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임과 인정, 그 어려운 일을 아내가 해냈다. -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될 때 교보문고 홈페이지와 국회도서관에서 보내주는 금주의 서평을 자주 검색해본다. 얼마 전 김혜남 작가의 ‘보이지 않는 것에 의미가 있다’를 읽으며 잔잔한 울림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정신분석 전문의이면서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저자는 체력의 한계로 더 이상 집필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책에서 밝혔다. 이제 김혜남 선생님의 따뜻한 위로를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되어 아쉬움이 컸었다. 그런데, 교보문고 홈페이지를 검색하던 중 이번에 10만 부 돌파 기념 스페셜 에디션으로 신간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장바구니에 바로 담아 두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다 보고 나면 바로 주문하려고 하던 순간, 4년을 함께 일한 직장동료로부터 연락이 왔다. 얼마 있으면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가게 되는 저에게 전출 기념으로 책 2권을 선물해주겠다는 너무나 반가운 연락이었다. 평소 같으면 결정 장애가 있는 나이기에 바로 답장을 보내지 못하고 쓸데없이 고민만 하다가 답답함을 못이긴 동료가 다시 물어보면 그때야 알려줬을 것이다. 그런데, 연락이 온 그날 본인이 교보문고에 있으니 빨리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나를 잘 아는 동료라서 그런지 지금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압박감을 줘야 내가 책을 고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다음 날 출근해보니 책상 위에 알려준 2권의 책이 올려져 있었다. 가장 기분 좋은 출근날 중 하루였다.
평소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제목의 이끌림이 무척 강했다. 1년 전 아내가 불의의 사고로 지금까지 힘겹게 재활을 받는 상황에서 근무지를 옮겨야 하는 개인적인 상황이 겹치게 되자 나도 모르게 생각이 많아졌던 것 같다. 지금까지 책을 읽으며 받은 위안과 깨달음 위주로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습작을 해왔다. 그래서, 가급적 개인적인 이야기는 담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번은 조금 달랐다. 저자는 파킨슨병에 걸렸다는 상황, 친언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의 고통을 담담한 어조로 들려준다. 그 아름다운 가르침들을 지금의 내 상황을 빗대어 기록하지 않으면 영혼 없는 공유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공감이 가면서도 가슴이 뭉클했던 장면은 저자가 파킨슨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했을 때 깨달은 교훈을 들려주는 장면이었다. 42세의 나이에 파킨슨병을 진단받은 저자는 자기 젊음의 일부, 능력의 일부, 건강의 일부, 희망의 일부, 내가 누릴 성취의 기쁨 일부를 잃어버렸다는 절망에 혼자 신음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문뜩 ‘단지 내 몸이 조금 힘들고 불편해졌을 뿐인데, 별로 달라진 게 없는데 나는 왜 이러고 있지?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조금만 수정하면 되는데...’라는 생각이 스쳤다고 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파킨슨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난 다음 가장 힘들었던 것이 바로‘받아들임’과 ‘인정’이었다고 고백한다. 본인에게 닥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한탄에 잠겨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고,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매달리는 대신 온전히 바꿀 수 있는 것들에만 집중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나니 자신의 한계가 명확해졌고, 모든 걸 잘하고 싶은 욕심도 내려놓게 되고, 자연스럽게 행복이 찾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김혜남 선생님은 라인홀드 니버(Karl Paul Reinhold Niebuhr, 1892~1971)의 기도문(Serenity prayer : 평온을 위한 기도) 한 구절을 자주 떠올리신다고 한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그 둘의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사고를 당한 직후 아내와의 통화, 그리고 응급실에 있는 아내를 본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평소와 똑같이 애교 넘치는 목소리로 연락이 왔는데 조금 다쳤다는 말뿐 자세한 설명이 없었다.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도착한 응급실에서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아내는 평상시처럼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별로 다치지 않았나보다 생각했는데, 허리뼈 1번과 4번이 골절되고 신경 손상이 있는 것 같다며 응급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 뇌와 심장이 멎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아내의 표정은 전혀 허리가 골절된 환자 같아 보이지 않았다. 평소 긍정적이고 강한 사람이라 자신의 상황을 냉정하게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큰 수술을 잘 마치고 본격적인 재활을 시작하면서 온전히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밝은 표정과 평소와 같은 애교 있는 말투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회피하고자 했던 무의식적인 방어기제가 아니었나 싶다. 복직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가족들의 걱정에 대한 미안함, 평생 대소변을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좌절감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재활병원에서 여러 번 자가도뇨를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고, 기대했던 것만큼 손상된 신경은 돌아오지 않았다. 손상된 신경은 회복이 안 될 수도 있고 된다 해도 매우 더딜 것이라고는 알고 있었다.
