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두 얼굴
아련함: 행복과 불안의 공존.
아련한 기억은 행복뿐만이 아닌 불안, 두려움 혹은 긴장 같은 감정적 요소도 동반하는 것 같다. 평면적이기보단 입체적이며, 그래서 그런지 수명도 길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생각나서 나를 멈추게 한다.
오랜만에 사진첩을 들춰보다가 2012년 초여름에 찍었던 사진 앞에서 한동안 멈춰있을 수밖에 없었다. 유난히 햇살이 좋았던 그 날, 즉흥적인 기분으로 시작된 당일치기 여행. 멋도 모르고 처음 찾아간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느꼈던 경이감은 클리블랜드에서 털털대는 중고차 혼다 시빅을 끌고 아내와 단 둘이 3시간에 걸친 첫 장거리 운전 끝에 맞이한 감격스러운 순간에 우리를 찾아왔다.
사진으로만 보던 거대한 폭포 앞에서 비현실적으로 피어오르던 무지개. 그리고 그 옆에 마치 점처럼 서있는 아내와 나. 미국 온 지 1년 채 안 되었을 그 시기. 머나먼 이국 땅 미국이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던 그 시기.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 선 내겐 미국이 그 어느 때보다도 이질적으로 느껴졌고, 그 광활함에 나는 한없이 작아지는 것 같았다. 이 넓은 땅덩어리에 의지할 사람 하나 없다는 사실은 황량한 외로움까지 더해주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내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그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소박한 사실은 내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포근한 안정감을 선물해 주었고, 행복과 사랑의 또 다른 면도 체감할 수 있었다. 아내라는 한 점으로 인해 거대한 미국 땅에서의 삶도 해나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었다. 겨우 살아남은 자들만이 서로를 바라보며 그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감격이랄까. 어떤 죽음의 순간을 함께 견뎌내고 마침내 오래 참음의 열매를 한입 크게 베어 문 것 같은 감격이랄까.
오래 기억되는 아련함은 두 얼굴을 가진다. 행복과 불안이라는 두 얼굴을. 함부로 일반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이때의 불안은 행복에 입체감을 부여하며 살아있게 해주는 것 같다. 아련함으로 오래 기억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