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영써티 직장인의 주도적 인생 살기 프로젝트(6)

6. Lucky Me

by 영써티

6. Lucky Me


나는 이중적이고 한심하지만, 행운이 따른 대기업 8년 차 영써티 직장인이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보겠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원하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면,

나는 책을 한 권 내고 싶었다. 장르는 따뜻한 블랙코미디.

냉소적으로 세상을 보고 있지만 마음 한편에 따뜻함을 갈구하는 바람을 투영한 나의 작품.

어쩌면, 내 생각을 토해내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또, 세상의 비밀을 알아가고 싶었다.

수학, 물리학, 고고학 등등 다 너무 재밌다.

여전히 나의 유튜브 시청기록은 다 이런 지식채널들이다.


또,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힘쓰는 투사이고 싶었다.

하지만 욕심만큼 희생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이 꿈은 이야기하기에 부끄럽다.

아니, 이 꿈만이 아니다. 전부 욕심만 있지 노력과 희생은 없었다.

책을 쓰는 법을 배우거나 연구해 본 적도,

세상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학문을 파보지도,

세상을 위해 힘쓰려 봉사활동에 열중하지도 않았다.


내가 내 자신을 잘 모르는 이유도, 그를 위한 노력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이렇게 우울한 이유도, 욕심만 그득하고 그를 위한 희생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쓰고, 기운을 쓰고, 자신을 쓰는 사람들을 우러러보는 것 같다.

반짝이며 살아있다 여기는 것 같다.


내가 지닌 가치관은 무엇이었을까.

지금까지를 돌이켜보면 나는 물질만능주의가 내 가치관이었던 것 같다.

안정적인 직장, 안정적인 급여, 안정적인 부가수입.

한남동의 고급 빌라에서 한강뷰를 내려다보며 살 정도로 높은 곳을 바라진 않았지만,

30평대 자가를 갖고 있으며, 1년에 해외여행 2~3번은 나갈 수 있고, 취미생활도 꾸준히 할 수 있는 수준의 삶을 지향했다.

(여행을 좋아하지도, 딱히 취미도 없으면서 말이다.)


천민자본주의에 속이 메스꺼워지면서도 나 또한 물질을 추구하는 이중적인 사람이다.

내 오랜 연인은 나의 그런 모습을 버거워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너무 많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억지로 읽혀온 책들 덕분에 삶을 충만하게 하는 것들은 물질이 아니란 건 알고 있었다.

삶을 충만하게 살 줄 아는 오랜 연인 덕분인지, 스스로에게 지쳐가는 중이어서 그런 건지, 이제는 낭만을 추구하게 되는 것 같다.

아무것도 낚지 못하더라도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있는 시간들이,

달밤에 노래를 틀어 놓고 춤을 추는 시간들이 5성급 리조트 수영장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보다 즐겁다.


운이 좋아서 다행이야


지난 유럽여행에서 나의 시차 부적응을 도와줬던 24살의 리카르도는 본인의 꿈을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대학에서 생명과학을 공부할 거라는 리카르도는 이미 공대를 졸업하고 엔지니어 8년 차라는 나를 대단하게 봤다.

명칭이 엔지니어이지, 한 번도 엔지니어로 일한 적이 없는 나는 많이 민망했고, 행복하냐는 질문에 행복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새로운 길을 찾고 싶지만 나이가 많아서 어렵다 말했고 한국의 일반적 track에 대해 이야기했다.

리카르도는 정해진 track은 없고,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고 했다.

나는 그건 네가 어려서 그런 거라고 냉소적으로 답변했다.


그렇게 나는 방으로 돌아가고, 아침에 리카르도에게 너무 미안해졌다.

나의 이 부정적인 답변이 그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겠지만, 혹시라도 반짝이는 어린 친구를 구름처럼 가려버리진 않을까 무서웠다.

나는 그에게 내가 한 말은 나의 환경에서 나의 생각일 뿐이니 너는 다를 거라고 사과의 말을 전했다. 정말 다행히 말이다.


매우 신기한 게 잘 모르는 타인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게 된다.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기 힘든 나는 행복하지 않다라던가 말이다.

리카르도는 그 짧은 대화 속에서도 나를 정확하게 파악했고, 나보다 더 어른이었다.

나의 여행 소감을 비롯한 온갖 주제의 대화 속에서 그는 내가 뭘 배우고 알아가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지하지 못했었는데 내가 즐거워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몰입했던 일들은 다 그런 것들이었다.

문제를 푸는 것도, 지식 채널을 그렇게 보는 것도, 역사적인 장소에서 역사적 사실들을 알아가는 것도, 회사에서도 가끔 즐거운 시간은 그런 시간들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는 잘 모르지만 말이다.


내가 시차 적응을 잘해서 리카르도를 마주칠 일이 없었다면,

호텔에 헬스장이 있어서 알아서 체력을 소진하고 잠에 들었다면,

그가 학비를 모으기 위해 야간조를 담당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부분을 알아내는데 꽤 시간이 걸렸을 것 같다.

이러한 우연들로 나를 또 알게 되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리고 얼마나 행운인가.

말 그대로 달밤에 춤을 추는 낭만적인 연인, 다른 삶을 함께하자며 손 내밀어주는 이가 이렇게 가까이 있다니.

충만한 삶을 사는 친구들, 동료들, 심지어 스쳐 지나간 이들마저도, 반짝이며 살아있는 이들이 내 주변에 이리도 많은 것이.


……………………….

나의 track을 만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개척이란 단어가 따로 있는 것은 그 고난을 모두가 인정하고 존경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래도 나는 좋은 본보기가 주변에 많기에 행운이다.

빛나는 건 내가 아닌 주변이었다는 사실이 많이 쓰렸지만, 내가 추구하는 바에 대해 알게 되면 연인의 낭만주의에 서서히 물들었듯 다른 이의 생기에 물들어 나 또한 생기 있는 이가 될 것이라 믿는다.

나의 목적지를 찾아내고 길을 만들어 그 길 끝에서 살아있는 웃음으로 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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