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나는,
동네 어귀를 넘어가는 버스만 타도
새로운 세상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열심히 일해서 어른이 되면
빨간색 스포츠카를 타고
수영장이 보이는 정원에서 우아하게 칵테일을 마시며
통유리로 지은 거실 안에서 벌어지는 파티를 즐길 수 있을 줄 알았다.
청량한 바람이 부는 금요일 저녁이 되면
청포도 밭 한가운데 하얀색 그랜드 피아노를 놓고
사람들이 나무 그늘 사이로 향긋한 열매즙을 맛보는 동안
음악회를 열고 있을 줄 알았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삐삐 롱스타킹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하얀 눈 밭에 서 있는 커다란 나무에 색색의 선물과 장식을 달아 놓고
이웃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싶었다.
지금쯤 어느 빌딩 사이의 현대식 사무실에서 사람들을 호령하며 사장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나는 그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만큼 인자하고 온화한 성품을 갖고 있을 거라고,
꿈이란 것을 이루면 그 성취감에 세상을 다 얻을 수 있는 행복감에 차 있을 줄 알았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은하수 같은 꿈들이
내 인생 가는 길에 아름답게 빛날 줄 알았다.
나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알았다.
하얀 북극곰이 콜라 선전에 나오는 것처럼 귀엽기만 한 것도,
디즈니랜드가 꿈의 동산이 아니란 것도,
웃고 있는 미키마우스의 커다란 인형 속에는
나와 같은 한 사람이 학비를 벌기 위해
한 여름에 뙤약볕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인상을 쓰며 있을 거라는 것도,
저 빌딩 속 사장은 이미 내 몫으로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다시 이 황량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
환상을 지어내는 사람이 되어
내 마음에서 어른만큼을 떼어내고 있는 중이다.
오늘 밤에는 여전히 보라색 달 위에 토끼가 절구를 찧고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여전히 산타가 나를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