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나의 어머니이야기 프롤로그

1. 내 근원을 아시는 당신께

by 운정

오늘 아침, 동생에게서 어머니가 요즘 감기가 들었는데

예전 같지 않게 기침이 오래간다는 걱정스러운 말을 들었다.

며칠 전 통화할 때 몸이 안 좋았던지 목소리에 역정이 묻어 있었다.

더 깊이 들어가고 싶지 않아 서둘러 건강기능식품 뭐 그런 얘기로 마무리 짓고 끊었더랬다.

다섯 남매 중 오빠가 있는 둘째면서 동생 셋이 있는 큰딸인 나는

엄마의 역정 내는 목소리에

이제 그만 굳은살이 배겼을 만 한데 아직도 심장이 먹먹해진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

6.25 전쟁통에 아버지를 잃었고,

전쟁 직후 오빠(필자의 큰외삼촌)가 인민군부역자로 몰려 투옥되자,

여덟 살인 동생과 오빠의 어린 딸인 여섯 살 조카를 홀로 돌봐야 했던 15살의 나의 어머니..


나의 외할머니는 큰 아들(큰 외삼촌)의 석방을 위해 탄원서를 가지고

여기저기 도와줄 사람을 찾아 관공서니, 이웃, 친척들이니 찾아다니느라

당신의 어린아이들을 돌보지 못했다.


전쟁이 끝났어도 국가와 사회도, 그리고 마을과 각 가정도

가난과 곤궁 속에서 채 추스르지 못했던 1957년 11월 초,

스물이 되던 해에 어머니와 아버지와 결혼했다.


열세 살에 부모를 병으로 다 잃어 고아가 되었던 아버지에게 엄마가 되어주어야 했던 어머니,

11살 많은 오빠와 7살 어린 남동생 사이에 외동딸로 태어나 전쟁통에 엄마노릇해야 했던 어머니,

그래서 맏딸인 나에게 이 세상에서 당신 속을 알아주는 딸이 돼주길 바라고 바라셨을 어머니..


좀 더 눈을 마주 보며 얘기 나누었더라면..

좀 더 웃는 얼굴로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더라면...

좀 더 따뜻한 탕에서 등 밀어주는 시간을 가졌더라면....

좀 더 맛난 음식 함께 먹는 시간을 가졌더라면.....


당신 속을 알기까지 수십 년이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어머니의 눈을 보지 않은 채 시간은 덧없이 그렇게 흘러갔다.


가족과 당신의 생존의 위협을 온몸으로 받아오며 살아온 어머니,

항상 해도 해도 부족한 딸이라서 어머니를 마주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나는 어머니의 속을 무던히 썩인 딸이었다.

이제와 변명 같지만 어머니를 부르면 눈물이 나고 목이 메는 습관이 시작된 지 오래였다.

'엄마'하고 부르면 바로 또르르 눈물이 흘러 울음 끝이 길어질까 봐

어머니를 마주할 수가 없었다.


나의 세 아이를 키우고 돌고 돌아온 시간 속에서

어느덧 팔순이 넘어간 어머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이제야 어머니의 이야기를 쓸 용기를 내본다.

평행이론처럼 어머니의 과거와 나의 현재가 오버랩되면서 머릿속에 어지러이 널브러진 이야기를

주섬주섬 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