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의 신비, 사냥의 잔혹함, 인간의 양가적 마음을 품고 있는 바다에서.
#. 두 번째 만남. "왜 인어인가? 신화 속 눈물의 존재"
차인표 작가와의 두 번째 만남이다. 정글북 독서모임의 9월 추천 도서 『인어사냥』. 제목을 듣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궁금증은 "왜 하필 인어일까?"였다. 책을 읽기 전 북콘서트 영상을 먼저 보았다. 거의 모든 나라의 신화와 전설 속에 등장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인어와 용이다. 작가는 조선 시대 유몽인의 '어유야담' 속, 눈물 흘리는 인어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고백한다.
#. 죽음의 경계에 서서
주인공 덕무가 딸을 위해 인어사냥을 나선다. 두 번째 질문 속으로 나를 끌어들인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 이 책을 읽은 많은 분들도 같은 질문을 했을 것이다. 어쩌면 작가가 던지는 시대의 질문일 것이다. 덕무, 공영감, 영실, 그리고 인어가 되어보기로 했다.
두명의 딸을 둔 난 이 질문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덕무가 되어보는 건 고통스러운 빙의였다. 솔직히, 나라면 인어를 죽였을 것이다.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면 말이다. 엄마 등에 업혀 있던 둘째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던 적이 있었다. 진단은 장기간 약물치료. 그날부로 아내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사실, 난 그때 아내만큼 용감하지 못했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엄마라는 존재를 만든 이유를 깨달았다. 둘째와 아내에게 지금도 미안하다. 그래서 덕무와 같은 상황이 찾아온다면, 난 과감히 인어를 잡아 기름을 만들어 딸에게 먹였을 것이다.
덕무도 처음에는 그랬다. 아픈 영실이를 살리기 위해 잔인한 인어 사냥꾼이 되기로 했다. 그 어떤 살인자보다 잔인한 존재가 된 것이다. 나이 든 자식이 물가에 나가도 걱정이 앞서는 존재가 부모다. 하물며 곧 죽을지도 모르는 어린 딸아이를 둔 부모라면 무엇인든 못할까. 아직 살아갈 아름다운 날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들을 조금 먼저 살아보니 괜찮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느끼게, 경험하게, 알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그렇게 크나보다.
하지만 덕무는 마음을 바꾼다. 인어를 살리자는 영실이의 결정을 따르기로 한다. 내가 고민했던 선택지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러나, 난 이 선택을 선택지에서 지웠다. 마치 어려운 결정을 딸에게 미루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절망적인 상황에서의 선택은 언제나 어렵다. 누군가는 결정해야 하고, 결정에 대한 책임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한다. 닥쳐올 책임의 무게를 내 딸에게 지우게 하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공영감이 되어보았다. 이미 인어사냥을 해보았고, 인어로 짠 기름을 먹고 효능을 경험해 본 인물이다. 더 욕심이 났을 것이다. 아는 놈이 더 한다는 말이 있다. 절제하기 어렸을 것이다. 내가 공영감이었으면 인어를 죽이려고 했을 것이다. 인어로 짠 기름을 영실에게 주기 위해서. 그리고 난 그 기름을 마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 생명의 교감과 이름을 가진 존재
영실이 되어보았다. 영실이와 같은 상황이지만, 지금의 내 성향을 가진 영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완강하게 거부하지 못했을 것 같다. 뒤늦은 후회를 하며 끝내 먹지는 않았을 것 같다. 영실은 달랐다. 잡혀온 인어와 교감하며 단순한 동정심을 넘어 생명의 신비를 느낀다. 결국 인어를 원래 있던 흑암도로 돌려보내주기로 한다. 아버지의 배를 훔쳐 달아난다.
잡혀온 인어 남매에게 영실이 붙여준 이름은 찔레와 짱아다. 나는 그 인어가 되어보기로 했다.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아이들이 불러준 이름은 낯설고 따뜻했다. 이름을 얻는다는 것은 곧 존재의 인정이다. 사냥꾼에게 인어는 그저 사냥감에 불과하겠지만, 영실과 영득에게는 살아있는 생명으로 존재했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는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 방관자의 질문
문뜩, 계엄사건이 생각났다. 전우들과도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방관자의 입장에 서 있으면 답은 언제나 분명하다. 일이 일어난 뒤 과정을 바라보면 답은 언제나 명쾌하다. 그러나 그 상황의 당사자가 되어 질문의 방향을 나에게 돌려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답은 언제나 모호하다. 나의 대답은 '글쎄..잘 모르겠다' 이다. 『인어사냥』은 어쩌면 독자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덕무, 공영감, 영실, 인어였다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 시간의 파도와 사라지지 않는 욕망
바다에 대한 작가의 멋들어진 비유가 있다. "신비와 비밀을 품은 바다는 어부의 접근을 조금만 허락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어부가 일평생 살기에 충분한 곳이다." 바다라는 경이로운 공간에서 사냥이라는 폭력성과 인어라는 환상적인 존재가 파도처럼 부딪히며 인간의 내면을 직면하게 된다. 사냥 행위 자체보다 더 잔인해질 수 있는 인간의 본성과 마주하게 된다. 결국 가장 잔인한 것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소설은 시간의 파도를 타고 신라와 현대를 넘나든다. 멀미가 날 만큼 어지럽기도 했고, 몇천 년의 간격 탓에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인간의 욕망은 결코 변하지 않았음을. 처음엔 시공간을 오가는 서사에 약간의 혼란을 느꼈지만, 결국 깨달았다. “아, 천년이 흘러도 인간의 욕망은 변하지 않았구나.” 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었다.
#.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책장을 덮으며 이런 생각과 질문이 떠올랐다. 결국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곳은 어디인가? 생명만 존재할 뿐 욕망이 없는 곳. 어머니의 양수와 같은 곳. 충만함이 가득한 곳이다. 어쩌면, 인간이 지향해야 할 곳은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의 세상이 아닐까? 인어라는 신비로운 전설적 생명체, 사냥이라는 잔혹한 학살, 양가적 마음을 가진 복잡한 인간, 그리고 이들을 모두 품고 있는 바다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던지는 질문.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