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영써티 직장인의 주도적 인생 살기 프로젝트(5)

5. 요지 야마모토의 눈

by 영써티

5. 요지 야마모토의 눈


나는 요지 야마모토의 눈을 가진, 그러나 다른 눈을 찾고 있는 대기업 8년 차 영써티 직장인이다.


드.디.어. 나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

우선 내가 분명히 아는 것들로 시작하겠다.

1) 생각이 많다.

공상과학적 상상을 하는 게 아니라 what if, and then 형태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많다.

이 생각은 내 의지대로 조절되는 게 아니라서 명상 연습을 하더라도 머리를 비우는 게 잘 안된다.

지식의 모자람 때문인지, 미성숙한 인격 때문인지, 그렇다고 사유라고 불릴 정도로 깊은 생각은 못한다.


2) 걱정이 많다.

생각이 많다 보니 온갖 경우의 수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걱정으로 남는다. 그러면 대비책을 A부터 Z까지 떠올리고 종국에는 그 모든 걸 종합해 궁극의 대비책을 생각한다.


3) 욕심이 많다

궁극의 대비책은 결국 욕심이다.

현실적인 안들이 궁극의 대비책으로 변질되며 허무맹랑한 소리가 되지만 욕심을 낸다.


그리고 원래도 탐욕적이다.(이건 오랜 연인 덕분에 깨달았다.)

남들과 비교하며 부러워하고, 진심으로 원하지도 않으면서 그 모든 걸 가지려 한다.

이 또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불쑥 튀어나오는 감정이라 아예 타인의 삶에 접근하지 않게 서른 살이 되던 해, 소셜미디어 계정을 모두 삭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타인과 비교를 멈추니 내 미래로 생각, 걱정, 욕심이 옮겨졌다.


그리고 4) 성격이 급하다.

생각이 많은데 성격이 급하다는 역설적으로 들리는 감이 없잖아 있지만, 생각이 많다 보니 빨리 해치우지 않으면 집중이 흐트러지기에 생존을 위해 급한 성격이 학습되었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보면 나는 좀 웃긴 것 같다.

원래는 생각이 많아 느린 성격으로, 그에 따라 말도 엄청 느린데 - 나는 말이 정말 느리다. 답답해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고, 말하기 시험을 한국말로 응시한다 해도 발화량이 모자랄 정도다- 태스크들은 급하게 처리한다.


얕고 넓은, 주의력 결핍을 유발하는 많은 생각 덕분에 짧은 고민과 급한 성격의 환장의 콜라보가 탄생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5) 머리로 받아들이는 건 정말 잘한다.

머리로는 나는 필요치 않는 것을 욕심내고, 쓸데없는 걱정이 많다는 것도 안다.

또,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는 건 없다는 것도 안다.

다만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건 다른 문제이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세뇌하듯 매일 ‘모든 걸 다 가질 순 없다 ‘를 되뇌는 중이다.


……………………………….

이제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 얘기하면,

1) 나의 취향을 모른다.

취미, 삶의 목표, 작게는 옷 스타일, 음악, 책 등등 내가 어떤 장르를 좋아하고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모르기에 모든 장르를 가리지 않고 경험해보기는 하나 딱히 와닿는 건 없다.

(물론 대작들 앞에 감동을 받는 건 제외했다. 대작이라는 건 모든 인간들이 감동받을 수밖에 없는 객관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거니까)


아, 옷과 관련해서는 20대 중반까지는 나만의 스타일이 있었다.(당시 유행하던 웹매거진에도 실렸었다!)

아직도 가족들은 내가 이상하게 입고 다닌다고 종종 얘기하기에 나만의 스타일이 남아있긴 한 것 같은데..

내가 좋아하는 느낌, 취향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2) 표현하는 법을 모른다.

글, 그림, 음악 등등 다양한 표현수단 중 내가 할 수 있는 건 글밖에 없다.

그것도 나래비를 세우면 하위권에 속할 부족한 수준이지만 말이다.

지식의 모자람과 사유의 부족함 때문이겠지.

그리고 회사일로 외국 지사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언어적 한계도 많이 느낀다.

예를 들면, 뜨거운 국물을 먹고 시원하다고 표현하는 것을 영어로 정확히 번역하기 힘든 것과 같은 부분 말이다.

(나는 여전히 내가 책을 내고 언젠가 해외로 번역될 것이라는 상상을 하기 때문에 저런 쓸데없는 한계를 느끼는 거다.)


그렇다고 비언어적 표현법인 그림, 음악, 춤 등등의 영역은 더더욱 잼병이다.

표현을 목적에 두면 잘하는 건 중요치 않지만, 비언어적 표현도 거들어서 내 안의 생각과 걱정들을 토해내고 싶은데,

아예 할 줄 모르니 이건 뭐.. 유치원생에게 파동방정식을 풀어보라는 것과 같은 일이다.


3) 꿈의 동사형을 모른다.

큰별 최태성 선생님은 꿈은 동사여야 한다고 했다. 정말 맞는 말이다.


요지 야마모토의 인터뷰를 봤다. 패션업계의 거물인 그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본인은 디자이너가 아니고, 옷을 만드는 사람일 뿐이라고 했다.

자신은 디자이너가 되기로 선택한 게 아니고 그 선택지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굶어 죽었거나 범죄자가 되었을 거라고 하며 사랑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그의 눈은 슬퍼 보였다.(더 다른 표현이 적절할 텐데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그처럼 한 업계의 거물이지도 않으면서, 감히 그의 눈을 통해 나를 보았다.

80 가까이의 세월을 살아온 그의 모습이 내 80세의 눈일 것 같았다.

뮤지션이나 화가가 되고 싶었다는 그는 만약 그리되었다면 다른 눈을 보여주었을까?

잘 모르겠다. 가보지 않은 길은 부러울 수밖에 없을 테니.


다만 지금 드는 생각은,

내가 지향하는 바를 어렴풋이라도 알고 있어야 동사형의 꿈을 지닌 눈으로 생을 마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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