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어느 오후
때로는 햇살 가득한 이 거리를 걷고 있다는 사실이 꿈처럼 여겨진다. 언젠가 꾸었던 꿈속에서 바라본 거리인 것 같기도 하고, 책 속에서 상상했던 거리인 것 같기도 하다. 현실 속에 찾아드는 이 비현실적인 순간. 나는 은근히 이런 순간을 갈망한다.
잊고 싶은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잊고 싶은 것일까. 혹시 무언가를 기억하고 싶은 건 아닐까. 잊고 있었던, 한때 소중했던 그 무엇을.
그러나 나는 끝내 아무것도 기억해내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작열하는 태양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중에 기억을 잃게 되면 이런 기분일까, 하는 슬픈 생각을 하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던 어느 눈부신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