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써야만 배울 수 있는 것
한때 우리는 유명 연예인을 만나면 싸인을 받아 소중히 간직했다. 종이와 펜을 들고 설레는 마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유명인들 주위에 인파가 몰리는 상황은 여전하다. 그러나 요즘은 사진 한 장이면 충분하다. 최근에는 AI가 연예인과 함께 찍은 사진처럼 합성해 주는 서비스도 제공되고 있다.
가공된 경험이 만들어지고, 우리는 AI가 창조한 허상을 실제 경험과 치환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경험의 멸종' 시대를 살고 있다.
#. 사라지는 손글씨와 ‘제필망자(提筆忘字)’의 시대
심지어 요리를 배우는 학생들이 케이크 위에 글씨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어느 제빵 강사의 하소연은, 손글씨가 우리 삶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중국청년보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 젊은이의 4퍼센트는 이미 일상에서 손글씨를 전혀 쓰지 않고 살아간다고 한다. 우리가 얼마나 디지털의 편리함에 몸을 맡기고 있는지 보여주는 현실의 한 장면이다.
요즘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시간에 주로 책을 읽고 있다.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북적대는 사람들 틈 사이에서 펜을 들기가 어려워졌다. 지하철로 출퇴근 한 지 1년 정도 지났다. 지난 1년 동안 읽은 책들이 유독 깨끗한 이유다. 독서량은 예전보다 많이 늘었다. 그러나 읽다가 떠오른 생각과 울림이 있었던 문장들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다. 그저 이 책 읽었었지 하는 기억 정도다. 주말에 감상평을 써보려고 노트북을 연다. 분명 읽을 때는 이런 내용을 써야지 생각했었다. 기록이 없다 보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시 노트북을 닫고 책을 펼친다. 깨끗하다. 펜을 들었지만 글자가 떠오르지 않는 현상, ‘제필망자(提筆忘字)’는 더 이상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크리스틴 로젠의 『경험의 멸종』 제3장은, 손으로 쓰는 행위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우리의 몸과 사고, 그리고 학습 과정 전체와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이를 설명하는 개념이 바로 ‘체화인지(embodied cognition)’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표현 ― “한 발 물러서 세상을 본다”, “기회에 뛰어든다” ― 속에는 이미 몸의 움직임과 사고가 긴밀히 얽혀 있다는 사실이 숨어 있다. 우리의 지능은 온몸의 감각을 통해 완성되어야 한다.
#. 생사를 가르는 펜 끝의 무게와 학습의 즐거움
그러나 손글씨의 소중함은 단순한 은유를 넘어 생과 사의 문제와 직결되기도 한다. 미국 텍사스에서는 한 여성의 남편이 의사의 자필 처방전을 잘못 읽는 바람에 오진약을 복용하고 세상을 떠난 사건이 있었다. 결국 병원은 45만 달러의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펜으로 그려낸 글자의 힘이, 때로는 목숨을 가를 수도 있다.
교육 현장에서도 손글씨의 힘은 증명되었다. 인디애나대 신경과학자 카린 제임스의 실험에 따르면,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경험은 아이들의 읽기 능력 발달을 촉진시킨다.
워싱턴대 버지니아 버닝거의 연구도 같은 결과를 보여주었다. 손글씨 훈련을 집중적으로 한 집단의 초등학생은 단어 인식, 읽기 능력, 표현력에서 모두 더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학습을 더 ‘즐겁다’고 느꼈다. 이는 손글씨가 단지 글자를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뇌의 방추형회와 연결되어 사고와 창의성까지 자극하는 과정임을 시사한다.
#. 노트북이 담지 못하는 깊은 사고의 흔적
반대로, 손글씨 대신 노트북을 사용하는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뮐러와 오펜하이머의 연구는 흥미로운 결론을 내놓았다.
노트북으로 필기하는 학생들은 손글씨로 필기하는 학생들에 비해 개념적이고 비판적인 질문에서 약한 성과를 보였다. 손을 움직이며 글자를 쓰는 느린 과정이야말로 깊은 사고와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진정한 배움이라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캘리그래퍼 폴 안토니오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칠 때, 사실 내가 가르치는 건 ‘속도를 늦추는 방법’이다.” 서두르지 않고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생각을 더 오래 붙잡고,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경험의 멸종』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아이들이 배우는 데 필요한 것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며, 글씨란 단순한 문자 전달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합쳐져 만들어내는 배움의 통로라는 것을. 손글씨가 점점 사라져 가는 시대, 오히려 그 느림의 가치를 새삼 떠올리게 된다.
#. 기다림과 지루함의 미학
크리스틴 로젠은 '기다림'과 '지루함'이 사라지는 현상을 주목한다. 기술은 우리에게서 지루함을 뺏어갔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기다림의 가치도 함께 앗아갔다.
기다림은 '기다리다'의 순우리말로, 어원적으로 '기대다'와 닿아 있다. 즉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어떤 대상이나 사건에 마음을 두고 그것이 오기를 바라며 시간이 흐르기를 견디면서 머무는 상태를 뜻한다. 기다림은 늘 불확실성이 내재되어 있고, 인내를 요구한다. 그래서 기다림의 가치는 인간적이다.
기술이 발전하기 이전의 시대에 기다림은 일상이었다. 사냥을 나간 가족이 살아 돌아오기를 마음 졸이며 기다려야 했다. 고향을 떠난 자식에게 편지를 부치면 답장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극장에서 영화 티켓을 살려고 매표소 앞에서 기다리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부터 찾고 잠들 때까지 손에서 놓지 않는다. 배달 기사의 실시간 위치를 확인하고, 로켓 배송 상품의 배송 현황을 추적한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내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있는 세상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늦게 오면 짜증을 낸다. 정작, 자신은 사람과의 약속 시간에 늦으면서 말이다.
#. 기술에 저항하라. 스마트폰 대신 펜을 들어라.
저자는 기술에 저항하라는 메시지로 마무리한다. 우리의 역할은 '사람이 머무를 수 있는 틈새를 확보하는 것'이고, '기술이 침범하지 못할 인간적 공간을 복원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 너무 어렵다.
스마트폰을 향한 나의 욕망을 제어해야 한다. 뭔가를 시작하기는 오래 걸린다. 시작한 일을 꾸준히 실천하는 것도 쉽지 않다. 중간에 멈췄다가 다시 시작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하지만 멸종되어 가는 나의 감각을 되살려야 행복해질 수 있다. 풍요로워질 수 있다. 느리더라도, 중간에 멈추더라도 다시 펜을 들자.
손으로 화면을 의미 없이 스크롤하는 대신, 소중한 누군가에게, 또는 나에게, 마음을 담은 글자 한 자 손으로 써보자. 준비가 되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