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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제니 Nov 06. 2020

회사가 정말 재밌어?

첫 회사에서 4년째 일하면서 한 ‘좋은 일터’에 대한 생각

인스타 스토리에 여느 때처럼 회사에서 먹은 간식을 올린 어느 날이었다. 우리 팀은 빵순이 빵돌이들이 유독 많아, 휴가를 보내고 오거나 집에 맛있는 게 생기면 회사에 쪼로로 들고 와 나눠먹는 문화가 있다. 그날의 간식은 개발자님이 사 오신 고소하고 찐득한 피칸파이였다. (또 먹고 싶다!)


영원아 회사생활 혹시 즐거워?


학창 시절 동아리를 같이 했던 언니에게서 온 다소 질문의 의도를 추정하기 어려운 DM에 잠시간 망설였다. 가볍게 "응ㅋㅋㅋ"이라고 썼다가 다시 지우고 잠시 고민했다.

모두가 즐겁기만 한 근무 환경에 있을 수는 없음을, 현재의 진로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과 양보하고 있는 것이 시기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을 이해하고 있기에, 나의 즐거워 보이는 회사생활이 누군가에게 혹여 불필요한 박탈감을 주지는 않을까 조금쯤 신중히 대답해보았다.


"즐거울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지~~"

이내 바로 답장이 왔다.

"그래도 보람차고 좋아? 내가 본 직장인 중에 가장 애사심 깊어 보여서 물어본다!"


아, 언니 진심으로 물어보는 거구나! 그렇다면 제대로 답변해야겠다.


"응, 대체적으로 행복도는 높은 것 같아. 아무래도 초기부터 오래 같이 했고 회사 비전에 대한 공감도도 높고.. 사실 사람들 좋은 게 한 80프로인 것 같아!!"

"좋다 좋아! 내 세상에 대한 애정도에 네가 한몫한다."


대화는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


대학생활 중 해피문데이라는 팀에 초기 멤버로 합류하여 인턴에서 정직원으로, 그리고 지금까지 만 3년 동안 일해 오는 동안 주변에서 "재밌게 일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다. 회사의 면면들을 곧잘 SNS에 올리는 나라서 나의 들뜬 무드가 꽤나 주변에 전해졌을 것이다. 집 밖에도 내 자리가 있는 곳이 있다니! 1년 정도, 받는 안부 인사는 대개 ‘일 여전히 잘하고 있고?’였다.


최근에는 그 질문의 결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주변인들이 직장생활 적응기에 들어가면서, ‘회사가 재미있는지’를 묻는 질문이 많아졌다. 회사에서 힘든 점은 없는지, 그 회사에 계속 다니고 있는 이유는 뭔지. 스타트업이 턴오버(turnover)가 빠르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인턴으로 시작한 첫 회사를 4년째 다니게 하는 회사는 어떤 회사인가 궁금한 마음일 거라고 추측해본다. 결국 인생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은 각자마다 답을 내려야 하겠지만, 일터가 가지는 문화와 특성은 구성원의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게 사실이고, 그렇다면 좋은 일터를 상상하고, 만들고, 그곳에 속하고자 하는 마음은 자신을 위해 꼭 필요한 욕심이다. 해피문데이에서의 3년을 돌아봤을 때, 내가 계속 ‘go’를 외칠 수 있었던 이 일터의 큰 장점들을 떠올려보았다.



1. 회사의 비전과의 일체감


이 회사가 지금 당장 하는 일이 얼마나 가치롭다고 생각되는가. 이 회사가 앞으로 나가고자 하는 방향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이 회사는 실제로 그것을 이뤄낼 역량과 의지가 있는가. 이 모든 질문에서 yes가 나왔다면 소중한 일터일 확률이 높다.


‘인액터스’라는 사회적 기업 창업 동아리를 했었다. 그 당시에도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서, 습관적으로 방관자처럼 떨어져 프로젝트를 뜯어보곤 했었다. 있는 파이를 나눠먹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파이를 만들어내는 비즈니스 모델인가? 어디까지 스케일 업(scale-up) 할 수 있는가? 지속 가능한가? 대상자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가? 그래서 결국, 내 시간을 쓸만한 가치가 있는가?


계속해서 거시적인 이야기를 하니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싶은 동아리원들과 마찰이 있기도 했다. 여기가 토론 학회는 아니라는 장난 섞인 핀잔을 듣기도 했고... 무튼, 거시적인 레벨에서 회사에 공감할 수 없다면 매일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동력을 빼앗긴다. 쉽게 답이 나오는 질문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해피문데이가 여성의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 ‘월경’이라는 여성 공통의 경험에서 출발한다는 점에 공감했고, 그것을 실현하는 방식-월경을 더욱 편안하고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안심할 수 있는 월경용품을 가장 편리한 형태로 정기배송하는 것-이 시장성 있다고 판단했으며, 그 일을 시작하려는 창업자가 유능해 보였다. 해낼 사람 같았다. 해피문데이는 편안한 월경에서 나아가, 여성의 건강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IT회사로 정체성을 확장해나가고자 한다. 정기구독의 형태로 모든 판매를 자사몰에 집중시키는 것도, 최근 헤이문이라는 월경관리 앱을 출시한 것도 그 일환이다. 점차 일하는 여성이 늘어나고 결혼 및 출산 시기가 늦춰지면 여성 건강 관련 이슈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고, 여성 건강을 전 인생적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일은 필요하며, 그것을 해낼 회사는 해피문데이일 거라고 여전히 진심으로 생각한다.


이런 나의 생각은, 매일을 온전히 눈 앞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돕는다.


