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대가에 대한 경고
읽으면서 가장 밑줄을 많이 그었던 책 중 하나다. 심리학에 늘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20년 넘는 공직 생활 동안 말하지 못했던, 말할 수 없었던 수많은 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을까. 이 책은 사람들이 실제로 믿지 않는 생각을 다른 사람들이 믿는다고 착각할 때, 집단적 오류가 시작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집단착각>의 저자, 하버드대 토드 로즈 교수는 <평균의 종말>과 <다크호스>를 쓰신 분이다. 그는 <평균의 종말>에서 평균이라는 허상을 깨드렸다. <다크호스>에서는 표준 공식이라는 개념을 통해, 집단이 공식화해 놓은 표준에 맞춰 사는 것이 개인의 진짜 행복과 얼마나 어긋날 수 있는지를 통찰했다. 우리는 국가, 사회, 직장, 학교 등 다양한 집단이 정해놓은 표준에 맞춰 사는 삶을 더 안전하다고 믿는다. 이번에 나온 <집단 착각>은 두 걸작의 연장선이자, 어쩌면 가장 응축된 최종본이라 할 수 있다.
유학시절 미래학을 공부하면서 비판적 사고를 배운적이 있었다. 지금은 비록 군대를 전역하고 사회인이 되었지만, 군에 있을 때 나름 육군의 변화와 혁신에 기여하고자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를 군 간부들 대상으로 교육했었다. "숨어 있는 가정을 찾아서 그 가정을 뒤집어 적용해보라", “깊고 넓게 생각하라”, 그리고 끊임없이“질문하라”고 강조했었다. 그러나 막상 현실은 달랐다. 회의실 안에서 사람들은 조용했고,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교육을 준비하면서 깨달은 한 가지는 군이라는 거대한 공동체가 집단사고(group thinking)와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의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는 사실이었다. 교육과 현실이 한 끝 차이인 것처럼.
#. 집단지성과 집단사고 사이에서.
토드 로즈 교수는 우리가 얼마나 ‘보이지 않는 기준’에 순응하며 살아가는지 차근차근 풀어낸다. 《평균의 종말》, 《다크호스》에 이어 “왜 우리는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통찰의 정점을 찍는다. 그는 말한다. 솔직한 대화와 투명성이 건강한 사회의 첫걸음이라고. 그리고 그 출발점은 아주 단순한 질문, “왜?”라고 묻는 용기에서 시작된다고.
#. 질문하지 않는 이유.
생각해 보면 우리는 속으로는 늘 ‘왜?’라고 묻는다. 하지만 입 밖으로는 잘 꺼내지는 못한다. 특히, 직장에서, 학교에서,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더 주저하게 된다. 왜냐고 묻는 순간 이질적인 존재가 될까봐, 분위기를 깨뜨릴까봐, 조직 안에서 배척당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질문은 무지의 장막을 걷어내는 도구라고. 그 장막 뒤에 숨어 있는 관습과 권위, 익숙함과 안일함을 꿰뚫어 보는 힘이 질문에 있다고.
대학원 시절 비판적 사고를 배울 때, 지도교수님께서 늘 강조하신 말씀이 있다. “우리가 주장하는 결론은 언제나 어떤 ‘가정(assumption)’위에 서 있다고. 그리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을 의심하라. 그 가정을 바꾸는 순간, 전혀 다른 세상이 열린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피터 비숍 교수님께서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믿음과 전제들, 즉 가정을 찾아내고 그에 대한 대안적 가정(alternative assumption)‘을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하라고 가르치셨다.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강력한 가르침이었다.
이는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와도 맞닿아 있다. 데카르트는 참된 지식을 얻기 위해 먼저 모든 것을 의심했다. 기존의 신념이 확실한 근거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진리일 수 없다는 전제였다. 비숍 교수님도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가정을 의심해보라고 하셨다. 현재 추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가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단선적 사고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러나 그 가정을 의심하는 순간,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 수 있다. 어쩌면, 토마스 쿤이 말하는 ‘패러다임의 변화(Paradigm Shift)’가 일어날 수도 있다.
#. 글쓰기, 나를 마주하는 시간.
집단착각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방법 중 하나는 글쓰기를 통해 나를 알아가는 것이다. 책에서는 폭력 조직에 비밀경찰로 들어가 임무를 수행했던 경찰관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그는 수년간 비밀 임무를 수행하면서 정체성의 혼란과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었다고 한다.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말로 하지 못한 수많은 감정을 글로 적으며 치유받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의 불안은 배척당할까 봐 두려워했던 감정에서 시작된 것이었다고.
그 이야기가 낯설지 않았다. 나 역시 글을 쓸 때, 비로소 내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말하지 못한 ‘왜’를 조심스레 꺼내어 나조차도 몰랐던 나를 만나는 마법과 같다.
#. 대한민국이 겪은 ‘침묵의 대가’
우리는 최근 또 한 번 침묵과 동조의 비극을 경험했다. 지도자는 국민의 질문을 피했고, 비판을 적으로 간주했으며, 견제 없는 권력에 안주했다. 그 결과는 헌법재판소의 파면이었다. 이 사건은 우리가 ‘왜?’라고 묻지 않았을 때, 무엇이 무너지는지를 보여준 사례다. 스스로에게 '왜' 라는 질문을 하지 않았던 군대도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대통령 탄핵은 단지 정치적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왜?’라고 묻지 않았을 때, 무엇이 무너지는지를 보여준 사회적 비극이었다. 우리는 ‘공포의 침묵’ 속에서 진실 대신 허울뿐인 충성을 택했고, 그 대가는 국가의 상처였다. 토드 로즈의 말처럼, 침묵은 권력을 강화시키고, 거짓을 진실처럼 보이게 만든다.
#. 지금, 질문할 차례
《집단착각》은 우리에게 말한다. 더 이상 ‘다들 그렇게 하니까’라는 이유로 침묵하지 말라고. 질문하는 사람,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말할 용기를 가진 사람이 결국 세상을 바꾼다고. 이 책은 단지 집단에 대한 분석서가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더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게 일깨워주는 책이다. 질문은 불편함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이다.
어쩌면 당신도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동안 하지 못했던 단 하나의 질문을 용기 내어 꺼내게 될지도 모른다.“왜 우리는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