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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제니 Nov 02. 2020

회고에 관한 회고

해피문데이 3주년 프로모션 회고 미팅을 돌아보며

오랜만에 사무실에 출근을 했다. 모두가 출근한 건 약 2주 만의 일. 직장 생활을 하면서 2주 동안 집에 있을 일이 또 언제 있으려나 싶다. 여러모로 코로나는 예상치 못했던 상황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코로나 덕분에 3주년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기간 재택근무를 했다. '진정성'을 마케팅의 주요한 축으로 갖는 해피문데이-유기농 생리대 정기배송 서비스-에서 처음으로 '가격 프로모션'을 전면에 내세운 이벤트였다. 생리대와 탐폰으로 조합된 4가지 세트 상품 중 본인의 월경 타입에 맞게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하는 것이 프로모션의 주요 골자였다.


3주년 프로모션 페이지의 인트로. '프로모션'이어도 진정성 담긴 터치는 놓치지 않겠어요!


3주년 프로모션이 진행되는 한 주간, 코로나 재택으로 프로모션에 대한 반응을 면대면으로 팀원들과 나눌 순 없었지만, 개발팀의 도움으로 바로 이벤트 데이터를 볼 수 있는 대시보드가 마련돼 이벤트의 대략적인 성패와 호응도를 모두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까본 데이터는... 실망스러웠다.


속상했다. 이 프로모션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진정성 마케팅'을 추구하는 해피문데이의 브랜드 가치와, '정기구독 서비스'로 안정된 서비스와 가격을 제시한다는 비즈니스 모델의 특성상, 가격 프로모션은 자연스럽게 자주 채택되지 않는 마케팅 수단이었다. 한 번씩은 망설이는 고객들을 끌어올 수 있는 넛지가 필요하다는 것이 나의 강력한 주장이었다.


이유를 찾아야 했다. 기획의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알아야 했다.


다음 일주일을 '회고 주간'으로 공표하고 다음 프로젝트를 대기시켰다. 한 주간 프로모션과 관련된 모든 데이터를 정리하고, 인사이트를 두고 마케팅팀과 치열하게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마케팅적 액션을 취하기 전 검증해보고자 하는 가설과 KPI (Key Performane Indicator)를 가시적인 형태로 정하고 착수한 것이 사실 처음이었다. 그랬기에 가설의 '성공 여부'가 명확히 보였고, '실패'에 대한 회고의 필요성이 더 크게 느껴졌다. (기존의 내가 주관한 회고 회의들은 운영과 협업 프로세스 등의 과정적 측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치열한 회고회의 중 먹은 스쿨푸드. 아, 요새는 플라스틱 나오는 배달음식은 거의 시켜 먹지 않는다.

회고 주간의 목적은 초기 가설을 제대로 검증하고, 그 과정에서 있었던 러닝을 전사적으로 공유하는 것이었다. 회고 회의는 다음과 같은 프로세스로 진행되었다. (구체적인 회고 방법론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로 풀어보도록 하겠다.)


결과 데이터 정리
- 총 판매 데이터와, owned/paid 채널 별 유입 고객 분석, 광고 채널/크리에이티브 별 효율 분석

마케팅 회고 회의를 통해 가설 검증 논의, 세부 논의점들에 대한 의견 공유, 앞으로의 try 정리

마케팅 회고 회의 내용을 전달 가능한 형태로 다듬어 전사적으로 -특히 구현팀에- 러닝 사항 공유

사내 공유 피피티의 디자인에는 크게 시간을 쓰지 않는 편...


충분한 회고 주간을 거치는 동안, 당연해 보이지만 당연하지 않은 큰 배움들이 있었다.


1. 가설은 언제나 필요하다.

계획을 세우고, 이에 대한 성과 지표와 듀를 책정해두지 않으면, 일하는 대로 일하게 된다. 기한은 한없이 길어지고, 이 프로젝트의 성공을 판별할 수 있는 나침반을 잃는다.


2. 구현이 급하게 이루어졌다면, 사후 대화가 더욱 중요하다.

3주년 프로모션은 구현 단계가 꽤나 급박하게 진행되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직전 프로젝트의 가설-검증 방법이 명확하게 규정되어있지 않아 프로젝트 기간이 기약 없이 길어졌던 데에 있었다. 구현자들은 듀가 급박하므로 충분한 설득의 과정이나 고민의 시간 없이 구현을 마쳐야 하는 상황에 스트레스 레벨이 올라갔다.


일이 진행되다 보면 모든 프로젝트가 충분한 여유를 두고 진행되기 어렵다. 기획 단에서 불가피한 이유로 프로세스 중의 일부가 생략되거나 급하게 진행되었을수록, 더욱 랩업을 꼼꼼하게 진행하여 팀에게 공유하는 것이 유관자들에 대한 예의이며, 향후 협력을 도모할 수 있도록 에너지가 회복된다.


3. 솔직한 회고 문화는 팀을 성장시킨다.

회고 공유를 통해 실패로부터 얻은 배움이 팀에 쌓이며, 실패는 '시간 낭비'가 아닌 '러닝을 얻은 경험'으로 구성원들의 기억에 자리한다. 실패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도전을 멈추면 안 된다는 시그널이 된다.

이때 회고자를 칭찬해주는 리더의 역할 또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팀 문화에 크게 기여한다.


4. 그리고, 기획자 개인을 성장시킨다.

회고를 마치고 팀원들의 반응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급박한 과정 속 어쩌면 부담이 제일 컸을 디자이너님과 개발자님이 자리로 찾아와 공유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많이 배웠다고 말씀해주셨다.

디자이너님은 발표 중 각 파트마다 정말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들으셨다. 개발자님은 감사 인사와 함께, 기획 리드로서 스트레스를 받으실 필요는 없다는 조언을 전해주셨다. 기획 리드가 필요한 이유는 모든 일을 다 맡아서 해야 해서가 아니라 해당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는 걸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참여자들을 지속적으로 설득하는 관점에서 필요한 것이기에 실무는 나눠서 해도 된다는 것, 그리고 초반에 over-communicate 해두면 오히려 나중에는 일이 알아서 잘 굴러갈 것이라고 조언해주셨다. 리드 기획을 맡았을 때 심리적 부담을 많이 느끼는 나를 적중한 조언이었다.


회고를 팀에 공유한다는 점은, 나는 '배우고 싶다'는 시그널을 팀에게 보내는 행위가 아닐까. 주변에서 피드백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먼저 배울 자세가 되어있다는 의사를, 숨김없이 나의 실패를 말할 수 있다는 열린 마인드를 내비쳐야 가능해진다.


회고 없는 프로젝트는 반쪽짜리 프로젝트이며, 팀에 공유되지 않는 회고는 반쪽짜리 회고이다. 회고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점점 나아지는 형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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