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
노동요
중, 고등학생 시절에도 그랬지만, 대학원생인 지금도 곧잘 음악을 들으며 공부한다.
반드시 백색소음이 있어야 집중하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조용한 상태에서 집중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어쩔 땐 간절히 소음이 있었으면 싶고, 어느 날에는 남편의 숨소리마저 시끄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가운데 음악을 듣고 싶은 때도 있는데, 이 때 나는 대체로 음악을 백색소음으로 여기지 않고 정말 들으면서 공부한다. 종종 따라 부르면서.
석사 생활을 시작하고 머지않아 줄곧 '노동요'를 찾게 되었다. 공부나 과제를 하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아서는 자꾸 딴짓을 하다가, 음악을 틀고서야 '자, 이제 집중할 때다!'하고 몰입하게 되는 경향이 커진 것 같다. 2019년 11월 이래로 가장 자주 듣는 노동요는 이소라의 음악이다. 어느 날 뜬금없이 이소라의 1, 2, 3집이 너무 듣고 싶어서 들었는데, 공부랑 합이 잘 맞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는 집중해야 할 일이 생기면 이소라의 <고백>, <처음 느낌 그대로>, <제발> 등등이 떠올랐다. 12월부터 2월 사이, 난생 처음 프랑스어로 5장 이상의 글을 몇 개 힘겹게 써내려갈 때마다 나는 이소라의 음악을 반복재생했다.
어릴 적, 6살 터울 나는 언니가 이소라를 좋아했다. 언니가 들으니까 나도 자연스럽게 따라 들었고 잠 안자고 기다렸다가 언니랑 같이 <이소라의 프로포즈>를 봤다. 아마 1~4집은 (언니가) 테이프를 가지고 있었고 5집부터는 (언니가 산) CD가 있었다. 내가 '능동적'으로 열심히 들었던 건 중3 시절이었던 5집 앨범부터인 것 같고 그 이전의 음악은, 어린 시절의 기억에는, 의자에 앉아 감정을 꾹꾹 누르며 노래를 부르다 눈물을 터뜨리던 그의 모습으로 대표되어 기억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애플뮤직으로 옛 음악들을 다시 곱씹어 들었는데, 1집이 너무 좋고 슬프고 좋고 그랬더랬다.
나의 음악 듣기는 20대 초반 이후로 계속 도돌이표다. 10대 때는 새로운 뮤지션을 열심히 찾아 들었고, 대학교 다닐 때는 고등학교 때까지 만들어둔 취향의 아티스트에서 조금 더 뻗어나갔고, 그 이후엔 이제껏 내가 좋아하게 된 아티스트의 음악만 듣는다. 요즘 플레이어들은 내가 즐겨 듣는 음악을 바탕으로 내게 새로운 플레이리스트를 제시하지만, 그렇게 들어보아도 그 중에 하트를 누르고 앨범 전체를 찾아 듣게 되는 새로운 뮤지션은 1년에 한두 팀 있나 싶다. 이렇게 나는 옛날 사람이 되어가나보다 하며...
아무튼, 이번 주말까지 또 5장짜리 글을 써내야 하는 과제가 있어서 지난 주말부터 무게감을 느끼고 있는 차였다. 무게만 느끼고 농땡이를 피우다가 어제부터 좀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오늘은 작업을 시작하려니 문득 이 노래가 생각났다.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
중학생이던 때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를 극장에서 무척 감명깊게 보았다. 거기에 흐르던 이 노래랑 쇼스타코비치 음악에 빠져 한동안 벅스뮤직에서 열심히 듣곤 했다. 그러니까 오늘 내 마음에 먼저 떠오른 음악은 김연우가 부른 OST였다.
프랑스에서 구독 중인 spotify 에는 이 곡이 없어서 유튜브에서 영화 엔딩 장면과 함께 음악이 나오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맞아, 엔딩 장면이 무척 아름다웠던 것 같은데 하며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내가 느낀 점은 두 가지였다. 음악이 역시 좋구나. 그런데, 영화 결말 내용이 이랬구나. 하필 태희(이은주)가 남성의 모습으로 지금 존재해서, 그래서 둘이 죽기로 결심했었구나. 아니 왜 죽기까지 해야하나. 문득 가슴이 답답해져서 재생 버튼을 눌렀던 것이 좀 후회스러워졌다. 영화도 다시 보면 좋겠다고 잠시 설렜는데 어쩌면 영화를 다시 보지 않고 예전에 좋았던 느낌을 간직하고 있는 게 나은가 싶었다.
다시 보아도 좋은 것?
이런 생각이 들었던 건, 그저께 <문라이트>를 다시 보고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 기억 속에 영화관에서 본 <문라이트>는 너무너무 좋았다. 남편이 <문라이트>를 안봤다길래, 나도 마침 또 보면 좋겠다 싶어서 같이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이번에도 아름답고 좋기는 했는데, 그때 받았던 감명 만큼은 아니었다. 아름다워 보이려고 기계적으로 매끄럽게 다듬은 느낌이랄까. 아니면 '이렇게 보였으면 좋겠어' 하고 내 마음에 직선적으로 확 치고 들어오는데 딱 거기까지고 그 이상은 없는 느낌. 그래도 색감과 질감과 눈빛이 아직 남아있지만. 관람 환경이 달라서인가 생각했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반복해서 보면 더 좋은 영화가 있는가 하면, 모든 영화가 그런 건 아닌가 보다.
다시 들어도 좋은 것
다시 음악 얘기로 돌아가서, 이번엔 추천 목록에 들국화의 곡이 눈에 띄었다. 그래, 들국화 음악이었지! 어떤 계기였는지 모르겠지만 대학교도 졸업하고 나서 들국화 앨범을 애플뮤직에서 한창 듣던 때가 있었는데 하며, 반가운 마음에 재생 버튼을 눌렀다.
으, 이렇게 아름다웠나.
멜로디가, 목소리가, 켜켜이 쌓는 화음이, 무엇보다 가사가, 모두 눈물나게 아름다운 노래였다. 가사를 읽으며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다 진짜 눈물이 왈칵 솟았다.
차마 사랑한다고 말하기에는 그댄 너무 좋아요, 그대 말없이 내게 모두 말해요
그대 말없이 내게 모두 말해요 라니. 잊혀진 새벽의 내음처럼 언제나 내 맘 물들게 한다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부디 들국화의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을 지금 한번 들으시길. 비틀즈도 퀸도 저리 가라 ㅠㅠ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음악 듣다 감성 터져서 결국 오늘도 과제를 안 하고 4개월 만에 브런치에 접속해 늘어놓는 것으로, 앞의 말들은 사족이고 결국은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을 다들 듣자는 말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