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박한 교만

by 김영웅

경박한 교만


떠남과 정착의 반복 속에서 나그네 된 순례자의 마음은 언제나 한층 더 낮아짐을 당한다. 모든 기록은 경신되기 마련이다. 길 위에서도 그렇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생각에 이른 적도 이번이 벌써 몇 번째이던가. 나도 모르게 그렇게나 어렵게 얻은 겸허함과 낮아짐을 순식간에 결핍으로 인지해버리는 나의 경박함, 그리고 그 결핍을 다시 게걸스럽게 무언가로 채우고 또 채우는 나의 탐욕은 다시 나를 언젠가 지웠던 나로 돌아가게 만든다.


채우는 과정은 겉으로 보기엔 근면과 성실, 혹은 열심과 노력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좋은 이미지를 우산으로 십분 활용하여 나는 그 어두운 아래서 나의 내면을 허영으로 살 찌우기에 바쁘다. 자신감은 어느새 교만이 되고, 낮아졌던 마음은 비에 부푼 두꺼운 전화번호부처럼 형편없는 허영으로 가득 찬 채 아무 생명도 없는 찰나의 허세를 부리기 시작한다. 결국엔 잉여물이 되어 내 삶을 부유하며 비린내를 내며 썩어갈 많은 것들. 결국엔 정리해야만 하는 추가적인, 어쩌면 불필요한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또다시 직면하게 된다.


굴레다. 숙명이다. 이 끝없는 지긋지긋한 반복. 벗어날 수 있기나 한 것일까. 그렇다면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걸까. 이런 것이 인생이라고 알고는 있지만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 자괴감은 늘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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