주변에서 국내 최고 비뇨기과 의사와의 진료 예약도 잡아 주었지만, 아내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러자 주변 분들로부터 아내를 설득해보라는 연락이 나에게 오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이 사실은 알리지 않았고, 지금도 모르고 있다. 전화를 주신 친척분에게 아내가 아마 겁나서 그런 것 같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만 했다. 잘 웃고 명랑했던 아내였는데, 재활을 아내는 아마 유명한 비뇨기과 의사를 만나도 별로 달라질 게 없을 거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어쩌면 유명한 의사의 말대로 시도해보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신경이 돌아오지 않았을 때의 좌절감과 불안감이 더 두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재활치료를 열심히 받겠다고 하며 서로에게 ‘할 수 있어. 잘했어요~’라는 긍정과 격려의 말만 하기로 약속하자고 한다. 수술받고 재활을 시작한 지 두 달 정도 지났을 때였다. 그동안 자신의 상황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얼마나 괴로워했을지 생각해보니 아내의 약속이 무겁게 다가왔다. 김혜남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아내가 그 약속을 직접 건네기까지의 심리적 저항과 그 이후로 지금까지 지내온 시간을 다시 돌이켜보았다. 선생님 말씀처럼 받아들임과 인정이 우리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심리적 결정인지를 깨달았다.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고 한다. 물론, 아내의 사고가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들이 나에게 찾아오는 일이 많다. 아무리 노력하고 조심해도 불가항력적인 일들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일들이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라는 심리적 방어기제로 스스로 회피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고, 과거를 빨리 잊고, 후회와 절망에 낭비하는 시간을 줄여 기대와 희망에 집중하는 나의 의지인 것 같다. 아내는 생각보다 그 결정이 빨랐고, 그저 위안의 수단이나 포기가 아닌 진심 어린 받아들임과 인정이였다. 그래서 아내가 더 대견하고 위대해 보인다. 왜냐하면, 나는 그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의 사고는 분명 자신의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포기하게 만들었고, 엄청난 변곡점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일어난 일은 일어난 것이고, 인간의 노력으로 지금에 와서 아내가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때로 돌아갈 순 없다. 받아들이고 나니 아내와 나는 현재에 더 만족하며 살고 있다. 이해인 수녀님께서 <기다리는 행복>에서 말했듯이, 행복은 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항상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랑 마시는 커피 한잔, 손잡고 거니는 동네의 풍경, 가족 단톡방에 가끔 올라오는 딸들의 셀카 사진 등 그동안 자주 해왔던 일상의 모든 것들이 이제는 행복하다.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나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현명하고 지혜롭게 현재를 잘 살아가고 있는 아내, 다친 엄마를 원망하지 않고 평소처럼 엄마를 대하는 사랑스러운 딸들에게 너무 고맙다. 김혜남 선생님의 가르침을 책에서 배우고, 실천하고 있는 아내의 존재를 통해 행복은 강도(剛度)가 아니라 빈도(頻度)라는 것을 잘 배우고 있다. 이제 나만 잘하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