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희망과 행복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다!
저자는 유대계 독일인으로 태어나 유복한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라이프니츠 김나지움에 진학하지만, 나치가 정권을 잡자 결국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쫓겨나고 만다. 그러자 에디의 아버지는 그를 ‘발터 슐라이프’라는 고아 신분으로 위장시켜 학업을 이어가게 해 준다. 아버지 덕분에 에디는 유대인임을 숨긴 채 고향을 떠나 기계공학 대학을 졸업하고 외롭게 의료기기 제작사에서 일하게 된다.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고자 1938년 몰래 고향집을 방문하지만, 그를 반겨주는 가족은 어릴 적부터 키우던 닥스훈트 ‘룰루’밖에 없었다. 가족들 모두 나치에 붙잡혀 수용소로 끌려갔기 때문이었다. 결국, 에디도 나치에 붙잡히고, 그를 폭행하던 나치군을 향해 달려들었던 룰루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에디는 이후 약 5년 동안 여러 강제 수용소를 옮겨 다니며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다. 그러다 기적처럼 가족들을 다시 만나게 되고, 아버지의 기질 덕분에 수용소를 탈출해 약 11개월 동안 가족들과 숨어 살며 행복한 나날을 지낸다. 하지만, 이웃의 밀고로 에디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송되고, 가족들의 생사도 모른 채 약 1년 3개월간 그곳에서 지옥 같은 삶을 살게 된다.
에디는 수용소에 있으면서 겪은 이야기를 노년이 되어서야 가족들에게 털어놓고 1992년부터 홀로코스트 경험담을 강연하며 봉사활동을 하게 된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감동을 전해주었다. 99세가 되어서야 그의 이야기가 책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다. 안타깝게도 에디는 2021년 102세의 나이로 행복했던 세상과 아름다운 작별을 한다.
이 책의 서문은 다음과 같이 묵직하게 시작한다. “나는 한 세기를 살았습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인간의 가장 사악하고 추악한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나치는 나와 모든 유대인을 말살시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참혹하고 슬픈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결말은 행복하기 그지없습니다. 행복은 여러분이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제부터 제가 보여드리겠습니다.”
저자가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인간이 어디까지 참혹해질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에디는 어느 수용소에서 우연히 오래된 친구 ‘쿠르트’를 만난다. 둘은 서로에게 큰 의지를 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낸다. 매일 아침 잠깐이라도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시간이 유일한 버팀목이던 어느 날, 커피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을 알게 된다. 주방에 있는 유대인 동료에게 물어보니, 커피에 ‘브롬화물(bromide)’이라는 성 충동 억제용 화학물질을 넣었다는 충격적인 대답을 듣게 된다. 유대인 남성들을 화학적으로 거세해 말살시키려는 목적이었다. 그 이후로 에디는 커피를 평생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에디가 수용소에서 만난 사람 중 나이가 가장 어린아이와의 대화는 그 당시의 비참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어린아이는 에디에게 자신이 여기서 살아서 나간다면 개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당시 나치 교도관들은 개를 한 마리씩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그 어린아이는 유대인들보다 개를 더 잘 보살펴주고 이뻐해 주는 교도관들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자신도 저렇게 따뜻한 돌봄을 받아보고 싶다며 어른이 되면 개가 돼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자식을 둔 부모의 심정에서 개가 되고 싶어 하는 그 아이를 떠올려 보니 가슴이 먹먹해져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책을 덮고 표지를 다시 보니 저자의 포즈가 이상했다. 왜 왼쪽 팔을 보여주고 있지 하는 생각에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있을 때 낙인된 수감번호가 적혀 있었다. 사진 한 장에 참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에디는 부모님을 평생 그리워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머니와 헤어진 후 한 번도 다시 만나지 못했고, 어떤 소식조차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에디는 아버지와 같은 수용소에 잠시 있었지만, 가스실로 들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오늘 당장 집에 가서 당신의 어머니를 꼭 안아주세요.”라고 말한다. 성인이 되고 나서 어머니를 안아주고,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스스로를 반성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외에도 수용소에서 나치 간부가 되어버린 자신의 대학 동기를 만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 극적으로 수용소를 탈출하는 데 성공해 인근 민가에 가서 도움을 청해 보지만, 집주인이 쏜 총에 다리를 맞고 죽을 고비를 넘긴 사건도 소개가 된다. 도저히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이겨내고 버틸 수 있었던 힘과 원동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는 지난날의 고통과 두려움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분노에 매달려 평생을 보내는 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분노는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증오를 낳으며 증오는 다시 죽음을 불러올 뿐이다.”
<백년을 살아보니>의 저자 김형석 교수님과 에디 제이쿠는 동갑이라고 한다. 전 세계 37개국에 판권이 수출된 이 책의 한국어 번역본에는 김형석 교수가 쓰신 추천글이 있다. “나는 이 책을 세상의 모든 아들, 딸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 책을 읽고, 사랑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희망과 행복의 주인공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에디 제이쿠가 지난날을 회상하며 들려준 말과 김형석 교수가 쓰신 추천의 글에서 그가 버틸 수 있었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부를 수 있었던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면서 나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며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나름 열심히 살아왔고, 때로는 게으름도 피우며 후회스러운 짓도 했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건강한 행복을 충분히 누리며 만족하고 있는 나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