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인간관계
작품을 보고 싶으니 빨리 전시나 공연 좀 하라고 재촉하던 사람들은 정작 작품을 내보이는 날 대개는 오지 않는다. 잘 몰랐을 때에는 마치 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작품을 해야겠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내 형편에 무리를 해서라도 창작의 영감을 몰아치기도 했다. 오면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꼭 오라고 부탁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오겠다고 난리를 치던 사람들이 당일에는 연락도 없이 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들 열 이면 여덟이 꼭 그렇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들일수록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 한참 지난 후에야 온갖 이유를 대며 못와서 아쉽다는 시늉을 하며 다시 연락을 해온다. 뿐만 아니라 마치 내게 맡겨놓았거나 내가 그래야하는 의무라도 있는 듯 작품 동영상을 보내달라는 둥, 사진은 없냐는 둥, 그런 것도 이들 대부분이 비슷하게 요구한다.
솔직히는 얄밉다. 개중에는 정말 못올 이유가 생긴 경우도 있지만, 살다보니 거짓말에 대한 촉이 생겨서 구분이 가능하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꾸며댄 핑계를 말하는 쪽도 그것을 내가 모를리 없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그것도 살다보면 감이 온다. 어느 정도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차릴 것이다.
그렇다고 꼭 작품을 보러 와야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 작품이 궁금한 사람이 오면 좋겠고 나도 상대의 작품이 궁금하지 않으면 사적으로 친한 사이라 해도 굳이 보러가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까지는 적극적으로 하겠지만, 그 다음에 하는 행동에 대한 것은 그들의 선택이고 자유이다. 그건 취향에 관계된 것이므로 서로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피상적인 관계를 맺거나 관객몰이를 하기 위해 작품에 관심도 없는 친구나 가족들을 억지로 동원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와서도 좋은 에너지를 주지 않기 때문에 작품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도 상당한 방해를 한다. 나는 내 작품에 온전히 관심이 있어 모여든 소수의 사람들이 점점 더 커져 다수가 되길 바랄 뿐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안 와도 되는데 왜 꼭 호들갑을 떨면서 본인들이 먼저 안오면 안될것처럼 얘기를 하고 정작 당일에는 함흥차사인 그들의 꿍꿍이다. 작품이 끝나고 이런 사람들과의 관계는 자연스레 멀어지게 된다. 서로에게 좋아할 것을 강요하는 사람들과의 피상적인 관계, 본인들이 하는 일에 필요해서 내가 언젠가 들러리를 서야할 일 때문에 유지하고 있는 관계는 알아차린 즉시 정리해 버린다. 내 인생이 피곤해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혀 관심이 없어보였던 지인들 중에 멀리서 연락도 없이 홀연히 나타난다거나, 무표정한 얼굴로 와서는 작품에 대한 깊은 사유를 나누고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 우는 아이 둘을 들쳐 업고 길을 가던 낯선 동네 아주머니가 붕어빵을 사먹고 있는 나를 반갑게 알아보며 작품을 보았노라며 자세한 감상평을 신나게 늘어놓을 때는 갓 꺼낸 붕어빵보다 더 뜨거운 감동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작품 발표를 하고 나면 알던 사람들에 대해 새로이 알게되고 새로운 인연이 생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