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내가 철학 공부를 놓지 않는 까닭은 첫째, 생각 없이 휩쓸리는 무리에 속하고 싶지 않아서, 둘째, 얕고 가벼운 감성팔이 문장들을 끄적대며 글을 쓴답시고 자족하고 싶지 않아서다.
밀도 있는 글을 좋아한다. 그렇게 잘 쓰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도 내가 많이 미숙해서일 것이다.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마치 가지고 있는 것처럼 행세하고 싶지도 않다. 글 읽기를 좋아하고 쓰기도 사랑하는 나는 그렇게 무언가를 가진 척하는 글을 어렵지 않게 알아본다. 나 역시 누군가가 보면 그중 하나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적어도 스스로 배우는 일을 하지 않으면서 가르치려고 하거나, 자신의 가벼움을 치장해서 있는 척하지는 않는다. 가식과 허세는 일란성쌍둥이라서 나는 그런 것을 볼 때마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느낀다.
그런 글 속의 문장들의 공통된 특징은 은폐이다. 아마 스스로는 그것을 신비 혹은 절제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진 게 없어서 숨기는 행위와 분명히 가지고 있는 것을 축소하여 보여주는 행위는 엄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문장을 읽을 줄 아는 이의 눈에는 다 보이기 마련이다.
그런 글에 만족하고 그런 글을 계속 우려먹는 사람은 가볍다고 나는 말한다. 그렇게밖에 쓰지 못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가진 게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건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좀 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기 때문이며, 스스로도 속고 싶기 때문이다. 이를 총칭하여 나는 가볍다고 말한다.
글을 쓰다 보면 그러나 이런 단계를 대부분 거치게 되는 것 같다. 안주하면 안 된다. 누군가는 누군가보다 조금 더 우아하고 조금 더 있어 보이게 쓸 수는 있겠지만, 계속 쓰다 보면 결국 다 드러나게 되어 있다. 자신의 가벼운 정체는 늘 변죽만 울리는 글로, 제자리에 맴도는 글로, 사유할 거리도 없고 그저 뻔한 감성팔이 문장들로 발현되게 되어 있다. 진정한 작가가 되려면 이 단계에서 스스로 뚫고 나가야 한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보여주지 않는 글이 언제나 보여주는 글보다 많아야 한다.
읽으면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을 넌지시 일깨우고, 인간을 초월하는 저 너머까지 느낄 수 있는 문장들을 쓰고 싶다. 나에게 이것은 죽는 날까지 애써야 할 분명한 이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