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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원 작가 Feb 06. 2023

꿈과 경제적 자유를 모두 이루는 일이 가능할까?


돌이켜 보면 20대 초반은 ‘내 삶의 주인’으로 살기 위해 발버둥 친 시기였다.

초중고 12년간 타인의 삶을 산 덕분에 대한민국 최고의 사립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워낙 긴 시간을 대학 입시라는 목표에 얽매여 산 탓에, 20살부터는 더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당시 대학 동기들의 관심사는 온통 술자리, 미팅, 그리고 동아리에 가 있었다.

그에 반해 내 관심은 온통 ‘어떻게 하면 내 삶의 주인으로 살 수 있을지’에 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생 시절, 나는 S 장학 재단에 속해있는 장학생이었다.

장학 재단은 1년에 두 번씩 장학생들의 희망 진로를 조사하곤 했다.

그때마다 예외 없이 ‘창업’ 두 글자를 적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명확히 정해진 창업 아이템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장학생들과 똑같이 ‘대기업 취업’, ‘대학원 진학’ 등의 진로를 적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게 하면 나 역시 대한민국의 수많은 대학생과 똑같아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가치성장연구소의 대표이자 1인 기업가로 살고 있는 서지은 소장은 1인 기업가로 살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청춘을 버려가며 얻는 대가로 돈을 벌고 싶지는 않았다. 내 시간과 청춘과 내 삶이 일에 투입되는 만큼 나 자신이 성장하는 삶이 되고 싶었다. ‘내’가 아니어도 대체될 수 있는 조직의 부속품이 아니라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그런 일이 하고 싶었다.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성장하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성장하는 삶이 살고 싶었다. 평생 해야 하는 그 일이 나를 지속적으로 성장시켜주는 일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한 내게 1인 지식창업은 가장 좋은 대안이자 정답이었다.

직장 선배들의 연봉을 보아하니, 아무리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월 500~800만 원 받는 정도가 내가 평생 이룰 수 있는 최고치일 것 같았습니다. 그마저도 나이 40~50대는 족히 돼서야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 정도로는 내 가정을 꾸리고, 부모님의 노후까지 책임지며 살기에는 충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민지, <꿈은 모르겠고 돈이나 잘 벌고 싶어>)

이전 직장에 3년 후 CIC(Company-In-Company) 대표 자리를 제안받고 입사했다.

퇴사를 결정하게 된 데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설령 CIC 대표가 된다고 해도 30대에 월 1,000만원의 소득을 얻기는 어려워 보였다.

30대에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싶었고, 내 가정과 부모님의 노후 역시 책임지고 싶었다.

스스로를 믿고 과감히 행동으로 옮긴 퇴사는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 되었다.

꿈과 경제적 자유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일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겸손한 태도로 부지런히 배우며, 경제적 자유를 향해 나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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