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일상-I
일탈.
10 am.
일하면서 보내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날. 나는 일탈을 감행하기로 한다. 이 은밀하고도 짜릿한 순간. 생각만 해도 내 마음은 벌써 구름 위를 거니는 것만 같고, 내 얼굴은 온통 비밀스러운 미소로 충만하다. 아, 살 것 같은 이 기분!
챙길 건 별로 없다. 오직 즐길 줄 아는 자세와 조용히 관찰하고 소중히 받아들이고 너그럽게 품을 줄 아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아참, 이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서두를 줄 아는 센스도 필요하겠지. 마침내 낸 용기가 죄책감으로 변해버리기 전에.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해가 지고 어둠이 몰려오기 전에 얼른 이 자리를 떠야지.
살면서 아주 가끔은 금지된 시간과 공간을 활보하며 뜻하지 않은 만족감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안전하게 제자리로 돌아온 뒤 언제나 나는 내게 묻는다. 과연 그것들이 금지된 것이었던가. 아니면, 금지되었다고 믿어야만 했던 것인가. 금지된 것이란 게 무엇을 위한 것이었던가. 등등의 숱한 질문들이 정리되지 않은 파편처럼 내 생각의 상자 속으로 마구 던져진다.
경계에 서있다 생각할 즈음이면 그 경계란 과연 누가 세웠던가 묻게 된다. 경계를 넘나드는 짜릿함도 어쩌면 착각에 지나지 않았던 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이 들면 금세 내 살엔 소름이 돋는다. 아, 사람 사이의 분열을 분열이 아닌 이중 화음으로 조화로이 연주할 줄 아는 사람이 될 수만 있다면!
2 pm.
소리에 이끌려 정거장에서 내렸다. 바다의 짠내가 코를 찌른다. 나는 먼지를 털고 비포장도로 위를 걷기 시작한다. 떠날 때부터 딱히 정해둔 목적지는 없었다. 그래서 모든 곳이 목적지가 될 수 있었다. 이것은 이번 일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눈이 부시고 세상은 침묵했다. 나의 모든 감각이 살아나는 듯했다. 파도의 소리도, 저 개미의 소리도 모두 다 들리는 듯했다. 숨소리도 작게 내야만 할 것 같은 이 공간. 아, 의도하진 않았지만 원하던 곳이 분명했다. 내 입가엔 다시 비밀스러운 웃음이 만개했다.
수평선인 듯 저 멀리 보이는, 눈부시게 가느다란 경계를 바라보며 한참을 걸었다. 바람에 실려오는 바다의 냄새를 따라 몸을 움직였다. 삼십 여분쯤 지났을까. 소나무가 가지런하게 늘어서 있는 탁 트인 공간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곳은 숲과 바다가 기묘하게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바다는 하얀 거품을 물고 끊임없이 부서지면서도 또다시 으르렁거리고 있었고, 숲은 한 발자국이라도 더 바다 쪽으로 내디뎠다가는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어느 선 상에서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줄을 맞추어 서있었다. 나는 경계 위에 잠시 서있다가 숲이 아닌 바다를 향했다.
숲은 나의 목적지로 적합하지 않았다. 가르치려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바다로부터 배우고 싶었다. 가르쳐주지 않으려 하는, 아니 가르쳐줄 마음조차 전혀 없는 듯한 바다로부터 나는 무언가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막연하지만 강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보란 듯이 가르치려고 준비가 되어 있는 숲이 아닌 가르침에 아무 관심도 없는 바다로부터 그때 나는 도대체 무엇을 배우고 싶었던 것일까. 어쨌거나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스스로 경계를 짓고 있는 숲으로부터 등을 돌려 바다의 고운 모래 속으로 발을 디뎠다.
파도에 실려 백사장에 아무렇게나 박혀있는 해초더미엔 거뭇거뭇하고 조그만 파리들이 떼를 지어 앉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갈매기들은 만물의 영장이자 자연계의 위대한 포식자인 인간이 바로 앞에 서있다는 사실조차 아랑곳하지 않았다. 인기척도 느끼지 않은 듯 그들은 고개를 돌려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감히 날, 인간인 날 비웃기라도 하는 것인가. 순간 나는 갈매기 앞에서 투명인간이 되었고, 나는 내 존재가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나 잠시 뒤 나는 허무하게 웃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다 놓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여전히 대접받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다. 갈매기 따위가 뭐라고, 나는 갈매기가 나를 인지하고 두려움에 떨며 곧장 경계하는 태세를 보여줄 것을 당연하다는 듯 예상했었고, 공포에 짓눌린, 그 작은 날개 달린 형상을 보며 흐뭇해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 이 유치 찬란한 자존심. 난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바보같이 그렇게 실없는 웃음을 지으며 서있다가, 어떤 다른 생각이 번쩍 들었다. 오늘은 나도 그 갈매기와 함께 이 바다의 멋진 그림을 이루는 하나의 점이라는 생각.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정답을 찾은 것 같았다. 그 생각에 흔쾌히 동의를 했다. 그러자 순간 갈매기가 나의 친구가 되었다. 비록 내 존재도 무시하는 듯한 무심한 친구였지만, 이미 내게 넘쳐나는 세상의 수많은 친구들을 떠올려보았을 때, 나에겐 이미 그런 친구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고, 거기에 하나 더 추가된다고 해서 뭐가 대수겠냐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갑자기 바다의 짠내에서 씁쓸함이 느껴졌다. 여기까지 와서 처음 만든 친구라는 놈이 결국 무한대에 하나를 더한 꼴밖에 되지 않았으니, 내 인생은 정말 무엇인가 싶었다. 아.. 이 아름다운 날, 그것도 용기를 내어 일탈을 감행한 날, 첫 번째로 이른 결론이 결국 “무한한 절망 위에 하나의 절망을 더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하나도 없다”라니!
4 pm.
일탈을 해도 내 존재의 가벼움 뒤엔 언제나 삶의 절망이라는 배경이 버티고 서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알려준 갈매기를 뒤로 하고 나는 파도를 향했다. 파도는 계속 내게로 와서 허연 거품을 물고 죽어갔지만, 쉬지 않고 왔고, 쉬지 않고 거품을 물었으며, 쉬지 않고 죽어갔다. 죽어감은 또한 살아남이었고, 반복은 같음이 아닌 매번 새롭고 고유한 하나의 생명이었다. 백사장에 대가리를 꽂히며 부서져도, 또다시 무한한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이길 두려워하지 않는 저 파도의 기개. 비록 짧은 생이라도, 비록 특별할 것 없는 무한루프의 삶을 살아가는 것 같아도, 거기엔 죽음이 아닌 생명이 있는 것이다. 부서짐은 죽음이 아닌 살아있음의 증거인 것이다.
부서지기 싫어 모든 힘을 다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부서져도 된다. 아니, 부서지면 된다. 절망은 부서지는 자에게, 부서져도 상관없다는 자에게가 아니라, 부서지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자에게 깃드는 법이다. 또다시 일어나서 또다시 부서진다 해도 두려워할 필요 없다. 파도처럼 다시 일어나면 된다. 파도는 죽음이 아닌 생명이기에.
#김영웅의소설과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