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축복
언젠가 실 같은 문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한 줄기 햇살을 뚫어져라 쳐다본 적이 있다. 멀리서 볼 땐 어둠 속을 관통하는 신비한 광선처럼 보였다. 가까이 다가서니 보이는 건 온통 먼지뿐이었다. 입으로 후 불어보았다. 먼지가 빠르게 움직였고 더 많은 먼지가 어둠 속에서 밀려왔다. 이번엔 눈을 모으고 숨을 들이마셔보았다. 내 콧속으로 그 더러운 먼지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들어갔다. 경이감은 이내 사라졌고 나는 불결함과 혐오감을 동시에 느꼈다. 내가 들이마시는 공기가 비로소 내 눈앞에 정체를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넘치는 물처럼 햇살은 방 안을 금세 가득 채웠다. 그리고 먼지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불결했던 기분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말끔히 사라졌다.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바깥으로 나갔다. 먼지 하나 없어 보이는, 햇살이 넘실대는 저 밝은 세상 속으로.
축복이란 세상을 가득 채운 눈부신 햇살이 아니라 어두운 방 문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한 줄기 햇살 같다는 생각을 한다. 단번에 나를 천상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먼저 세밀하게 돌아보게 만들어 나를 조금씩 변화시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나는 객체로 머물지만, 후자의 경우 나는 주체가 되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축복이 오면 금세 환희로 가득 차버릴 것 같아도 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진정한 축복은 어떤 일정한 수순을 거치는 것처럼 보인다. 먼저 그것은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던, 그러나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먼지 같은 죄와 악의 흔적들을 비춘다. 날 둘러싸고 있었던, 내가 숨 쉬고 있었던, 그러나 보이지 않았던 더러운 먼지들이 비로소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즉 축복은 관찰과 성찰로부터 시작된다. 우리가 흔히 축복으로 인해 얻을 거라 여기는 가시적인 열매들은 반드시 이 단계를 거친 이후에야 맺히게 된다. 이 단계를 거치지 않은 열매들은 말초적이고 일시적이어서 바람결에 날아가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 내가 구경꾼으로 남는 축복은 가짜 축복인 것이다.
정직하고 밝은 햇살의 침입은 어두움을 없애기도 하지만 그 어두움이 가리고 있었던 먼지의 정체를 드러낸다. 그 먼지를 불결하다고만 생각한 사람들은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먼지를 보지 않기 위해서, 불결함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관찰하지 않고 성찰하지 않은, 전혀 바뀌지 않은 몸뚱이를 이끌고 바깥으로 나가서 노래한다. 거기엔 온통 햇살로 가득하고 먼지는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 줄기 햇살로 드러난 먼지의 존재를 불결하다고만 생각하고 아무런 성찰도 하지 않는 행위를 일차 범죄라고 한다면, 문을 열어젖히는 행위는 실재하는 먼지를 무시하고 보지 않기 위해 우리가 저지르는 이차 범죄다. 보고도 깨닫지 못한 죄, 보고도 묵인해 버린 죄. 당혹스러운 건 그 범죄 현장이 다름 아닌 축복이 처음 찾아온 바로 그 방 안이라는 사실이다. 우린 축복이 찾아온 것도 모른 채 죄인의 관성을 좇아 바로 그 축복의 자리에서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가서 햇살에 몸을 담그는 것은 거짓에 온몸을 잠식시키는 행위이며, 그곳에서 노래하는 것은 거짓에 기반을 둔 체제 속에서의 거짓된 승리를 의미한다. 죄인이 거짓된 세상에서 거짓 승리를 거머쥐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매트릭스 안 세상의 단면이다.
축복이 찾아온 첫 순간이 우리에겐 어쩌면 가장 중요한 시간표일지 모른다. 우리를 변화시키고 성숙하게 하며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축복은 우리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죄와 악으로 오염된 거짓된 자아를 그대로 가진 채 세상 밖으로 나가본들 거기는 매트릭스일 뿐이다. 더럽고 거짓된 내 모습을 완전히 덮어주고 가려주는 거짓 세상. 알다시피 그곳의 실체는 햇살로 가득 찬 세상이 아닌 먼지로 가득 찬 세상이다. 축복처럼 보이는 눈부신 햇살은 우리의 죄를 덮어주는 빛나는 가림막에 불과한 것이다.
나의 약함과 악함이 드러나는 상황에 처해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고난이라고 부르기보단 축복일지 모른다. 위장된 축복 말이다. 가시에 찔린 것처럼 아프지만 드디어 제대로 된 첫 발걸음을 뗄 시간표일지 모른다. 온몸에 연결되어 있던 관을 떼어내고 실제 근육을 사용할 시간표일지 모른다. 매트릭스로부터 탈출하여 진짜 세상을 살아낼 시간표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