2. 똑똑한 동료


동료가 똑똑해야 한다. 여기서 똑똑하다는 것은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일 나를 자극시키는 동료들 사이에 있어야 한다. 인간의 감정은 참 쉽게 변해서, 내가 제일 똑똑하다고 느껴지는 집단에 있으면 얼마간 자신감도 생기고 쉬운 과업에 가뿐하지만, 이내 ‘이렇게 있어도 되는 걸까?’ 하는 물음 앞에 방황하게 된다.


스타트업은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설정하고, 답이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의 반복이기에 ‘똑똑함’또한 하나로 정의 내릴 수 없다. 내가 정의한 똑똑함의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 나아가서는, 내가 생각했던 똑똑함이란 참으로 편협한 것이었음을 깨우쳐주는 사람이 많을수록 저릿한 깨달음의 순간을 많이 마주하게 된다. ‘아 내가 어리석었구나,’ ‘이런 접근법은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것이구나’를 느낄 때 오는 약간의 충격과 속상함은 이내 감사함과 ‘더 발전해야 한다’는 자극으로 이어진다.


일을 시작하기 전 나에게 똑똑함이란 논리력과 말솜씨였다. 회사에서 일하는 3년은 번지르르하게 포장하지 않은 다양한 똑똑한 사람들이 있음을 깨닫는 시간임과 동시에 내가 가지지 못한 똑똑함들을 바로 옆에서 관찰하며 흡수하는 시간이었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 사용하는 언어와 이해하는 방식이 다른 두 사람을 중재해 갈등을 매끄럽게 막아주는 동료도 있었고, 빠르게 의견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곰곰이 생각하다가 누구도 생각지 못한 포인트를 던져 위기 상황을 몇 번씩이나 막아주는 동료도 있었다. 자신의 영역에서 최대한의 집중력을 보여 급박한 마감일에도 반드시 일을 끝마치고 퇴근하는 동료도 있었다. 나와 다른 강점을 가진 이들을 오해하고, 부딪혀 대화하고, 이해하고, 사과하고, 따라 배우며 개인에서 팀플레이어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조금은, 전보다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 자신이 전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감각은 일터와 함께 하는 동료에 대한 애정도를 크게 높인다.



3. 내가 맡은 롤에서의 발전의 가시성


내가 맡은 롤에서 경험치가 쌓이고 있음이 느껴지는가. 개발자라면 개발 지식과 속도, 구조화 능력이 키워지고 있는지. 마케터라면 인사이트의 참신함과 빈도가 커지고 있는지 등.


문득 돌이켜보면 ‘나에게 발전이 없나’하는 회의감이 들었던 순간들은 유독 두 상황에서 발생했다.


같은 직군에서 준거로 삼을만한 대상이 없을 때

내가 발전해야 하는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와닿지 않을 때, 그러므로 나의 수준에 대한 평가 자체가 어려울 때. 특히 스타트업에는 사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같은 직군의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는 한 번씩 자극점이 돼주었다. 그들과 나의 상황과 특성을 비교해보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마케팅은 무엇인지, 퍼포먼스 마케팅에 흥미를 느끼는지, 브랜드 마케팅에 흥미를 더 느끼는지, 각 영역에서 어떤 노력을 더 할 수 있는지 등을 적극적으로 고민할 수 있었다.

만날 사람이 없을 때는 아티클과 책을 읽었다.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아티클 플랫폼을 활용하기도 했고 - 퍼블리 앱과 뉴닉을 애용했다 - 브랜딩과 카피라이팅에 관한 책도 많이 찾아 읽었다.


내 롤을 명확히 규정할 수 없을 때

내 롤이 명확하지 않으면 내가 발전하고 있는지의 여부도 당연히 불투명해진다. 스타트업 마케터라면 특히 이런 상황을 마주할 확률이 높다. 고객 경험, 사이트 기획, 광고, 브랜드 제휴 등 속성이 꽤 다른 일들을 한 사람이 담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보니, 각각의 영역이 분화되어있는 회사의 마케터들은 나보다 더 효율적으로 전문성을 구축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조바심이 드는 것이다.

긴 고민과 대화 끝에, 마케터로서의 나의 롤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렸다. 나의 롤은 광고 기획자도, 제휴 담당자도, 콘텐츠 발행인도 아니다. 나는 해피문데이의 ‘시장을 넓히는 을 하고 있으며, 시장을 넓힌다는 큰 목표 하에 해야 할 일들을 우선순위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이다. 잠재 고객을 찾고, 그 고객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 고객을 설득할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을 제안하고, 실행에 빠르게 옮기는 것. 이것이 시장을 잘 넓히는 일이라면, 나는 발전하고 있는 마케터였다.


4. 웃음과 애정

사실 위에 언급한 요소들을 ‘매일’ 고민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걸 매일 생각하고 사는 삶은 그거대로 꽤나 비효율적이겠다.) 매일을 채워주는 건 사실 동료들과의 소소한 대화와 웃음, 간식 나눠먹기, 우리끼리 통하는 농담들, 그리고 동료에게 받았던 생각지 못한 위로 같은 것들이다. 1,2,3번이 뼈대라면, 4번은 살이다. 서로 애정하고 있음이 느껴지는 동료들과 함께 있으면, 많은 것들이 참 쉬워진다. 불필요한 정치도, 겉치레도, 오해도 생기지 않는다. 누군가를 미워하느라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는 곳. 인간적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있음이 느껴지는 곳. 이곳에서 나는 안전함을 느낀다.


술을 잘 마시지 않는 우리 팀. 모처럼 술을 마시고 거나하게 들떴던 작년 9월! 그새 14명으로 팀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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