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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Mar 04. 2019

삶에 대한 고민의 시간들이 행복하다면

행복한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남기는 기록

프랑스에 온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아무리 여행을 좋아하고 낯선 곳에 떨어지길 좋아하는 나이지만, 여행이 아니라 '살아갈' 것이라 생각하니 처음엔 모든 게 신경쓰였다. 나 너무 이방인 느낌 풍기는 거 아닌가, 최대한 이 사회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묻어나고 싶은데, 하고 마음 졸였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너무 자연스러워졌다. 나는 한국인이고 프랑스어를 원활하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이 사회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일이 편해졌다. 거리에서 만나는 얼굴들이 나와 같은 동양인의 얼굴이 아니라는 것이 무척 당연해졌고, 들려오는 말들을 100% 이해하지 않아도 답답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 익숙해졌다. (가능하면 다 이해하면 좋으련만.)


숱하게 지나다녔던 노트르담 대성당


엊그제 남편과 함께 퐁피두센터 도서관에 갔다가 나는 영화보러 간다고 먼저 도서관을 나섰다. 그러면서 작년 봄부터 6개월간, 해당 지역의 어학원을 다니는 동안 숱하게 오다녔던 거리를 지나게 되었다. 참 익숙한 길인데, 문득 내가 그 곳을 익숙하게 지나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게 다가왔다. 나는 외국인이고 지금 신분도 불분명한 상태고 아직 언어도 편하게 소화하지 못하는 상태인데 이 사회의 한 지점에 내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 내게 당연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이, 내앞으로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이 서양인이라는 사실이 문득 낯설었다. 갑자기 이 외국인들의 얼굴이, 내가 외국에 나와있다는 사실을 사무치게 느끼게 해주었다. 그들 십중팔구는 여행자일텐데, 그들도 나를 보면서 본인들이 여행중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겠지 싶었다. 서로에게 낯섦을 안겨주는 존재들.


최근에 뉴스를 보다가 나도 이 사회의 일원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건 '프랑스에서 한번 일해보고 싶긴 해'랑은 다른 느낌이었다. 기존에 생각했던 건, 이왕 이 나라에서 공부를 할 거면 그 이후에 직업인으로서의 삶까지 누려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경험을 충분히 하는 거 아니겠어?, 와 같은 수준의 바람이었다. 그런데 뉴스 리포트를 전하는 기자를 보며, '여기가 한국이라면 남편이 저런 역할을 하는 사람일 텐데' 하고 생각을 했다. "솔직히 언어만 되면 너가 저 자리에 있을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며 경제활동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의 한 자리. 그러나 이미 난 알고 있다. 여기서 석사 공부를 마치더라도 이 사회의 엘리트 집단에 우린 절대로 속할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언론인? 글쎄, 전혀 가망이 없어 보인다. 남편이 기자 경력이 있어서 어떻게 기회를 얻는다 하더라도, 한국 또는 아시아 지역 언론사의 유럽 통신원 역할, 아니면 무척 지엽적인 혹은 대안적인 프랑스 매체의 아시아지역 전문 저널리스트? 한국에 있었더라면 남편도 나도, 각자의 직업 경력이, 연차가 알아서 쌓여가고 있었을 테다. 


우리는 그 소중한 3년 내지 4년의 시간을 감수하고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 뒤, 어떤 삶을 다시 이어갈까. 


2017년 초가을 제주도. 제주도는 지금도 가고 싶다.
파리의 노을에 푹 빠져있었는데 한국의 해질녘에도 이런 핑크빛 순간이 있었어.


다시 똑같이 살 가능성이 제일 크겠지. 프랑스에 오기 전의 한국에서의 삶을. 그게 가치 없는 것이 절대 아닌데, 그렇다면 왜 우린 이 3-4년을 도려내길 원했을까. 다른 것을 추구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었나. 우리는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나는 야망을 키우며 돈도 잘 버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바닷가 옆에서 한적하게 사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공부 다 마치고 30대 중반이 되어서도 같은 고민을 하게 되면, 여전히 고민만 하는 처지라면, 먹고 사는 일은 어떻게 해결을 할까. 


프랑스에 온 지 1년이 되었지만 아직 나는 질문들에 대한 어떠한 답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고민들을 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여겨졌다. 내가 어떻게 살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그럴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이런, 스무 살 혹은 스물 세 살의 고민을 지금도 충분히 하기 위해 우린 3-4년 경제활동을 저버리고 여기 와서 한가로이 살고 있구나. 


그래서 오늘은, 나의 생일이자 프랑스에 온 지 1년을 꽉 채우게 되는 오늘이, 참 행복했다. 

2018년 3월, 첫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부풀어있던 그때의 마음.
2018년 3월, 처음 파리 마실 나간 날 콩코드 광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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