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웅 May 24. 2021

책 읽는 시간

불안, 도약, 그리고 즐거움

 읽는 시간.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고,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간. 나는 오늘도 기꺼운 마음으로 낯선 세상의 여행자가 되어 길을 나선다. 타인의 눈과 귀를 통해 나는 넓어지고 또 깊어진다.


처음엔 낯설어서 불안했다. 지금도 여전히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내 발걸음은 매번 조금씩 가벼워지고, 진정한 즐거움이란 게 무엇인지도 조금씩 알게 된다.


나에게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안정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혹은 한 우물만 판다는 꽤나 거창한 이유로 게을리했던 여행들이다. 5년 정도 꾸준히 여행을 지속하며 깨닫게 된 것이 하나 있다. 불안은 떨치는 게 아니라 안고 가는 것이라는 사실. 인간은 존재 자체의 이유를 묻고 그 의미를 찾는 유일한 존재자이기에 불안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어쩌면 단순히 존재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는 불안을 제거하려는 노력이 언제나 실패로 끝나며, 성공한다고 해도 일시적이라는 우리의 숱한 경험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불안은 제거하는 게 아니라 잠시 잊는 것이다. 이를 돌려서 말하면, 우린 늘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는 말이다.


떠나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진정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닌가 한다. 물론 존재적 불안을 안은 채로 떠남을 감행해야 한다. 아마도 누군가에게는 아직 준비를 다 마치지 못한 섣부른 판단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여기는 사람도 언젠가는 그 섣부른 판단을 의지하여 준비가 덜 된 상태로 떠냐야 할 것이다. 완벽한 준비는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고, 이성이 잠시 거리를 둘 필요가 있는 순간이다. 모험이라 부르기도 하고 도약이라 칭하기도 한다. 현실의 고인 물로부터 탈출하는 길도, 갇히고 답답하고 정체된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길도 많은 경우 이런 도약으로 말미암는다. 냉철한 이성만으론 결코 이러한 도약으로의 선택을 감행할 수 없다. 말하자면, 믿음이 필요한 순간이다. 이성은 도약의 이전보다는 이후에 일하기를 좋아하는 법이다.


선택은 두 가지다. 철저하게 우리 자신의 몫이다. Go or No go. 나는 이러한 예기치 않는 순간을 맞이할 때, 망설이다가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보다는 (물론 이해는 한다), 둘 중 한 가지를 선택하고 책임지는 사람을 좋아한다. 얼마나 철저하게 위험부담에 대해 확률적으로 분석했는지 따위엔 별 관심이 없다. 오히려 얼마나 자신의 선택을 사랑하는지에 나는 관심이 있다.


자, 이때의 선택은 용기일까, 객기일까. 마스터플랜이 짜인 행동일까, 다분히 즉흥적으로 결정된 행동일까. 혹시 무분별하고 감정에 취한 행동은 아닐까. 등등 많은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답은 떠나는 순간에는 알 수 없다는 것. 답은 정해진 게 아니다. 답을 안다면 모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약도 없다.


모든 모험은 위험부담을 가진다. 이를 달리 말하면 불확실성이다. 우리가 가진 첨예한 이성도 인생의 불확실성에 대한 완벽한 답이 되지는 않는다. 불확실성은 불안의 이유가 되지만, 동시에 도약의 근거가 된다. 도약의 결과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이유도 바로 그 불확실성에 기반한다. 모르기 때문에 도약이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나의 뒤늦은 독서는 불확실성과 불안에서 건져 올린 절박함에서 시작됐다. 나름 용기를 냈고 도피하듯이 길을 떠났다. 나는 도약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벌써 어느 정도는 이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정진하기로 한다. 새 길이다. 전에는 없었던 길이다. 나는 이 길을 갈수록 사랑하게 된다. 이 길 위에 서 있는 내가 좋다. 즐겁다.

작가의 이전글 치밀한 서사에 깃든 지독한 인간의 심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