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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Feb 18. 2019

문득 막막한 날

묻어두는 일기

그런 날들이 있다. 

그런대로 흐름을 타며 나를 앞으로 조금씩 밀어가고 있었는데, 어젠 나를 밀어낼 힘이 없었다.


그러면 투명한 유리통 속으로 들어간다. 보이지만 나는 그곳에 없다. 소리는 위웅위웅 귓가에서 울리다 흩어져 날아가고, 열심히 걸어도 유리통만 데울데울 구를 뿐 나는 제자리에. 그렇지만 그 유리통만큼 세상으로부터 도려져 있다는 것이 묘하게 편하다. 이기적인 편안함이다. 뻗어오는 네 손을 마주잡을 수 없어서 너를 상심시킬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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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쉬어야 하는 건지 오히려 몸이 약간 피곤하도록 움직이는 것이 나을지 무언가 콘텐츠를 마구 접하면 좋을지 뭔가를 좀 만들어내는 게 나을지, 다 조금씩 해보고 있는데 무엇이 제일 효과가 좋은지 모르겠다. 뭐든 하다 보면 조금 귀찮아졌다. 글도 쓰려고 했는데 못 쓰고 이 검은 일기만 쓰고 있다. 방학이 길어서 그런가. 알바도 끝나고 내가 '해야하는' 것들이 없어지는 시기와, 앞으로 '찾아서 해나가야 하는' 것들이 퐁퐁 샘솟는 시기가 겹치면서, 이제 막 힘차게 움직이면 되는데 도리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유리통을 찾는다. 

심지어 이번주는 날씨도 좋았는데.



오늘은 적어보았다. 

막막한 느낌을 주는 것들, 앞으로 할 일을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지 않고 표에 나열을 해보았다. 온갖 정보를 모아 한 장에 정리하는 일, 왜 또 한 장으로 요약해야 하는 거냐며 기계적으로 뚝딱뚝딱 하던 일이, 생각보다 그렇게 할 가치가 있는 일 같다. 복잡하게 느껴지던 것들이더라도 적다보면 비교적 간단한 문제만 남고, 하기 귀찮은 자잘한 것들은 금방 해낼 수 있는 체크리스트가 되어 지워지기만을 기다린다. 뚜렷한 퀘스트가 보이니까 좀더 쉽게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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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기 전 움트느라 애가 좀 쓰이나 보다. 이제 다 뱉어냈으니, 기지개 펴고, 상쾌하게 무브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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