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후기?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아니 '보고' 쓴 후기

by 이영선

'베스트셀러'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대중들의 취향과 나의 취향 사이에 얼마만큼의 거리가 있을까 궁금해하다가 이름만 익숙하게 들어본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을 사서 보았다. 이름에 숲이 있는 빨갛고 초록으로 된 표지를 보고, 뭔가 나를 감성 돋는 세계로 데려갈 에세이인 줄만 알았다. 나중에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이었다.


결론은 첫 몇 페이지를 못 넘기고 계속 제자리에서 맴돌다가 책을 덮어버렸다. 이렇게 안 읽히는 책이 있었던가. 유명하다고 하고, 돈이 아깝기도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은 읽기는 해야겠는데 책 읽기에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이렇게 안 읽히는 책은 처음 봤다. 몇 줄 읽다가도 내 의식은 버퍼링을 하면서 금세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노르웨이 따위는 나오지도 않는다. 언젠가 신분을 속인 채 모 사이비 종교단체에서 나온 사람이 나에게 심난스럽게 성경책을 이리저리 펼치며 온갖 이상한 이론을 설명하려 할 때에도 도무지 논리가 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서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데, 오늘도 그때와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혹시나 해서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책의 중간 아무 페이지나 펴서 뭐가 재미난 게 있는지 읽어보려고 했는데, 그렇게 해도 전혀 읽히지가 않는다. 한글인데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밀가루를 마냥 펼쳐놓은 것처럼 하나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오기가 생겨서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그 줄거리라도 알고 싶어 인터넷에 '줄거리 찾기'검색을 했는데, 이 재미없고 지루하고 진도가 나가지 않는 책에 감동을 받아 써 놓은 후기들이 상당히 많이 검색이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단숨에 읽었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혹시 그 책이 내 책과 다른가도 싶었다. 그래서 어디 그런 심오한 줄거리나 의미가 있는지 다시 한번 책을 진지하게 살펴봤는데, 거꾸로 봐도 뒤집어 봐도 중간부터 펼쳐봐도 도무지 재미가 다. 놀이동산에서 정지한 채 가고 있지 않는 놀이 열차에 올라탄 것처럼 나른하고 무기력하기가 짝이 없다.


이게 웬일인지 자괴감까지 들었다. 차라리 고등학교 수학책을 펼쳐서 보면 이보다는 이해가 더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 책을 읽어봤는지, 그랬으면 어떻게 이 책을 읽어야 할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안 읽히면 읽지 말고 라면 받침대로 쓰라고 진심으로 조언을 해줬다. 나는 해방감을 느꼈다. 라면 받침대 치고는 좀 비싼 감이 있긴 하다. 그나마 빨갛고 초록인 원색이 이뻐서 책 껍데기는 따로 벗겨놓았다. 그냥 그것을 보면서 나만의 노르웨이 숲을 거기에 상상하며 멍하니 앉아있는 것이 조금은 더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 같았다. 친구는 읽기는 했으나, 본인도 이 책이 안 읽히고 재미가 없어서 내내 '벌 받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만 책이 안 읽혔다고 생각하면, 조금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으나 내가 존경하는 친구가 안 읽어도 되는 책이라 하니 그냥 13,500원짜리 라면 받침대를 얻었다고 생각하고,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아, 사람들과 나와의 거리는 이렇게 멀구나'라고 느꼈다. 베스트셀러는 포기하고 그냥 내가 좋아하는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진짜 이 책을 읽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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