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루틴은 답이 아니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성취만 바라보고 살았다. 하루를 버텼다는 증거가 필요했고, 그 증거는 체크리스트 위에 남은 작은 흔적이었다. 운동을 끝내고, 공부를 마치고, 글을 쓰고 나면 줄마다 ✔ 표시가 채워졌다. 그 흔적을 바라보면 안심이 되었고, 그날 하루를 버텨냈다는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되었다. 종이 위의 흔적은 늘어났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공허했다.
성취가 분명 나를 움직이게 했지만, 그것은 잠시뿐이었다. 불을 끄고 누운 밤이면 성취의 기록은 남아 있었지만, 그 기록을 기뻐할 감정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살아 있다는 감각을 얻으려 성취를 쌓았지만, 정작 삶의 감각은 점점 잃어버리고 있었다.
운좋게도 그 당시에 들은 라이프코드 강의에서 “공허는 성취가 주는 환상 뒤에 숨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 머리를 세게 쳣다. 라이프코드는 인간의 삶을 몇 가지 코드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공허다. 강의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성취 중심의 삶, 즉 목적주의적 삶은 분명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만, 동시에 감정을 소외시킨다. 무엇을 이루었는가는 기록할 수 있지만, 무엇을 느꼈는가는 지워져 버린다는 것이다.
그 설명을 들으며 나는 내 일상을 떠올렸다. 나는 늘 “무엇을 해냈는가”에만 매달렸다. 성취가 있으면 가치 있는 삶을 산 것 같았고, 성취가 없으면 의미 없는 하루를 보낸 것 같았다. 그러나 라이프코드가 지적한 것처럼 성취는 방향을 줄 뿐, 의미를 보장하지는 않았다. 목적은 채워졌지만 감정은 비어 있었고, 그 간극이 바로 공허였다. 나는 공허라는 단어를 강의에서 배웠지만, 사실 오래전부터 그것을 살고 있었다.
앞선 편에서 나는 내가 만든 루틴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자유를 얻기 위해 만든 틀 속에서 오히려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틀 속에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본다. 그것은 바로 감정이었다. 루틴은 나를 보호하는 동시에 나의 감정을 지워버렸다. 성취는 삶의 무대를 화려하게 꾸몄지만, 그 무대 위에서 연기해야 할 배우인 나는 점점 사라졌다.
나는 성취를 통해 스스로를 증명했지만, 정작 나 자신과는 연결되지 못했다. 성취가 쌓이면 채워질 거라 믿었지만, 성취가 쌓일수록 공허만 더 깊어졌다. 라이프코드 강의에서 말하듯, 성취만으로는 결코 인간의 삶이 완성되지 않는다. 공허는 성취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취의 한계를 드러내는 언어다. 나는 그 한계와 정면으로 마주한 셈이다.
결국 내가 진짜 놓친 것은 감정을 느끼는 힘이었다. 실패가 두려운 게 아니라, 감정과 마주하는 일이 두려웠던 것이다. 성취는 목적주의적 기준으로는 나를 꽉 채운 것 같았지만, 내 안의 삶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성취에 중독되어 있었고, 그 중독의 끝에는 늘 공허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묻는다. 성취만으로는 부족하다면, 나는 앞으로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