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국을 모른다(김동현, 2023)

by 미래몽상가

김준영 전 국립외교원장의 <동맹이라는 역설>을 읽고 한미 외교사의 이면과 그 전략적 복잡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최근 지정학 관련 서적들을 관심 있게 읽으면서, 미국이 추구해 온 이른바 '대전략(grand strategy)' 실체가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제의식을 갖고 읽게 된 김동현 기자의 <우리는 미국을 모른다>는 단지 저널리즘적 관찰을 넘어선 정책적이고 시사적 통찰을 제공해 준다.


이 책의 제목처럼 우리는 미국을 잘 모른다. 그런데 개인적인 견해는 조금 다르다. 우리는 미국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음에도 알고 있는대로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어쩌면, 알고 있는 대로 정직하게 미국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침묵과 회피를 정면으로 직시해 보기를 바란다.


저자가 2020년 미 국무부의 초대를 받아 당시 국무부 군비통제 대통령 특사와 가진 기자 간담회에 참석했던 장면이 인상 깊었다. 마셜 빌링슬리 특사가 일관되게 중국의 핵 위협을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갔다. 이에 대해 저자는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에 대해 미국 측 대응이 과연 균형 잡혀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빌링슬리 특사의 돌아온 답변은 그야말로 외교관다웠다. 그는 모호하고 절제된 언어로 답변을 회피했지만, 그 이면에는 미국이 어떤 선택적 경각심을 행사하는지 잘 보여주었던 단면이었다고 생각한다.


2019년 5월 북미 간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한의 잇단 탄도미사일 발사가 이어졌다. 2019년 10월 위싱턴에서 열란 강연 도중 아베 정권에서 방위상을 지낸 오노데라 이쓰노리 자민당 의원이 트럼프의 북한 미사일 발사는 문제 되지 않는다는 트위터 발언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저자는 아직 대외에 공개되지 않은 극비 해제 문서를 입수했다고 밝히며 그 내용을 책 속에 담았다. 저자가 입수한 문서의 제목은 <중국의 핵 위협에 맞선 아시아 핵 지원 체계 검토>로 1965년 4월에 작성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작성 시점이다. 중국이 첫 핵실험을 강행한지 불과 6개월이 지났을 때 작성되었다. 작성 시점은 물론 내용 또한 눈여겨보야 한다. 문서에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에 핵공유제 도입 가능성을 검토한 흔적이 담겨있다. 당시 미국의 전략 환경 인식은 물론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유럽과는 다른 안보 질서 하에 놓여 있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라 인상 깊었다.


핵공유제 발상은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기에 시작돼 린든 존슨 대통령 재임기인 1966년 12월에 정식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에 도입되었다. 이에 따라 러시아로부터 멀리 떨어진 후방 지역으로 간주되는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튀르키예에 전술핵이 배치되었다. 그러나, 아시아에는 배치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트럼프 정부 시절 미 국방부 정책 담당 부차관을 지낸 데이비드 트라첸버그 교수는 아시아에 집단 안보 체제의 부재로 그 원인을 꼽았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의 동북아 전략환경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외교적 긴장이 단순한 북한 변수만이 아니라, 미중 전략경쟁, 동맹구조의 비대칭성, 그리고 지역 안보체제의 부재라는 복합 요인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우리는 미국을 모른다』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미국을 정말 모르는가? 아니면, 미국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를 분별하지 못한 채, 그간 너무나 단편적인 시각으로 동맹과 국제정치를 바라본 것은 아닌가?


김동현 기자는 특파원이라는 직책 너머의 통찰력을 보여준다. 외교적 수사 너머의 이면, 문서 속 문장의 배경, 전시된 권력과 숨겨진 전략 사이의 균열을 예리하게 포착해 낸다. 이 책은 외교, 국제정치, 전략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단단한 문제의식을 심어주는 텍스트다. 특히 한미동맹을 둘러싼 국내 담론이 여전히 감정과 진영논리에 갇혀 있는 지금, 보다 냉정하고 전략적인 시각을 요청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