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고
악마를 프라다를 입는다. 제목부터 화려한 이 작품은 소설도 재밌지만 영화도 참 재밌고 화려하게 잘 만들었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안드레아의 러브라인 속 딜레마에 초점을 맞춰 “아, 일을 잘하는 것과 행복한 사생활을 병행하는 건 정말 어려운 거구나.” 했다. 그 사이에 일을 시작하고 정말 오랜만에 이 영화를 다시 꺼내보니, ‘직업인’으로서 안드레아는 어떤 사람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보게 된다.
안드레아는 내내 공격을 받는다. 선배 에밀리는 “지미추를 처음 신은 날 넌 영혼을 판 것”이라고 말한다. 친구들은 안드레아가 일을 시작하며 다른 사람이 되었다며, 괴팍한 상사 밑에서 일에 과몰입되어 예민하게 군다고 지적한다. 이 과정 속에 안드레아는 오래 만난 남자친구 네이트와 헤어지기도 한다.
안드레아는 후반부로 갈수록 미란다와 패션계를 꽤나 적극적으로 변호한다.
이런 그녀에게 남자 친구 네이트는 말한다.
네가 뭘 하든 진실성(integrity)을 갖고 하길 바랄 뿐이야. 처음엔 런웨이 여자애들을 놀리더니, 이제 너도 그중 한 명이 됐잖아.
안드레아는 스스로를 속이고 합리화하며 패션업계와 런웨이가 주는 달콤한 보상에 취한 것이었나? 전혀 그렇지 않다. 사람은 경험하는 만큼 자란다. 패션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안드레아지만, 업계의 한 복판(말 그대로)에서 일하면서, 업계의 생리가 어떠한지, 그 업계가 좇는 가치는 무엇인지를 알게된다. 절대적인 가치는 없다고 했던가. 한없이 얕다고 생각하던 패션 업계지만, 그 안에 진정성을 갖고 자신의 서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똑똑한 안드레아는 이를 받아들이고,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빠르게 갖춰나간다. 그녀가 날씬해지고, 예뻐지고, 명품을 입게 된 걸 ‘사람이 변했다’고 후려치면 곤란하다. 그녀는 원래 그랬듯, 열심히 살고, 도전하고, 빠르게 배우는 앤디였을 뿐.
“The dream job a million girls would die for” 영화에서 아이러니하게 수차례 반복되는 이 구절 속 ‘완벽한 직업’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일이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팀플레이이며, 내가 수행하기로 한 역할을 충실히 해내겠다는 약속을 기반으로 한다. 마감 안에 글을 써내는 것, 매일 아침 빵을 구워내는 것, 자신의 몸을 관리하는 것 등. 자신이 원하는 일이 아니라고 하여 적당히 일하고 퇴근해서는 답 없는 불만을 늘어놓는 것 보다야, 안드레아와 같은 적응력과 몰입이 협업하는 사람들에게도, 본인의 성장에도 유리한 태도일 것이다.
(하지만 어딘가 쌔한 건… 안드레아의 일이 근로기준법 상으로도 윤리 차원에서도 엉망인 것들 투성이었기 때문이겠지. 미란다는 비인간적인 업의 틀을 짜 놓고는 그 직업을 선택한 것은 안드레아임을 계속해서 주지 시킨다. “파리에 가지 않으면, 런웨이나 다른 출판업계에 진지하지 않은 것으로 알겠다”고 말한다.(협박한다.)
결국 일을 잘한다는 것은 업계의 룰을 충실하게 따르고, 때로는 기대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업계에서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내가 종사하는 업이 내 가치관과 명쾌히 들어맞지 않을 때, 어디까지 열심히 해야 하는 걸까. 어떤 노력이 쌓여서 ‘좋은 직업의식’이 되고 어떤 노력이 ‘사람이 변했네’를 만드는 걸까?
대학교 저학년 때 동아리 회장을 맡았었다. 다수의 운영진들이 각 팀을 끌어가는 공연 동아리였고, ‘하고 싶은 일’과 ‘귀찮은 일’의 구분이 매우 명확한 동아리였다. 전자는 공연이요, 후자는 공연을 돌아가게 하기 위한 온갖 잡일이었다.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한 친구가 있는데, 영상 내지는 음원 팀에 속해있던 그 친구가 자신에게 할당된 일을 하지 않고 대략 잠수를 타는 상황이었다. 혼내려는 운영진에게, 그 친구는 꽤나 예의 바르게, “언니, 정말 죄송한데요, 정말 너무 하기가 싫어요. 죄송합니다.”라고 이야기해서 회장단과 모든 운영진을 띵-하게 만든 적이 있었다. 와 신선하다. 너무 하기 싫어서 못하겠다니. 이렇게 답이 안 나오는 말인데, 이렇게 반박할 수가 없는 말이라니.
안타깝게도 우리의 직업세계가 이 에피소드처럼 심플하게 돌아갈 수 없는 건, 우리의 ‘일’은 필히 다른 누군가의 삶과 밀접히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내가 업무를 완수해야 다음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유관자, 내 일의 결과물이 가닿는 소비자까지. 결국 직업의식이 필요한 궁극의 이유는 사람에 대한 배려다. (이 배려에는 스스로에 대한 배려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베스트 시나리오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고 가치도 실현한다-와 워스트 시나리오 -가치도 없고 재미도 없는 일을 그럭저럭 하며 개선을 위한 노력도 하지 않는다- 사이 어디쯤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어디쯤에 계속 머물러도 좋다는 관성은 결국 사람을 주저앉힌다. 모든 직업에서 내가 원하는 일만 할 수는 없음을, 모든 것이 이상적으로만 돌아갈 수 없음을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그래도 더 나은 일과 세상을 상상해보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이제 와서 보니, 그래서 안드레아는 참 멋지다. 직업의식이 투철한데, 꿈꾸기도 멈추지 않는다.
“우리 삶은 흑백으로 절단하기 어렵다. 이곳에도 저곳에도 각자의 사정이 있고,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 하지만 ‘세상은 원래 그렇지’ 하고 회색 지대에 멈추기를 택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사람은 타락하게 된다. … 지금 우리는 비록 회색 지대에 있지만, 그런데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밝음은 분명히 존재한다. 각자의 사정은 있지만, 어찌 됐든 밝음의 제대로 나가려 해야 한다.”
- 이대희, 장강명 인터뷰 '아르바이트생 자르고, 산 자들의, 한국 사회 버티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