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복숭아를 뚫고 찾아온 행복
신비복숭아에 대한 기억이 좋아서 아들이랑 둘이 맛있게 먹으려고 여덟 개 들은 박스를 하나 샀다. 냉장고에 하룻밤 놔두고 찬물에 씻어서 한입 베어 물었다. 딱딱했다. 내가 알던 그 맛이 아니었다. 이거 뭐 천도복숭아 아니야? 싶었다. 실망했다. 에라이…
그러다 저녁식사 요리를 하느라 한쪽 구석에 치워놨다가 깜빡하고 냉장고에 넣지 않고 하루를 보냈다. 오늘 퇴근하고 다시 요리를 하기 위해 부엌에 가자마자 발견하고는 아차 싶어 얼른 만져봤다. 무른 데가 아직 없어 다행이었다. 혹시나 해서 찬물로 씻어서 다시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바로 그 맛이 아닌가! 과즙이 입술을 적시고 턱으로 흘러내렸다.
그러나 깜짝 놀란 것도 잠시 냉철한 과학자의 의심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혹시 이거 하나만 그런 게 아닐까 하는 가능성을 배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눈을 감고 다른 복숭아 하나를 골라 잡아 다시 찬물로 씻어 한입 또 베어 물었다. 이럴 수가! 이번엔 더 많은 과즙이 흘러나와 바닥에 떨어지는 게 아닌가!
감동에 감동을 하는 찰나, 또 한 번 과학자의 의심이 드는 것이었다. 혹시 내가 가장 맛있는 복숭아 두 개를 우연히 연이어 집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다시 눈을 감고 복숭아 하나를 무작위로 골라 잡아 찬물로 씻어 한입 다시 베어 물었다. 이럴 수가! 터져 나오는 과즙으로 목욕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황홀했다. 삼 세 번 똑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정도면 우연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는 합리적인 추론을 마치고 박스를 보니 고작 3개밖에 남지 않았다. 씻고 있던 아들에게 두 개를 주고 남은 하나는 내가 또 먹어야지, 하면서 저녁 한때를 행복하게 보냈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
행복은 이렇게 일상의 작은 균열을 통해, 비록 그것이 실수나 누군가의 모자람 때문일지라도, 예기치 못한 기쁨으로 문득 찾아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