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영써티 직장인의 주도적 인생 살기 프로젝트(3)

3. 우물 안 개척자

by 영써티

3. 우물 안 개척자


나는 길을 찾지 못하는 무능한 개척자 지망생이자 대기업 8년 차 영써티 직장인이다.


내게는 삶의 개척자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회사도 가치관에 맞춰 골라서 취직했고, 회사를 다니며 내가 더 즐거워하는 직무로 자격증까지 취득해 전환에도 성공했다.

직무 전환 전/후 모두 업무 능력에 모자람을 느낀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동료들과도 정말 잘 지냈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다. 오히려 허무가 자주 찾아왔다. 개척이란 고단한 일이라서 그런걸까?(착각도 이런 착각이 없다.)


우울감을 최고조에 달하게 만든 욕심쟁이 상사들 덕분에 직장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나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개척자라는 자부심이 사라지니 반짝거리는 건 내가 아닌 신기루였다는 사실과 하루를 마지못해 살아내고 있는 이가 선명히 보였다.

회사 외에는 그저 침대에 누워 유튜브만 보는 게 다인, 시간을 죽이는데 통달한 이가 보였다.


어렴풋이 구석에 보이던, 말라비틀어져 시들어가는 이가 나였다니!

이렇게 시들시들한 사람에게 뭐가 필요한지 몰라서 술을 퍼부어줬다. 그것도 매일매일.

처음에는 갈증이 해소된 듯 숨통이 트였으나, 나중에는 술에 잠겨 다시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여기서 Fun fact!

술에 의존적이 되었으면서, 마냥 소비만 되고 싶지 않다고 술 관련 자격증도 취득했다.

우습게도 나는 진짜 문제는 직면하지 않고 그저 잘 포장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인 것이다.


왜 행복하지 않은지, 자주 심연 속으로 떨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 정말 몰랐을까란 생각이 종종 든다.

술 자격증처럼, 그냥 눈앞에 보인 선택지 중 하나씩 골라 땜질로 버텨온 8년이, 아니 훨씬 이전부터 스스로를 속여온 그 시간들이 무엇을 개척해야 하는지 모르는 개척자를 만들었다.

욕심 주의 경보에 대피하려는데, 틀에 갇혀 길을 찾지 못하는 무능한 개척자만이 남아있었다.


네 번의 기회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만나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여행을 많이 다니라고 말할 것이다. 관광이 아니라 가치관을 느끼고 오라고.


최근에 유럽을 다녀왔다. 시차 적응에 대 실패한 나는 시차란 단어의 존재를 모를 것 같아 보일 정도로 잘 적응한 일행의 단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잠 못 드는 날에는 호텔 로비를 배회했다.


따뜻한 직원들 덕분에 그 긴 밤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직원들과 대화하다 나에게 꽂혔던 말이 행복하냐는 질문이었다.

‘일은 재밌고 행복하니?, 취미는 뭐가 있니? 다 아니라고? 그럼 다른 재밌는 일은 뭐가 있어?’


그 대화들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내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고 약 이 주간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일에서 오는 허무보다는 취미조차 없는 내가 너무 비참해서, 하루하루 살아내는데 급급한 내가 싫어서.(물론 이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 중인 와중에 그런 말을 들어서 빠져나가지 못한 걸까?


어느 정도 눈물이 거둬진 후에, 여행기를 정리하다 나는 이런 대화가 네 번째란 걸 알게 되었다.


1. 취업 1년 차 호주 여행에서 만난 도시공학자 친구.

같이 가기로 한 친구가 하필 일주일 전 취업을 하는 바람에 갑작스러운 혼자 여행이 되었다.

그로 인해 생각도 못해본 도미토리 룸에 묵게 되었고,

나와 같이 매일 늦게 일어나던 로마 출신 룸메이트와 하루 시드니 여행을 동행하며 같은 대화를 나눴다.


2. 그 뒤에 캐언즈에서도 같은 이유로 키프로스 출신의 룸메이트와 하루 동행하며 또 같은 대화를 나눴다.


그래 이때까지는 아직 일 년 차라 좀 더 지나면 분명히 알게 될 거라 생각했다.


3. 직무 이동을 준비하던 해, 멕시코 PDC에서 만난 생년월일이 같던 친구.

그 친구도 행복하지 않은데 왜 계속 그 일에 머무르냐는 이야기를 건넸다.


이때는 아마 직무 변경이 나를 구원해 줄 거라 믿었던 것 같다.


4. 그리고 최근 유럽에서의 대화

이제 이 회사라는 울타리 영역에서 나를 구원해 줄 무언가는 없다는 걸 알아서일까. 다른 세 번의 질문은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번엔 왜 이렇게 마음에 아프게 박혀있는 걸까.

어쩌면 유럽이 번성한 시절의, 인간의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경건함과 위대함이 묻어있는 작품들을 두 눈에 담은 직후라 나도 그들처럼 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서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욕심쟁이니까.


어쨌거나 요지는, 삶을 느꼈다기엔 짧은 만남과 대화였지만 적어도 다른 나라 사람들의 가치관은 어렴풋이 알 수 있는 기회들이었다.

그리고 이런 기회들이 없었다면 고통은 안으로만 곪고 원인도 모른채 그것을 겨우 삼켜내며 살았을 거라는 것이다.

아니, 내 나름대로 발버둥 쳤겠지만, 안전지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거다.

(한국에서는 회사 안에서 찾아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고, 나 또한 이전 조직의 복귀를 염두하고 있었다)


주로 무미건조하다가 본인 직업 얘기에는 눈이 반짝이던 도시공학자 로마 친구, 카메라를 붙잡고 있을 때 빛나던 키프로스 친구, 나와 한날에 태어나 주도적으로 살고 있는 칸쿤 친구, 자기 꿈을 위해서 달려가고 있는 이번 유럽 여행에서 만난 베네치아 친구.


모두 반짝이고 생기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만 반짝였던 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짝였고, 활력있었다.

그들의 고민을 내가 모르기에 단언하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주체적 삶이 주된 가치라는 게 느껴졌다.

(한국에서도 주변에 반짝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풀어나가겠다.)


그렇게 우물 안 개척자는 네 번의 기회만에 우물 밖 세상을 인지하게 되었다.

이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찾는 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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