쟁 이후 러시아가 2023년 중국 단체 관광객 대상으로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면서 두드러진 현상이다.(최근에는 러시아와 중국 모두 무비자 제도를 도입함) 이들은 대형버스를 타고 단체로 이동하니 입국부터 출국까지 그것만 타고 다닐 것이다. 공항버스 운행이 줄어든 것도 어찌 보면 그에 따른 당연한 현상처럼 보인다.
시내에 중국 식당도 꽤 많아졌다. 한때 소위 맛집이라 여기던 많은 곳들이 문을 닫았다. 정말 괜찮은 레스토랑이나 현지에서 오랜 시간 인기를 유지한 카페 등을 제외하고는 살아남지 못했다. 어디서나 그렇듯 이곳도 결국 자본의 흐름을 따라갈 터이니 말이다. 가이드북에 트렌디한 맛집을 소개하는 것을 업으로 했던 나로서는 늘 아쉽고 고민되는 부분이다.
스포츠 해안로의 산책로와 울타리가 군더더기 없이 정비되었고, 그 너머의 해변 거리도 얼마 전(동방경제포럼 개최 전) 깔끔하게 공사를 마치고 개방했다. 또 도시 사이사이 다소 지저분하고 정돈되지 않아 보였던 거리에 돌바닥이 깔리고 쉼터가 만들어졌으며, 약간 모호하고 애매했던 공간들은 생명력 있는 공원으로 되살아났다.
중앙 광장에 생긴 매립형 분수는 실제로 보니 굉장히 컸다. 혁명 동상 때문에 다소 묵직한 느낌이 맴돌던 광장이 분수 덕분에 활기가 넘치고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광장 한쪽 위엄있게 자리잡은 구세주 변모 대성당은 이제 명실상부 블라디보스토크를 대표하는 성당이다. 작년부터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완공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시민들의 염원이 담긴 장소이다. 주말이면 광장에 더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다 보니 성당에서 예배 시간 중에는 외국인의 출입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었다.
(나도 입장을 거절 당했다는 슬픈 사연)
특별히 다른 글을 통해 이미 소개한 적 있는 전망 공원인 나고르니 공원은 손에 꼽을 정도로 멋졌다. 2021년 처음으로 대중에게 개방된 이래 도시 최고의 휴식처로 자리잡았다. 쉼터, 공연장, 강의장, 카페, 화장실 등 편의시설도 갖추고 있다. 나도 온라인으로만 보다 직접 가서 보니 그 규모가 엄청났고 시설도 생각보다 깨끗해서 놀랐다. 가족 단위로 휴식과 전망을 즐기러 오는 이들로 가득했는데 소풍 오기 딱 좋은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빈약하게 녹슨 발코니만 있던 예전의 독수리 전망대를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그땐 어떻게 그곳을 명소라고 일컬었을까? 되묻게 될 정도다.
더욱 놀라운 건, 도심 거리마다 위치와 스폿을 설명해주는 스탠드가 곳곳에 설치되었다는 점이다.
거리나 건물, 장소 등에 대한 역사와 관련 설명이 러시아어, 영어, 중국어로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현지 여행 정보가 생명인 나로서는 도시에 대한 소스를 얻어가기 정말 좋은 수단이다. 그런데 러시아어, 영어는 그렇다지만, 중국어까지? 현지 주요 고객이 중국인이란 사실은 다소 씁쓸하다. 또 스탠드가 생각보다 곳곳에 많이 세워져 있어 정보를 일일이 섭렵하기엔 꽤 방대한데다, 잘 모르는 깊은 정보들까지 상당히 있어 그 중요도를 판단하는데 어려움이 따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처럼 블라디보스토크가 관광지로서의 면모를 갖춰가는 모습이 가시적으로 보이니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현재 블라디보스토크 시장(콘스탄틴 셰스타코프)이 연해주 정부에서 관광국장을 역임한 적이 있어 그의 경력이 빛을 발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참 잘하고 있다.
이와중에 다행스러운 점 한 가지를 발견했다.
블라디보스토크 도심에 관광 센터 옆 기념품 가게 유리문에서 그 희망을 봤다.
유리문에는 '블라디스러운 기념품'이라고 한국어와 중국어, 영어가 적혀 있었다. 세상에, '블라디스러운' 기념품이라니! 누가 해석했는지는 몰라도 표현이 마음에 들어 내심 흡족했다. 나라면 바로 방문 각이다.(하지만 아쉽게도 당시에는 문이 닫혀 있었음)
무엇보다 시내 다른 곳에서는 한국어가 많이 지워졌지만 여기만큼은 있어서 더욱 반가웠다. 그것도 한국어가 가장 위에 써 있었으니!
이들도 한국인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는 은연 중의 표현이 아닐까, 혼자 긍정해 본다.
지금 이렇게 형성해 가고 있는 관광지로서 블라디보스토크의 면모가
한국 관광객들이 다시 발걸음하게 될 때 더욱 빛나게 되기를 바라며.
나는 오늘도 우리가 잊었던 러시아의 다양한 모습을 대중에게 알리며
다시 갈 그날을 기다린다.
[여행기 영상 2편]
[다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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